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19. 심봉사는 왜 봉사(奉事)일까?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31

본문

심청전을 보게 되면 심청이의 아버지 심봉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뭐 여기서 심봉사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야기 할 건 못되고, 어째서 봉사(奉事)라는 타이틀이 붙냐는 것이다. 심청전의 원전(元典)을 보면 심청의 본명이 원홍장, 심청의 아비 되는 이가 원량이었다는 거야 알려진 사실이고…역시 궁금한 것은 어째서 종8품 벼슬직책인 봉사(奉事)라는 타이틀이 붙었냐는 것이다. 심 봉사의 미스터리한 벼슬직책 사용기, 그 내막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어이, 이번에 전옥서(典獄署 : 오늘날로 치면 교도소)에 봉사(奉事) TO가 하나 났다면서?”
 
“야, 귀신이네?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쫙 퍼졌어?”
 
“전옥서가 원래 좀 짭짤하잖아? 짭짤한 자리 차기 전에 잽싸게 앉아야지. 이거 해봤자. 직장(直長:종7품)자리까지 올라가겠어? 그저 짭짤한 자리 하나 꿰차서 집이라도 한 채 건져야지. 동기 좋다는 게 뭐야. 힘 좀 써봐. 내가 크게 한턱 쏠게. 응?”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너 인마, 전옥서 돌아가는 이야기 못 들었냐?”
 
“뭔 소리야?”
 
“전옥서 봉사 자리는 관습적으로 장님을 데려다가 쓰는 거 몰라?”
 
“야, 이게 무슨 아가미로 용트림 하는 소리야?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맞추는 것도 아니고…장님만 전옥서 근무하라는 법이 어딨어!”
 
“아 됐구, 전옥서 봉사 자리는 일찌감치 예약 돼 있으니까. 딴데가서 알아봐라. 말 들어보니까 뒷돈 받을 생각 포기하면, 관상감(觀象監 : 천문, 관측, 달력 등을 만드는 관청)도 괜찮다드만…좋잖아? 별 바라보면서 사는 거?”
 
“너나 별 많이 보세요다. 이 개스런 자식아!”
 
그랬다. 조선시대 전옥서의 인가 보직 중 종8품 봉사 보직은 이상하게도 장님들을 주로 뽑아다 썼었는데, 아무래도 근무환경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뒷돈 들어오는 게 쏠쏠했을 터인데…. 어쨌든 근무환경의 열약함과 승진의 불이익 때문에 실무 업무를 보는 종8품 봉사직의 지원자가 극히 드물었고, 그 덕분에 장님들이 전옥서 봉사 자리에 대거 진출하게 된 것이었다.
 
“쉬파, 전옥서 자리도 만만치 않구만. 차라리 관상감에나 들어갈까? 관상감에도 봉사 보직이 하나 비어 있다는데…. 이 참에 투철한 봉사정신(?)을 발휘해서 날로 들어가 볼까?”
 
이리하여 박봉사는 그 투철한 봉사(奉事)정신을 무기로 인사이동을 상신하게 되는데,
 
“관상감? 어이 박봉사…별 볼 줄 알아?”
 
“별이야 군대 있을 때 많이 봤죠. 이래봬도 투스타 운전병이었습니다.”
 
“박봉사, 개념이나 탑재하지 그래? 완전 개념을 바겐세일 해 버렸구만!”
 
“에이, 주부(主簿:종6품)어른 떠나는 마당에 무슨 쿠사리임까? 함 봐주십시오. 이번에 관상감 가서 제 능력을 한번 제대로 보여줄까 합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네가 거기 가서 뭐하게? 그리고 거기 TO 다 찼어.”
 
“에? 그게 무슨 소림까? 분명 관상감에 봉사 자리 하나 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비긴 볐지. 근데, 관상감 봉사 자리는 관습적으로 소경을 앉히거덩.”
 
“그…그런게 어디있슴까? 관습이란 건 깨라고 있는 겁니다! 전옥서도 그렇고, 관상감도 그렇고, 눈먼 봉사만 들어가란 게 말이 됩니까? 이건 명백한 역차별입니다!”
 
“역차별이던, 역마차던 그건 내 알바 아니고, 관상감도 소경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니까 일찌감치 포기해라.”
 
그랬다. 한때 맹인 점쟁이가 많았던 이유…다들 기억하시려나? 조선시대에도 별을 관측하고, 달력을 만들고 하는 일에 맹인을 투입하였는데, 맹인의 집중력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려니와 맹인들에게도 희망(?)을 주기 위한…일종의 장애인 고용대책이었던 것이었다.
 
“내 참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이렇게 된거 아예 사역원(司譯院 : 번역, 통역, 외국어 교육기관)으로 빠져버려? 그쪽에도 봉사 자리 하나 비었다고 들었는데…. 주부 어른! 그럼 저 사역원으로 빠질래요!”
 
“이 자식 아예 개념을 바겐세일 해 버렸구만. 야야, 전옥서, 관상감, 사역원 봉사 자리는 관습헌법적으루다 소경들 데려다 쓰는 거 몰라? 야 너 공무원 생활 원투 해? 네가 갈 수 있는 자리를 말하라니까! 앞 못보는 불쌍한 애들 밥그릇 뺏을 생각하지 말고 말야!”
 
그랬던 것이었다. 전옥서, 관상감, 사역원의 종8품 봉사(奉事)자리는 어느 순간부터 맹인들의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장애인 의무고용 같은 개념이었다 할 수 있겠는데, 조선 개국 이래로 이 세 개 관청의 봉사자리는 특별한 사안이 없을 경우 맹인들의 자리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전례가 계속 쌓이면서 나중에 이르러서는 봉사(奉事)란 단어는 맹인들에 대한 존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봉사(奉事)란 단어에는 이런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 조선이 망한지 벌써 10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조선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 할 수 있겠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