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3.
“열 번 갈아서 안 드는 도끼가 없다.”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공을 들이면 뜻한 성과를 거두게 됨을 이르는 속담이다. 반면에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라는 말도 있다. 자기 능력 밖의 불가능한 일에 대해선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좋다는 언속(諺俗)이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한다.”라고 한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도 하잘것없는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 전심전력을 쏟는다는 말이다. 여기에도 대칭적 뜻의 말이 실재한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牛刀割鷄·우도할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지나치게 큰 수단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표현이다.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엔, 이처럼 상반된 경우의 세언(世諺)이 여럿 있다.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사는 천차만별이다. 이같이 천태만상의 세상일을 하나로 꿰뚫는, 오로지 단 하나의 참은 존재하기 힘듦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닭 잡는 데 닭 잡는 칼만 쓴' 산투, 예견된 충격패 초래
병법에서도 마찬가지다. 『兵經百字·병경백자』는 “선(先)이 으뜸이다. …. 선을 활용할 수 있는 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꿸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곧, “먼저 출발하여 제압한다[先發制人·선발제인]”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전국책』은 상대적 개념을 내세웠다. “나중에 출발하여 제압한다[後發制人·후발제인]”라고 기다림의 미학을 주장했다. 역시 절대선은 존재하기 힘듦이 엿보인다.
현대 스포츠는 곧잘 ‘전쟁의 축소판’으로 비유된다. 삭막한 은유일지 몰라도, 스포츠 역시 승패를 다투기에 감내해야 할 표현이다. 실제로, 각종 스포츠에서 병법의 전략과 전술이 곧잘 들어맞는 데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콘퍼런스리그(UECL) G조 3라운드에서, 토트넘 홋스퍼는 SBV 피테서(비테세)에 충격적 패배(0:1)를 당했다. 1982년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팀을 이겨 보지 못한 피테서에 당한 일격이라 그 충격의 도는 더욱 컸다.
비록 아른험 헬러돔에서 벌어진 원정 경기였을망정, 토트넘은 매 시즌 UEFA 리그 1위인 PL 패권을 넘보는 강호인 명가다. 반면 피테서는 1956년 출범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레디비지에)서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중·상위권 클럽이다.
장수가 전투를 치를 때 어떤 전략을 취하고 그에 걸맞은 전술을 운용해야 할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한 판이었다. 결과론이긴 해도 누누 산투 토트넘 감독이 취한 전략과 이에 따른 용병술이 잘못된 데서 말미암은 실패작이었다.
땅 짚고 헤엄칠 만한 상대 있나? UECL 패권 도전이 더 현실적인데
산투 감독은 ECL에서만 38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임을 고려해 UECL 피테서전을 쉬어 가는 여정쯤으로 보지 않았나 싶다. 선수 기용 면에서 여실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산투 감독은 지난 18일 ECL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 뛰었던 베스트 11을 단 한 명도 이번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벤치에마저도 앉히지 않았다.
산투 감독은 이미 뉴캐슬전부터 피테서전 출장 선수를 복안으로 그렸는지 모른다. 이 맥락에서, 뉴캐슬전에서 손흥민과 해리 케인을 비롯해 선발 출전한 11명을 교체 없이 풀가동했을 때 심중을 굳혔던 듯하다.
산투 감독은 피테서를 너무 가볍게 봤다. 땅 짚고 헤엄칠 만한 상대로 여겼다. ‘닭을 잡는 데 굳이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마음가짐에서 비롯한 성싶은 용병술이 이를 말해 준다. 승리했더라면 “몇 수를 내다보는 포석이다.”라는 경탄을 자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산투 감독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듯싶다. 토트넘의 1진과 2진 사이의 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나 여겨진다. 어쩌면 감독으로서 애써 부정하고 싶은, 팀 전력에 대한 과신이나 애착인지 모르겠다. 피테서전에서 드러났듯, 토트넘의 1진과 2진의 전력 차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 새의 힘이 소보다 약하기는 해도 소의 힘과 마찬가지로 역시 힘은 힘이라는 뜻의 속담이다. 곧, 누구에게나 크나 작으나 각기 제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산투 감독은 결국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경적필패]”라는 치명적 우를 범했다. 그 어리석음은 토트넘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형세로 이어졌다. 10월 들어 3연승(UECL 포함)을 내달리며 8라운드 현재 5위로까지 뛰어오른 기세가 꺾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쇠가 달궈졌을 때 내리치듯, 지금은 후발제인보다는 선발제인의 묘를 취해야 했을 시기였다.
더욱 피테서전 패배로 말미암아, UECL 16강 진출을 노리는 토트넘의 앞길엔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졌다. 스타드 렌(프랑스·승점 7)과 피테서(승점 6)에 이어 G조 3위(승점 4)로 추락함으로써 예선 관문 돌파가 극히 불투명해졌다. 남은 3경기에서, 토트넘이 전승하더라도 렌이 2승을 추가하면 승점이 같아 무조건 16강 진출이 어려운 실정이다.
8개 조 1차리그를 펼치고 있는 UECL은 각조 1위 팀이 16강에 진출하고, 각조 2위 팀은 UEFA 유로파리그(UEL) 조별리그 3위 팀들과 녹아웃 토너먼트를 치러 남은 8장의 티켓을 다툰다.
토트넘의 객관적 전략상 PL 우승은 다소 힘에 부친다. 이에 비해 창설 무대가 열리고 있는 UECL 첫 패권은 토트넘이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그렇다면 산투 감독은 오히려 UECL 왕좌에 도전함이 더욱 현실적으로 명중할 가능성이 높은 타깃이 아닐까? 베스트 11 운용을 깊이 생각해야 할 산투 감독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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