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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식스맨에서 주전 도약' 잇몸들의 반란!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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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7

 

은퇴를 하고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사실 은퇴를 하고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막상 집에서 쉬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다! 하하하. 제일 큰 이유는 운동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 이지 않을까 싶다.

 

많이 무료 하고 시간이 잘 가지 않을 거라는 다수의 충고도 있었지만, 나름 은퇴 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인지 타이트하지 않게 스케줄을 짜고 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온전히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항상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옥에 티가 아닌가 싶다.

시즌을 한창 치르고 있는 팀들도 비슷할 것이다. 시즌 시작 전에 세운 목표와 계획, 방향 등이 있겠지만, 변수는 늘 도사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부상일 것이다.

부상은 어느 팀에게든 경계대상 1호다. 부상으로 인해 초반에 연패에 빠지면 팀 전체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기 때문에 각 팀 코칭스태프들도 선수들 몸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하지만 농구라는 종목이 워낙 몸싸움이 많고, 착지와 방향 전환 등 몸에 피로가 누적되는 동작들도 많다보니 부상이 없을 수가 없다.

특히 주축 선수들의 부상은 치명적이다. 이 경우, 감독님들 모두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타격이 크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던가. 부상자가 발생하면 그 자리를 메워주는 선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올 시즌도 그렇다. ‘잇몸’ 이상의 존재감을 뽐낸 선수들이 나타나 팀을 돕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KT 정성우 선수와 KCC 김상규 선수가 눈에 띄었다.

◇ 자신감 up 정성우와 김상규의 놀라운 성장

 

먼저 정성우 선수가 지금까지의 보여준 활약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시즌 전, 허훈 선수가 연습경기에서 발목을 다치면서 팀은 물론이고, 팬들도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다. 허훈 선수가 팀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단순한 기록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아마도 팀은 비상에 걸렸을 것이다. 이로 인해 백업선수들 부담도 커졌을 것이고, 허훈 선수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재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의외의 선수가 그 부담을 덜어줬다. 바로 정성우 선수다. KT에 새로 합류한 정성우 선수는 보란 듯 그 공백을 메우며 팀의 선전을 도왔다.

정성우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성우 선수는 보란 듯이 허훈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꾸며 팀을 이끌었고 가지고 있는 모든 부분에서 성장을 했음을 보여줬다.

일단 경기를 할 때 표정부터 자신감에 차 있었다. LG에서 KT로 오면서 아마 엄청난 준비와 노력을 했을 것이고, 또 새로운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한 몫 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경기를 풀어가는 디테일은 아직 조금 미숙해 보이기도 하지만, 마치 ‘돌격대장’처럼 상대 수비를 휘젓고 다녔고, 수비에서도 빠른 발과 힘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KT 선수단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그동안 정성우 선수는 슈팅이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올 시즌은 그렇지 않다. 3점슛만 봐도 지난 시즌까지 30.0%를 간신히 넘겼지만 올 시즌은 경기당 1.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면서도 35.7%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려서 시즌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KT의 ‘돌격대장’으로서 팀에 큰 힘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김상규 선수도 빼놓을 수 없다. KCC는 송교창 선수가 불의의 부상을 입으면서 결장이 길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김상규 선수의 출전시간이 늘었는데, 원래 갖고 있던 실력을 다시 보이고 있다.

아마 김상규 선수도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말 못할 본인만의 힘든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주변의 냉정한 평가 역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라운드 7.4득점 5.0리바운드, 3라운드 15.0득점 5.0리바운드로 점차 출전시간이 늘면서 자신만의 장점을 잘 발휘하고 있다. 송교창 선수의 공백도 있는 힘껏 잘 메워주고 있다.

김상규 선수는 201cm의 큰 키에 좋은 슛 감각을 갖고 있는 선수다. 또 무엇보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간결하게 플레이를 하기에 팀에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 출전시간이 20분대로 계속 주어지고 있기에,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송교창 선수가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컨디션과 자신감을 잘 유지한다면 어느 역할에서든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식스맨들이 경기 뛰기 더 힘든 이유

이처럼 언제든 주전으로 올라설 기량을 갖출 식스맨의 존재는 주축만큼이나 중요하다.

식스맨이 되는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저연차 시절, 식스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주축으로 오랜시간 뛰다가 나이가 들면서 식스맨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감독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식스맨으로 나오는 선수들은 보통 많이 뛰면 10~15분정도 경기를 뛴다.

그렇다면 그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 쏟아 붓고 나오면 된다. 감독이 자신을 기용함으로써 얻고자하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 수비에 장점이 있는 선수는 상대 에이스를 확실히 괴롭혀주면 되고, 경기 운영이 좋은 선수들은 경기가 어수선하거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정리를 잘 해주면 된다. 슈터라면 1~2방 터트려주면 된다.

정말 심플하게 생각하면 그 임무를 코트에서 잘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식스맨들은 경기 시작을 코트가 아닌 벤치에서 한다. 무엇보다 언제 투입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계속 몸을 풀고 있어야 하고, 경기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벤치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경기를 봐야 한다.

또 중간에 투입되면 경기 감각에서도 차이가 난다. 따라서 몸이 풀릴 시간도 필요한데, 식스맨들에게는 그 기회가 오래 주어지지 않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식스맨들은 앞서 내가 열거한 것처럼 자기 역할에 재빨리 녹아들어 경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팬분들도 그런 고충 아닌 고충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 식스맨들이 경기를 잘 하려면?

