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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기자들은 원래 술을 잘 마신다!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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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간원 관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던 이때, 신입관원 최원택은 보무도 당당히 사간원으로 출근하게 되는데,
 
“어이 원택이, 좀 늦었네? 빨랑 와. 이번에 유밀과가 나와서 이걸루다가 한잔 빨고 있지.”
 
“어서 와~. 소주도 한 짝 가져왔겠다. 질펀하게 마셔보자고….”
 
“선배님들! 정말 실망입니다. 저는 그만 포기 할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야야, 포기는 배추 셀 때 쓰는 말이
고… 일단 앉아 봐봐.”
 
“그래그래, 갈 때 가더라도 잔은 한잔 받고 가야지.”
 
신입관원 최원택이 억지로 자리에 앉아마자, 사간원 관원들은 술잔을 건네며 슬며시 운을 떼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전하 딴지를 걸지?”
 
“글쎄, 이번에 대비마마의 쾌차를 위해 빠박이들을 데려다가 법회를 연다던데….”
 
“어쭈, 빠박이들을 말야?”
 
“그럼 안 되지. 조선의 컨셉은 엄연히 숭유억불인데 중대가리 놈들을 신성한 궁궐에 들일수는 없지.”
 
“그치?”
 
“서…선배님들 지금 전하가 법회여는 걸 반대 하자는 겁니까?”
 
“왜? 안 되는 거야?”
 
“아…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게 우리 전하신데…대비마마의 쾌차를 위한 불사라면….”
 
“어쭈, 꼬리 마는 거야? 엄연히 법으로 불사는 금지되어 있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군주가 모친의 위독을 핑계로 불사를 일으킨다는 건 나라의 기강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야.”
 
“아니…그게, 그래도 법이란 게 융통성이 있는 것이고, 법에도 인정이 있는 것인데, 더구나 전하의 어머니가 관계된 일이지 않습니까?”
 
“한번 예외를 두면, 법의 엄정함이 다 무너져. 한번 예외를 인정하면 두 번, 세 번…궁극적으로는 법 자체가 사라지게 되지.”
 
“그래도 지금은 비상상황이지 않습니까? 대비 마마께서 몸져누우셨는데…자칫 잘못했다간 전하의 진노를 살수 있는 일입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이시키 좀 똘똘한 놈인지 알았는데 완전 샌님이잖아?”
 
“야이 자식아. 사간원이 뭐 하는 곳이냐? 이 시대의 절대 권력인 왕이랑 맞짱 뜨는 자리 아니냐? 이거 말하면 왕이 삐지니까 하지 말고, 저거 하면 왕이 화 낼테니까 하지 말고…그러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뭐냐?”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되어있어. 우리는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간언하는 게 직업이고 말야. 이게 바로 기자정신 아니겠어?”
 
“…….”
 
“사헌부야 조정 대신들만 잘 관리하고, 그네들이 뇌물 받아 쳐먹으면 그거 잡아다가 때려잡으면 되지만, 우린 아니거든. 조정 관료들이 부패하면 거기만 도려내면 되지만, 우리는 나라의 주인과 맞짱을 뜨는 거야. 무슨 소린지 알아? 우리가 한발 물러나면 그건 나라가 한발 후퇴하게 되는 거라고, 알아들었어?”
 
“선배님….”
 
“좋아. 오늘 주제는 전하가 일으키겠다는 불사를 막는 걸로 하자고…사안이 사안인지라, 몇 명 파직 될 각오하고 간언해야 할 거야.”
 
“이 참에 몇 년 여행 간 셈 치지 뭐.”
 
“아니면 안식년 받았다고 하던가.”
 
“그럼 상소문을 쓰러 가자고. 아니, 마시던 술은 마저 마셔야지.”
 
이리하여 사간원 관리들은 먹던 술을 마저 마시고, 임금이 대비의 쾌차를 비는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게 되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 사간원은 오늘날 언론사의 기자와 같은 역할을 했었다. 사헌부가 검찰로서 조정 대신들을 관리감찰 한다면, 사간원은 절대왕조 국가의 절대 권력인 임금을 감시 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절대왕조 국가에서 모든 권력의 핵심인 임금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야 했던 사간원…그나마 조선이란 나라가 시스템 하나는 제대로 갖춰 놓았던 것이, 사간원 관리들이 제대로 임금과 맞짱을 뜨기 위해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서 사간원 관리들을 파직시킬 때에는 파직 기간도 근무연수에 추가시켰고, 왕이 삐져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위해 사간원 관리들의 지방 좌천은 법으로 금지시켜 놓았던 것이다. 사간원 관리들의 자유분방한 근무태도와 술판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야야, 임금이랑 맞짱 뜨는 애들인데…괜히 공무원 분위기 연출해서 상명하복으로 눌렀다가는 애들이 기죽어서 제대로 일 못할지도 몰라. 심한 거 아니면 눈감아 주자고”
 
이랬던 것이었다. 공무원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가 사간원에 전파되면 외압에 휩싸여 제대로 임금을 감시하지 못할 것이란 염려… 그것이 바로 사간원을 술판으로 만든 이유였던 것이다. 나라에 가뭄이 들어 전국에 금주령이 떨어져도 사간원만은 예외로 했던 조선… 오늘날 권력감시의 첨단에 서 있는 기자들도 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연유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절대권력 앞에 당당히 맞섰던 사간원과 기자들 권력 앞에서 당당한 이유는 술과 어디에도 부끄럽지 않은 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500년의 시차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닮은꼴을 보이는 사간원과 기자들의 모습이 많은 걸 생각게 하는 지금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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