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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개막D-1, 시즌을 기다리며 쓰는 편지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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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08.

 

오후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서는 길에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 시작하면 선수들은 생각한다.

 

‘아 이제 곧 시즌이 시작할 때가 되었구나.’ 그렇다. 이제 내일이면 시즌이다. 긴 비시즌이 끝나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시즌은 무더위와 싸우며 몸을 만드는 시간이다. 그 기간에는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만큼 비시즌 훈련이 힘들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다가오는 시즌을 준비하며 저마다 목표도 세워보고 바람도 가져본다. 나 역시도 항상 시즌 전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아마도 프로 1~2년 차 선수들은 시즌만 생각해도 피가 팔팔 끓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플레이하면 좋을지, 얼마나 뛰게 될지 궁금해하며 말이다.

 

나 역시도 1~2년 차에는 시즌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도 많이 하고,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또 많은 관중들 앞에서 멋진 플레이로 박수 받는 내 모습, 그 떨림과 전율…

 

오만가지 감정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반대로 시즌을 많이 겪어본 베테랑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걱정과 두려움 등 시즌 전의 생각들이 정작 시즌을 치르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오히려 이보다는 자신의 몸을 얼마나 잘 끌어올렸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즌은 길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여러 변수에 의해 팀이 잘 되기도 하고, 갑자기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지켜보고 겪어왔기에 선수들은 기록적으로 뭘 남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몸을 제대로 만들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부상이 자신과 팀에 얼마나 큰 손해를 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또, 몸이 잘 만들어져 있으면 갖고 있는 기술도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보다는 느긋하다.

 

그래서 연습경기에서 부진해 풀이 죽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때도 있다.

 

결국에는 다 잘 될 거야’라고. 비시즌과 시즌은 또 다르다’라고.

 

◆ 백지로 돌아가라!

 

프로 초년생 선수들, 그러니까 데뷔 1~2년 차 선수들이 힘들어한다면 이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바로 ‘백지’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프로에 와서 신인 때부터 자리를 잘 잡아서 승승장구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후자의 경우, 슬럼프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대부분 ‘내가 예전에는 이만큼 했는데’,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리 안 풀리지?’라 생각한다. 과거, 혹은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도 1~2년 차 선수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아마추어와 프로농구가 많이 다르기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경우, 본인이 알고 있던 농구는 백지로 만들라고 제안하고 싶다. 대신, 감독님이 자신에게 제일 바라는 것 하나, 두 개만 생각하고 그것만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미 연습경기를 하면서 감독님들이 원하는 부분을 많이 얘기해 주셨을 것이다.

 

사실, 감독님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걸 바라시지는 않는다. 당연히 주문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선수들은 더 보여주고 싶어서 오버 플레이를 하다가 혼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본인에게 어떤 것을 주문하는지 잘 파악하고, 그거 하나만이라도 정확히 해 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결국 미스도 줄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회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선수의 성장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자신감이 생기고, 출전 시간이 늘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 때는 이 정도였고, 저것도 해봤는데….

 

이런 생각은 버리고, 다시 농구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채워 나간다면 꼭 본인이 꿈꿔왔던 성공한 농구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 개막 주간의 분위기는…? 

 

외국선수가 합류하기 전에는 연습게임을 많이 한다. 빠르면 6월, 늦어도 7월에는 연습게임이 시작된다. 대학교와도 하고 프로팀들끼리도 많이 한다.

 

감독님들이 연습경기를 치르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조합을 찾고자 할 때도 있고,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밖에서 봤을 때는 선수들 컨디션이 좋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연습경기 시즌에 앞서 체력 운동을 많이 해뒀으니 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시즌이 많이 남은 시점에는 근육 운동을 많이 하고, 체력과 몸을 만드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즌을 치르는 몸보다는 좀 더 무거워 생각보다 경기력이 안 좋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선수가 합류하고 본격적으로 프로팀 간의 연습경기가 진행되면 점점 시즌에 맞는 몸이 만들어지고, 갖고 있는 기술들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한다. 몸을 풀 때 갑자기 덩크슛을 꽂는 선수들도 하나, 둘씩 나온다. 나도 할 수 있었지만, 림이 부서질까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연습경기가 진행되고 나면, 선수들 사이에서 정보가 돌기 시작한다. 다른 팀들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새로 온 외국선수 기량은 어떤지 등 말이다. 나 역시 이런 내용들이 궁금해 연습경기를 취재 오는 기자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팀의 친한 선수들과 통화하면서 물어보곤 했다.

 

‘쟤네는 이번에 우승하겠는데?’ 실력 좋은 팀과 외국선수들은 감추려고 해도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선수들도 그런 소문에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크게 신경 쓸 일들은 아니다. 연습경기와 정규리그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연습경기에서는 수비 전술을 하나, 혹은 두 개 정도만 갖고 운영한다. 시즌이 시작되면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영상에 답이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 후배들이 생각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상대가 지난 시즌, 혹은 연습경기에서 사용한 수비전술을 ‘자신의 포지션’에서 연구하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2대2 수비를 예로 들어보자. 2대2 수비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아야 5개 정도다. 그러면 그 다섯 개 수비 전술에 대해 준비를 해두면 된다.