나 역시 DB에서는 식스맨으로 선수생활을 했다. DB에서의 첫 시즌, 1~2라운드는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나는 주로 전반은 통으로 쉬고, 3쿼터부터 출전하곤 했다. 이미 그 전에 김주성 코치의 선수시절 사례가 있었기에, 이상범 감독님께서는 나를 과감하게 후반에 기용하는 용병술을 사용하신 것 같다.

 

이 경우, 일단 몸을 다시 풀어야 했다. 이미 전반에 경기를 뛴 선수들에 비해 몸이 굳은 상태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경기를 뛰어야 했다. 그리고 1~2쿼터 실수는 어느 정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3쿼터부터는 실수 하나에 경기 흐름이 뒤바뀔 수 있기에 더 집중해야 했다.

 

사실, 프로에서 식스맨이라는 자리 역시 굉장히 잡기 힘든 기회임은 분명하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을 할 것이며, 또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경기영상을 많이 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선수 시절, 경기영상을 보면서 경기가 풀리지 않는 타이밍에 우리가 갖고 있는 패턴을 끼워 넣는 상상을 하곤 했다. 경기 중에는 미처 사용할 생각을 못했지만, 다시 보다보면 ‘아, 이럴 땐 이런 패턴이 더 좋았겠네’라고 생각하고 분석하기도 했다.

경기를 오래, 많이 뛰면 본능적으로 알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농구는 제 아무리 경력이 많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풀어가기엔 너무 많은 선택과 변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경기영상을 보면서 내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생각했고,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DB에서 3쿼터부터 투입되는 내 역할에 적응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공부와 연습이 도움이 많이 됐다.

식스맨들이 경기흐름을 잘 일고 대처할 수 있는 눈과 지혜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1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단련해 얻은 것이라면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에서 기회를 잡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늘 같은 운동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 힘들 것이다.

그 기회를 잡고 싶으면 정답은 하나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내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기회가 마침내 나에게 왔을 때는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게 슛인데, ‘나는 패스도 잘 해요’라는 마음으로 욕심을 부리면 미스가 나게 된다. 이 경우 감독 입장도 믿음을 버릴 수도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당시 연세대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기에 나는 10분 정도 출전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같은 포지션에 있던 선배는 대학리그 최고의 선수였고, 난 이제 막 대학농구에 발을 내딛은 선수였다.

 

하지만 그 선수들 사이에서 10분이라도 시합을 뛸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만 했기 때문이다. 내 장점은 패스와 존 디펜스 공략이었다. 감독님은 그런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호명하셨고, 나 역시 주어진 범위에서 내 역할만 집중했다.

물론, 나도 득점하고 싶고, 드리블도 마음대로 하고 싶었지만 그런 역할을 잘 해낼 선수들은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기에 절제해야 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 팀의 많고 많은 조각 중 내가 갖고 있는 조각에만 집중했던 것이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1분이도 더 뛸 수 있었던 요인이었던 것 같다.

식스맨은 정말 힘든 자리다. 누구보다 잘 안다. 조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꽉꽉 채워서 올라가길 바란다. 나중에는 그 조급해했던 시간도, 기회를 잡기 위해 힘을 쏟았던 시간도 본인의 농구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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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PS. 선수들, 원정에서 뭐하냐고요?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은 12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 끝난 시점이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원정길에 오른 선수들이 각별히 더 주의를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아마 원정길 호텔에서 이 글을 읽는 선수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탓에 요즘 선수들은 원정경기를 가더라도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서 보낼 것이다.

종종 내게도 ‘원정에 가면 선수들은 무엇을 하고 지내나요?’라 묻는 분들이 있다. 팬들도 궁금할 것이다 ‘이 시국’에 호텔에서는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말이다.

선수들마다 다 다르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는 선수들도 있고, 치료에 전념하는 선수들도 있다. 또 연인이나 친구와 통화하거나, 방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한번 방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게 싫기도 했고(농구선수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렇게 누워서 대부분 책을 보거나 짬짬이 영어 공부를 했다.

DB 시절, 나의 원정길 룸메이트는 허웅 선수였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형님, 뭐하세요?”라고 묻곤 했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허웅 선수도 책을 갖고 와서 읽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같은 책 한 권을 들고 다닌 건 안비밀이지만 그래도 후배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뿌듯했다.

홈에서든, 원정에서든 가장 중요한 건 휴식과 회복이다. 특히나 원정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함이 있다(그래서 대부분의 팀들이 익숙한 홈에서 더 경기력이 좋지 않나 싶다). 선수들의 준비만큼이나 팬분들의 응원도 중요하다. 팬들 응원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 힘에 힘입어 경기를 잘 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곳이 원정이라도 말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분들이 늘어 한동안 정말 보기가 좋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행여나 관중들이 줄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일 것이다. 건강이 우선이다. 선수들, 팬들 모두 항상 마스크 잘 쓰고 다니시고, 날씨가 추워지는 만큼 따뜻하게 입어 감기도 조심하셨으면 좋겠다.

모두가 무탈하게 시즌을 완주하길 응원하며! 잇몸들도, 식스맨들도 모두 최선을 다해 의미있는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저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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