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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 마뚜루] 이택근, 24년만의 4할타자로 탄생할까

--홍윤표 야구

by econo0706 2022. 9.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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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5. 22.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의 무대다. 프랑스 디동 신부가 제창, 192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식 채택한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Cit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 표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인간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기본 종목인 육상의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한계로 꼽는 수치는 9초50(남자 100m), 2m50㎝(남자 높이뛰기), 2시간5분(남자 마라톤) 등이었다.

남자 100m는 금년 5월 13일 미국의 스프린터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이 9초77로 세계타이록을 세웠으나 아직 9초50에는 못미쳤다. 하비에르 소토마요르(쿠바)는 1993년 남자 높이뛰기에서 2m45㎝를 넘은 적이 있지만 그나마 약물 복용 시비에 휘말려 퇴색했다. 마라톤에서는 모로코 출신인 할리드 하누치(미국)가 2002년 런던대회에서 2시간5분38초를 기록, ‘마의 2시간 5분’벽에 근접했고 2003년 9월27일 케냐의 폴 터갓이 베를린대회에서 2시간4분55초로 마침내 2시간 5분벽을 깼다.

프로야구 무대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으로는 타율 4할을 꼽는 이가 많다. 일반적으로 ‘3할 타율만 기록해도 훌륭한 타자 ’라고 평가받는 것을 감안한다면 4할대 타율은 그야말로 꿈의 기록이다.

역대 4할타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일본 프로야구판에서 재일동포 장훈은 일찍이 4할 타율을 일러 ‘꿈 너머 꿈’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 1967년부터 3년 연속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올랐던 그는 1970년에 전인미답의 4할 타율에 도전했다가 좌절, 3할8푼3리에 그치자 그 같은 말을 남겼다.

 

▲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 Ted Williams (테드 윌리엄스)


양 리그제가 정착된 1901년 이래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율은 8명이 모두 13차례를 기록했다. 그 마지막 주자였던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1941년. 4할6리)’테드 윌리엄스가 지난 2002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기록도 역사에 묻혔다.


기록은 세우기 위해 있고 깨는 데 그 의미가 더해진다.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도 해마다 시즌에 들어가면 ‘4할 타자’의 출현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30게임 남짓 지나면 이미 3할대 타율로 미끄러져 시야에서 벗어나곤 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백인천 전 LG 감독이 일본무대에서 귀환,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68게임에 출장해 유일무이하게 4할 타율(.412)을 달성했으나 당시 팀당 경기수가 80게임에 불과, 비교 가치가 떨어진다. 1994년엔 이종범(당시 해태)이 102게임(8월21일)까지 4할 타율에 머물러 주위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으나 끝내 기록 작성에는 실패했다.

 

▲ KBO 유일의 4할타자 백인천 / 연합뉴스

 
올해는 22일 현재 현대 유니콘스의 이택근(26)이 29게임에 나가 4할2푼2리(102타수 43안타)의 고타율로 리딩히터 자리를 고수, 눈길을 끌고 있다. 이용규(.349. 기아), 양준혁(.343. 삼성)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타격 선두 다툼을 벌이던 차에 이택근은 단숨에 판을 휘어잡았다. 5월16일 규정타석을 채우고 제도권에 진입, 훌쩍 리딩히터로 돌출한 것이다.

이택근의 고공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4할 타율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갈 길이 멀어 아직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택근의 타격 돌풍이 단순한‘일과성 바람’이 아니라 팀 선두 현대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점, 특히 득점권 타율이 5할2푼(롯데 이대호와 공동 선두)에 이를 정도로 팀 기여도가 높다는 점 등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이택근은 부산 태생이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사직구장에 자주 갔다. 그의 부친이 야구광이었다. 드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야구선수가 됐다고 한다.

부산 배정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글러브를 낀 이택근은 부산 대천중 시절에는 주로 포수와 투수를 맡았다. 경남상고 진학 후에는 포수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고3 때는 아시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베스트 9에 선정되어 우수 포수상도 받았다. 그 때 일본 프로야구 간판 투수인 마쓰자카(세이부 라이온스)도 출전했다. 고려대에 들어간 다음에는 2학년 때부터 줄곧 포수 마스크를 썼다.

 

▲ 현대 유니콘스 이택근 / OSEN


2003년 프로에 입단 후에는 박경완의 이적으로 은근히 주전 포수 자리를 기대했으나 김동수에게 밀려 1루수, 지명타자로 출장했고 최근에는 현대 1번 타자 겸 좌익수로 뛰고 있다. 올해도 선발 포수로 나선 적이 있다. 소화한 포지션이 포수 외에도 내야 1, 3루수와 외야 중견수, 좌익수 등이다. 여러 포지션을 두루 섭렵했으니 ‘전천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정작 이택근 자신은 4할 타율에 대해 무덤덤하다. 그는 “많은 분들이 4할에 대해 물어보지만 싱거운 대답일지 몰라도 난 4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며 “솔직히 3년 동안 백업 노릇을 하면서 많은 걸 느껴 지금은 내가 야구장에서 야구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이택근은 다만 “1번타자이므로 상대 투수의 공을 많이 보고 싶고, 출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타율을 까먹지 말아야 겠다는 각오로 타석에 들어선다”고 덧붙였다. 그는 발도 빠르다. 팀 내에서 정수성에 버금간다. 빠른 발을 믿다가 2루타를 치고 3루까지 내쳐 달리다가 아웃당한 적도 있다.

타격 감각과 빠른 발, 성실성을 갖춘 데다 오로지 야구에만 몰두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택근은 그런 자세를 지녔다. 올 시즌 전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 때 동료 선수들은 쉬는 날을 이용해 너도나도 쇼핑을 다녔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이 걸작이다.

“2년쯤 지나니 야구선수에게 옷은 단 한 벌, 운동화는 한 켤레만 필요하더군요. 신인 때 많이 사 봤는데 한 번도 신거나 입지 못했어요. 거기에 야구 잘하면 정말 나갈 시간이 없겠더라구요!”.

이럴 때는 느낌표가 여러 개 필요하다.

 

홍윤표 기자 / 대표이사 chuam@osen.co.kr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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