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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 마뚜루] 이승엽이 당한 은닉구는 '투수 보크' 였다

--홍윤표 야구

by econo0706 2022. 9. 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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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4. 05

 

야구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부를 내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야구는 상대 사인훔치기나 약점을 캐는 데 아주 능하다는 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야구선수들에게는 저마다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있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이 때로는 약점으로 연결돼 상대방의 수읽기에 역이용되거나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한다.

버릇은 일본말로 ‘구세(くせ)’라고 한다. 일본 야구단은 상대편 외국인 선수의 ‘구세’를 조직적으로 알아내 정보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는 ‘국민타자’ 이승엽(30)이 지난 2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은닉구’에 당한 것을 두고 일본 언론은 이승엽의 구세가 상대 수비수 사에키에게 읽혔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요코하마 1루수 사에키가 평소 이승엽이 1루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는 버릇을 관찰해 뒀다가 은닉구(隱し球=가쿠시타마)로 태그아웃시켰다는 것이다. 사에키는 은닉구의 전문가다.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인 기요하라 가즈히로(오릭스 바펄로스)는 요미우리에서 뛰고 있던 2001년 4월 13일 사에키의 은닉구에 속아 아웃당한 적이 있고 2005년 5월8일 롯데 마린스의 용병 사부로도 중전안타를 치고 나가 1루에서 당한 바 있다.

 

▲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이승엽 / 제주일보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은닉구는 대개 2루수가 성공시킨 사례가 많고 1970년대 말 도에이 플라이어스는 한 시즌에 4차례나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은닉구(hidden-ball trick)의 발상지는 물론 야구 종주국인 미국이다. 1908년에 그런 사례가 있었을 정도로 유례가 오래됐고 195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2루수 닐 폭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빌리 가드너를 상대로 성공한 일이 있다. 가까이는 199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베테랑 3루수 맷 윌리엄스가 1997년 9월 19일 새내기 선수를 상대로 ‘히든볼 트릭’을 행한 바 있다.

한국 프로야구판에서는 재일동포 출신인 고 장명부가 프로야구 초창기 청보 핀토스 시절 내야수와 짜고 자주 시도, 상대 선수가 한 차례 당한 적이 있다.

은닉구는 속임수로 상대에 대한 기만행위다. 야구규정에서도 은닉구에 대한 부정적인 요인을 감안, 투수의 위치에 따라 부정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즉 내야수가 공을 감추는 순간 투수가 마운드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면 부정 행위가 돼 즉각 투수 보크를 선언해야 한다<야구규칙 8.05 부기2 원주 (a)항>.

한국야구위원회(KBO) 황석중 규칙위원은 이승엽이 은닉구에 속아 아웃된 장면은 거꾸로 요코하마 투수 요시미에게 보크를 선언해야 마땅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사에키가 공을 받아 감추는 장면에서 요시미 투수가 1루를 쳐다본 다음 포수쪽으로 한 발 내딛으며 수작을 나누는 척했다는 것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사에키가 은닉구를 시도하는 대목에서 요시미의 발이 투수판 부근에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은 요시미에게 보크를 선언하는 것이 규칙에 부합된다는 게 황 위원의 설명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이같은 은닉구 속임수는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도 그 사례를 보기 어렵다. 다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가끔 시도되는 꼼수다.

이승엽은 은닉구에 당한 다음 헬멧을 팽개치며 스스로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런 잔꾀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승엽이 일본야구의 세밀성이나 집요함에 익숙해진 다음 큰 무대인 메이저리그로 넘어간다면 이치로 못지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인 만큼 한 때의 실수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이승엽은 앞으로 잔머리 야구를 충분히 숙지하되 선이 굵고 통이 큰 승부로 일본야구를 넘어서야 한다.

 

홍윤표 본사 대표 기자 chuam@osen.co.kr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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