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7
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돌아갈지언정 되돌아가지 않는다. 만물을 집어삼킬 듯한 세찬 물줄기의 노도도 순류의 운명에 순응한다. 앞 물결을 쫓아 흐를 뿐이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간도 그렇다. 지나온 순간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멈춤이나 돌아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발길을 재촉해 앞으로 나갈 뿐이다.
물과 시간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다. 인간사에 투영될 때 공통 요소로 작용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새것은 옛것을 대신한다. 곧, 세상사에서, 흐름과 지나감은 세대교체로 나타난다.
▲ 올 시즌 첫 맞대결을 벌인 손흥민-황희찬 / 토트넘 트위터
‘축구 본향’ 유럽에서 거세지는 한국 축구 물줄기
새로운 물결이다. 물줄기도 거세졌고, 그 양도 훨씬 많아졌다. 그에 비례해 흐르는 속도도 무척 빨라졌다. 2021-2021시즌 들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를 비롯해 유럽 축구에 내뿜는 한국인 물줄기의 힘이 매우 세차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유럽 리그로 물줄기를 돌리는 기폭제가 됐다. 축구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한국이 창출한 4강 진출의 이적에 따른 촉발이었다. 2005년 박지성이 물꼬를 튼 PL 입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그 대표적 물줄기로 발현됐다.
20년의 세월이 채 흐르지 않았는데도, 한국인 유럽파들이 쏟아 내는 물줄기의 힘은 더욱 드세졌다. ‘한국인 강’으로 합류하는 지류도 다양해졌다. 2020-2021시즌을 기준으로, UEFA(유럽축구연맹) 5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만도 8명에 이르렀다. PL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비롯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이강인(발렌시아→ 현 RCD 마요르카), 독일 분데스리가의 권창훈(SC 프라이부르크→ 현 수원 삼성)·지동원(1. FSV 마인츠 05→ 현 서울)·정우영(SC 프라이부르크)·황희찬(RB 라이프치히→ 현 울버햄튼 원더러스), 프랑스 리그 앙의 황의조(지롱대 드 보르도)·윤일록(몽펠리에 HSC→ 현 울산 현대) 등이 한국인의 기개를 한껏 뽐냈다.
▲ 박지성 / OSEN
UEFA 10대 리그로 범위를 넓히면 12명에 달했다.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김정민(비토리아 SC→ 현 부산 아이파크 임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황인범(루빈 카잔),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의 이승우(신트라아위던 VV→ 현 포르티모넨스 SC 임대)·이재익(로열 앤트워프→ 서울 이랜드) 등도 한국인 물줄기의 힘에 한몫을 거들었다.
2021-2022시즌 지류의 수는 다소 적어졌다. UEFA 10대 리그에 몸담은 선수의 수는 PL의 손흥민·황희찬을 위시해 라 리가의 이강인, 분데스리가의 이재성ㆍ정우영, 리그 앙의 황의조·석현준(트루아 AC), 프리메이라리가의 이승우,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황인범 등 9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순도 면에선, 더욱 높아졌다. 각 리그에서 활기찬 몸놀림으로 축구 본향인 유럽에 휘몰아친 한국 축구의 맹위를 한층 드높이고 있다. 이미 월드 클래스로 우뚝 올라선 손흥민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황희찬과 황의조도 각 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며 리그 골잡이 판도에 변동을 가져올 만한 골 사냥꾼으로 성장했다. 이강인과 황인범은 팀 공수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갈수록 빛을 내고 있다.
손흥민-황희찬, PL을 휩쓸어 가는 거센 한국인 물줄기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국인 첫 축구 해외파는 허정무(66)의 먼 친척인 허윤정(85)이 손꼽힌다. 허윤정은 1969년 홍콩 프로리그에 진출(싱타오 SC)하며 해외 진출사의 첫 쪽을 장식했다. 본격적 지평은 ‘황색 폭격기’ 차범근(68)이 열었다. 차범근은 1980년대 세계 으뜸의 축구 리그로 손꼽혔던 분데스리가를 평정하며 유럽에 한국 축구의 물길을 놓았다.
▲ 국가대표 시절 차범근 / 대한축구협회 제공
1990년대 관망기를 거친 유럽 진출사는 2000년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992년 기존의 풋볼리그에서 탈바꿈한 뒤 세계 최고 축구 리그로 발전한 프리미어리그를 중심으로 힘차게 뿌리를 뻗어 나갔다. 2005-2006시즌 움튼 박지성(~2011-2012시즌)과 이영표(토트넘 홋스퍼·~2007-2008시즌)를 필두로 이번 시즌까지 PL의 땅에 흐른 물줄기는 열넷에 이른다. 설기현(레딩·풀럼), 이동국(미들즈브러), 김두현(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조원희(위건 애슬레틱), 이청용(볼턴 원더러스·크리스털 팰리스), 지동원(선덜랜드), 박주영(아스널), 기성용(스완지 시티·뉴캐슬 유나이티드), 윤석영(퀸스 파크 레인저스), 김보경(카디프 시티)이 그 뒤를 이어 PL 무대를 누볐다.
지금까지 한국인 물줄기가 PL에 가장 많이 합류했던 시기는 2011-2012시즌(박지성·이청용·지동원·박주영), 2012-2013시즌(박지성·지동원·기성용·윤석영), 2013-2014시즌(지동원·박주영·기성용·김보경)으로 모두 넷이었다. 현재 둘(손흥민·황희찬)에 비하면 배나 된다. 하지만 활약 강도는 요즘에 견줘 많이 떨어졌다. 박지성과 기성용 정도가 주전으로 뛰었을 뿐이다.
이번 시즌 황희찬이 새로 흘러들면서, 물줄기의 힘은 몰라보게 거세졌다. 2015-2016시즌부터 7시즌째 몸담으며 이제 팀의 에이스이자 PL의 터줏대감으로 격상한 손흥민과 함께 황희찬은 한국 축구의 진가를 알리는 데 선봉장 역을 튼실하게 해내고 있다. 9라운드를 마치며 팀당 38경기씩 대장정의 ¼가량을 소화한 PL 득점 순위에서, 손흥민과 황희찬은 각각 4골씩을 터뜨리며 나란히 5위에 올라 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까지 PL 통산 202경기에 출장해 73골을 사냥했다. 아시아인 역대 최다 출전자이며 아울러 통산 최다골 기록까지 세웠다. 2020-2021시즌 PFA(Professional Footballers’ Association: 선수 노조) ‘올해의 팀’에 뽑혔을 만큼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홋스퍼는 손흥민의 팀이다.”라는 팬들의 찬사에 딱 어울리는, 팀의 구심점이다.
황희찬은 기대 이상의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손흥민의 PL 데뷔 시절을 연상케 할 만치 폭풍 성장을 뽐낸다. 득점 페이스는 6년 전 손흥민의 기세를 넘어서려 한다. 손흥민은 PL에 첫 모습을 나타낸 2015-2016시즌 28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다. 그런데 황희찬은 이번 시즌 6경기에서 벌써 4골을 터뜨렸다. 브루노 라즈 울버햄튼 감독이 “황희찬은 매일 성장하고 있다.”라고 격찬할 만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용솟음치는 상승세다.
손흥민과 황희찬이 써 내려가는 PL 활약사는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어떤 모양새를 그리며 더욱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다른 유럽파의 활약상도 눈길을 끌리라.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겨울밤을 흥미롭게 지새우게 할 그들의 몸놀림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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