 

상대가 이렇게 수비하면 드리블을 길게 2번, 혹은 짧게 1번 하고 점프슛, 저렇게 수비하면 드리블 대신에 빨리 공을 가까운 곳으로 패스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등 침착하게 대응하면 공격자가 아무래도 수비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걸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든 정답은 ‘경기 영상’에 다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난 그 어느 선수보다 경기영상을 많이 봤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경기를 뛰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잘 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는 광주고와 결승에서 맞붙었고, 열심히 뛰었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침 그 경기는 TV로 중계되었고, 어머니께서 녹화를 해두신 덕분에 소장할 수 있었다.

 

사실, 그 경기에서 나는 아주 잘 했다. 그래서 그 경기를 보고, 또 봤다. 급기야 그 경기를 아예 외워버릴 정도로 봤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공부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잘 했으니까, 내가 잘 한 경기를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본 건데 그게 습관이 된 덕분인지 내가 뛴 경기는 항상 돌려서 봤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영상을 바로 찾아서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모든 경기를 다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녹화된 경기는 늘 계속해서 보고 또 봤던 것 같다.

 

프로에 데뷔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구단에서 연습경기를 촬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경기들도 역시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시즌 경기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 계속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패스길이 보이고 경기흐름이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선수들의 성향도 파악되었다. 한번 효과를 본 뒤부터는 경기를 보고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프로선수 생활을 하면서 내게 큰 도움을 준 좋은 습관이지 않았나 싶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12-2013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리온과 맞붙었을 때였다. 우리는 1~2차전을 이기면서 쉽게 4강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5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4차전에서 (전)태풍이 형은 정말 막을 수 없는 선수였다. 여러 명이 번갈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태풍이 형을 어떻게 막아야 하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코칭스태프도 고민이 많으셨겠지만, 내 상대가 그렇게 펄펄 나는 모습을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영상을 계속 보니 찾은 방법이 있다. 바로 파울 작전이다.

 

초반에는 파울을 최대한 아꼈다가 4쿼터에 태풍이 형이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면 파울로 끊었다. 몇 번 반복하니 태풍이 형도 짜증이 났는지 공격을 안 하게 되었다. 결국 흐름이 우 리쪽으로 넘어왔고, 우리는 고전 끝에 78-69로 이기면서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작년에 한 유튜브 방송에서 (전)태풍이 형과 나가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태풍이 형도 그 경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너무 짜증 났다며, 왜 그리 파울로 끊었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결국 경기영상을 많이 돌려보면서 찾은 답으로 태풍이 형을 괴롭혔던 것이 경기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뱅크슛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던 비결도 경기영상 덕분이었다.

 

경기를 보면서 ‘아! 여기서는 투 드리블보다는 원 드리블이 낫겠네’, ‘아! 여기서는 훼이크를 먼저 하고 던지면 좋겠네’ 등 경기를 수백, 수천 번씩 돌려보면서 점프슛 하나로 여러 옵션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비단 2대2 뿐만이 아니다. 지역방어를 깨는 방법, 상대가 쓰는 수비 전술과 패턴, 우리 팀과 상대팀 선수 성향, 경기 흐름, 나와 팀이 잘 하고 못했던 것 등… 모든 것들이 영상에 다 있다.

 

상대 지역방어를 잘 공략했던 사람으로서, 한 번의 패스만으로 지역방어를 깰 수 있는 노하우를 갖게 된 것도 경기를 수없이 본 덕분이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한다.

 

꾸준히 보다 보면 이제 선수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연습경기를 하게 되면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올해 처음으로 오는 외국선수가 볼 관리를 잘 하는지부터 본다. 공을 갖고 있는 동작들을 유심히 보면 스틸을 노려도 되는 선수인지 아닌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선수가 오른쪽을 좋아하는지 왼쪽을 좋아하는지, 슛이 있는 선수인지, 공을 받아서 바로 던지는 슛이 좋은지, 아니면 자신만의 슈팅 루틴이 있는 선수인지, 패스를 할 줄 아는지, 수비에 막혔을 때 밖으로 빼는 능력이 있는지 등 성향을 빨리 파악하려고 한다.

 

이걸 연습하면 나중에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자동으로 보이게 된다. 또, 경기를 많이 보면 내가 하는 스타일로 이 선수를 괴롭힐 수 있을지 답을 얻게 된다.

 

이처럼 난 후배들이 몸으로 하는 연습뿐 아니라, 머리로 하는 연습도 많이 하길 바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좀 어려웠던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리온 윌리엄스(현 서울 SK)다.

 

리온의 공은 참 뺏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일단 공을 쥐는 힘이 굉장히 좋아서 공을 쳐도 잘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무리하게 공격을 하지 않고 굉장히 안정감 있게 플레이하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는 스틸을 많이 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괜히 무리해서 스틸을 하려다가 내 수비에게 점수를 줘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못 뺏은 건 아니다.

 

설렘, 두려움, 기대감 등 시시각각 내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는 여러 감정이 최고조로 이르는 때가 시즌 개막이 바로 다음 주라는 것을 알았을 때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1~2022시즌 개막을 하루 앞둔 시점이다.

 

은퇴 후 공을 잡을 일이 없어 농구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접어두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많이 긴장되고 설렌다.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중계로 경기를 보게 되겠지만, 모든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여름 동안 고생했던 땀방울과 눈물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길 바라고, 나 역시 열심히 응원할 것이다.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하고 볼거리가 많은 2021~2022시즌이 되길 기대한다.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저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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