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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조직력 : 쉽지만 어려운 단어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1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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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9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아직 완전한 겨울은 아니지만, 선수 시절에 시즌 중 몸 관리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인지 패딩에 목도리는 기본으로 하고 다닌다. 몸에선 땀이 나는데도 말이다.

시즌 중에 아프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라면 공감 할 것이다. 그래서 미리미리 관리를 하거나 감기가 걸릴 것 같은 조짐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한다. 갈수록 쌀쌀해지는 만큼 선수들도,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분들도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다.

브레이크 아닌 브레이크 타임을 앞두고 각 팀들은 치열하게 승수 쌓기에 임하고 있다.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부터는 상대팀에 맞게 공격, 수비 전술을 다양하게 준비해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순위표에도 변화가 있다.

경기를 하다보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경기 중에 작은 트러블도 일어나는데, 그런 작은 불씨가 팀 조직력에 영향을 줄 때도 있다. 단체 운동은 코트에서 뛰는 선수 뿐 아니라 벤치선수들까지도 한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만큼 좋은 조직력이 곧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조직력 강화를 위해 경기장 안팎에서 노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서로 감정이 상할 말은 아끼려 한다. 또 시즌 전에는 경기력이 떨어진 선수들을 위해 쉬는 날 맥주도 한 잔 하며 기분을 풀어주기도 한다.

패스 미스는 누구의 잘못일까

팬 여러분들은 경기 중에 패스 미스가 나오면 선수들이 서로 손을 들고 미안하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네 잘못이잖아’라고 꼬집는 것이 아니라, 일단 본인이 먼저 미안하다고 손을 드는 것이다. 어차피 실수는 일어난 것이고, 경기는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거기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서로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패스를 준 사람은 정확히 못 줘서 미안하다고, 패스를 받으려 했던 사람은 제대로 못 움직여 미안하다고 손을 드는 것이다.

반대로 ‘내 실수가 아니야!’라는 것을 어필하고자 짜증을 내거나 남 탓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조금씩 감정이 상해 조직력이 무너진다.

어릴 때부터 코치, 선배님들께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와서인지, 나도 항상 이런 부분을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해왔다. 그러다보니 실수를 하고, 남 탓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한 발 더 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부분은 일상에서도 많이 도움이 된다. 실수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빨리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팀 조직력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고, 결국 좋은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다시 패스 미스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사실, 패스 미스는 누군가의 잘못이 명백히 있는 경우도 있다. 약속대로 움직이지 못했다든지, 패스가 너무 길었다든지 하는 상황 말이다. 나 역시도 패스 미스를 줄이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패스를 받는 사람이 가장 좋은 타이밍에 패스를 받을 수 있게 많을 것을 연구하고, 선수들 성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 ‘좋은 패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한 가지 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패스에 팀원들을 맞추게 하지 말고, 팀원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패스를 주라고 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 ‘내가 이렇게 움직이면 패스가 들어올거야’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패스를 잘 했던 선배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선수들의 움직임, 스텝, 좋아하는 자리 등등 많은 것을 머리에 넣어두고 경기를 하셨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이든 내 패스가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그들의 움직임을 공부하고 머리에 넣고 경기를 했다.

특히 슈터들은 반박자만 늦게 공이 와도 슛 밸런스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빙슛과 세트슛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한 박자가 늦어지더라도 만들어서 던질 수 있는 선수인지 등을 파악하고 연구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뛰어 달라, 저렇게 뛰어달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이 내게 ‘이렇게 뛸 테니 좀 봐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눈을 보고 있어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득점 만들어줄게!

삼성에서 선수 생활 할 때였다.

 

김준일 선수는 공격에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종 무리한다 싶을 정도의 플레이도 하곤 했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득점을 올리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준일아, 나한테 정확하지 않아도 되니까 스크린만 걸어줘. 그러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득점 만들어줄게”라고 말했다.

시즌 바로 전까지 김준일 선수와 2대2 플레이가 거의 없었지만, 몇 차례 내 패스로 쉽게 득점을 올리다보니 정말 고맙게도 내가 공을 잡을 때면 항상 스크린을 와주었다.

사실, 패스를 주는 것도 쉽지 않지만, 스크린을 걸어주는 사람도 많은 움직임과 몸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크린을 제때 와서 정확히 걸어달라고 짜증을 내기 보다는, 내 수비가 힘들어지게 좀 도와달라고 얘기 하는 것도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좋은 대화법일수도 있다.

내가 다른 선수들에게 기대를 하고 뛴다는 건, 다르게 생각하면 내 실력이 모자라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동료가 내 생각대로 뛰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 미스가 난 것이 아니라, 내가 동료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미스가 났다고 생각하고 더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연구하고 노력해서 패스 하나로 같은 팀 선수들에게도, 그걸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결과적으로 김준일 선수와의 2대2 플레이는 우리 둘이 같이 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팀 조직력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때 많은 도움을 준 김준일 선수에게 너무 고맙다. 지금 부상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이 힘든 시간이 어쩌면 김준일 선수가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해 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몸 잘 만들어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10년 넘게 프로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승팀들은 한결 같이 그 시즌 최고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몸담았고, 함께 우승을 경험했던 2011-2012시즌의 안양 KGC도 팀 분위기와 조직력이 좋았다. 젊은 선수들도 많았지만, 김성철 코치님과 은희석 감독님 등 각자 위치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해주셨다. 우리 팀은 젊은 선수들이 경기를 많이 뛰고, 관심도 많이 받을 때라 자칫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정신을 못차리고 경기를 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두 선배님께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주셨다. 덕분에 시즌을 거듭할수록 코트 안팍에서 팀이 단단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경기가 잘 될 때는 다 좋다. 관계도 좋고, 경기력도 좋다. 반면 팀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경기가 안 풀리다보면 남 탓을 하는 경우가 늘게 되고, 그러면서 안 해도 될 말을 뱉었다가 감정이 서로 상할 때도 있다. 이게 바로 잘 되는 팀과 안 되는 팀의 차이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느껴진다.

감독, 코치들이 팀의 기둥, 혹은 리더 역할을 해줄 선수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 코치는 최고의 리더였다. 아마 그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와 양동근 형은 같은 팀에서 시즌을 치러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같이 생활을 했는데, 그때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비록 나는 양동근 형처럼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를 비롯한 많은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대만에서 대회를 치르던 중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형이 부상으로 경기를 결장하게 됐다.

그런데 이 형은 자기 부상 걱정보다는 오히려 선수들에게 미안해하며 선수들이 더 쉴 수 있도록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다. 음식이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선수들에게 손수 라면과 햇반을 준비해 주셨다. 보통 선수들은 쉽게 못할 일이다. 그것도 최고참이 그렇게 움직이시니 후배들도 다른 생각을 안 하고 경기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이런 노력들은 아마 소속팀 현대모비스의 우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메달을 안긴 조직력

양동근 형을 이야기하다보니 2014년에 있었던 FIBA 농구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도 생각이 난다. 우리는 시즌 후 짧은 휴식을 가지고 진천 선수촌에 모여서 합숙을 시작했다. 준비 과정도 좋았고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팀 분위기도 당연히 많이 쳐진 상태였지만, 아시안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잊고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양동근 형과 조성민 형이 노력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일부러 농담도 많이 하고, 어린 후배들에게 장난도 치면서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목표를 설정하고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

사실, 훈련도 정말 힘들었기에 선수들끼리도 서로 더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훈련하는데, 금메달을 못 따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게 아시안게임이 시작 되었고, 우리는 예선전부터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를 쌓아갔다. 선수 개개인마다 컨디션이 다 달랐지만 일단 이기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점이나 고민을 얘기하지 않고, 오로지 금메달 획득을 위해 팀을 위해 희생했다.

첫 경기부터 완벽한 조직력은 아니었지만, 내 기억에는 필리핀 전 이후로 팀의 조직력이 한 층 단단해 지지 않았나 싶다. 필리핀 전은 분위기가 묘했다. 필리핀 응원단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하는 경기인데도 필리핀에서 경기 중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응원 덕분인지 필리핀은 초반부터 우리를 무섭게 몰아붙였고, 한때 10점차 이상으로 리드를 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4쿼터에 경기를 뒤집고 97-95로 승리했다. 이 경기 승리 덕분에 우리는 4강 진출을 결정지었다.

큰 무대에서 어려운 경기를 역전해서 이긴 덕분일까. 우리 선수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조직력의 완성도가 오를 시점에 선수들까지 사기가 오르다보니 이후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4강에서 일본(71-63)을 제압하고, 결승에서도 하메드 하다디의 이란(79-77)을 넘으며 마침내 우리는 목표로 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 순간을 회상하니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사실 나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획득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당시 나는 우리가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할 때 사직실내체육관에서 경기보조요원을 맡고 있었다.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 농구선수들이 대회기간 동안 경기보조요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현장에서 2002년 결승전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꼭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을 따야지’라고 꿈꿨는데 12년 만에 그 꿈을 이루게 되어서 두 배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글을 읽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꼭 나같은 꿈을 꾸고, 이를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

서두에 얘기 했지만, 시즌을 치루다 보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시즌은 길다.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를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

조직력은 전술이 전부가 아니다. 선수간의 신뢰가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불만과 같은 악감정을 섣불리 표현하는 것보다, 조금은 인내하고 희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할 수 있다.

2라운드도 어느덧 중반을 지났다. 지금쯤이면 순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걱정이 많을 시기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앞만 보고 서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다치지 말기! 파이팅!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저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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