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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독일에서는 프리시즌 이렇게 보냅니다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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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7. 25

 

햇볕이 뜨겁다. 비가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그리울 정도로 날이 덥다. 내가 있는 이곳은 Grassau, 뮌헨과 잘츠부르크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알프스 산맥이 가까이서 보이고 인구가 6천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전지훈련을 가진다. 독일에서 보내는 벌써 다섯 번째 여름이다.

이번 전지훈련을 하며 느낀 바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우리 팀이 새 시즌을 앞두고 어떤 프리시즌을 보냈고,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칼럼을 통해 새 시즌을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고, 목표를 재설정하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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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우리는 Grassau로 향했다. 바이에른주의 조용하고 작은 도시다. 훈련하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라 많은 팀이 전지훈련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호텔 내부도 깔끔하고, 시설이 좋다. 훈련장도 걸어서 갈 수 있어 오직 훈련에만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골프장과 수영장, 사우나 시설까지 잘되어 있어서 쉬는 날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휴식하기에도 아주 좋다. 나도 고된 훈련 후 토요일 오후 반나절 쉬는 시간이 생겨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하고, 햇볕 아래서 책도 읽으며 기분을 전환했다.

​이번 프리시즌은 여느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보내는 다섯 번째 프리시즌이다 보니 그렇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스케줄에도 적응이 됐다. 팀에도 잘 어우러지고, 선수들과의 관계도 편해져서 더 편하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난날 나의 프리시즌은 어땠을까. 다양한 순간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홀슈타인 킬로 이적했을 당시다. 이미 팀의 프리시즌은 거의 마무리됐고, 리그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연습경기가 남아있어, 그 경기를 소화한 후 곧바로 리그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싶다. 두 번째 프리시즌이 가장 행복했다. 같은 한국인 선수 (서)영재가 우리 팀으로 이적하며 즐겁게 지냈다. 전지훈련에서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덕분에 정말 즐겁게 훈련했다. 세 번째 시즌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전지훈련을 따로 가지 않았다. 킬에서 훈련했다. 그러다 보니 프리시즌 느낌보다는 리그 휴식기를 보내는 기분이 들어 좀 어색했다.

작년에는 마인츠로 이적한 후 첫 프리시즌이었다. 새로운 팀으로 이적해 팀과 선수들을 파악하고 친해지기 바빴다. 무엇보다 부상을 입은 상태여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재활에 힘썼다. 그래서 한결 편안해진 올 시즌 프리시즌이 더 즐겁게 느껴졌다.

 

 

​독일의 프리시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시즌을 마친 후 선수들은 4주에서 5주 정도 휴가를 받는다. 이때 선수들은 대부분 여행을 꼭 간다.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표팀에 차출되는 선수들은 이 휴가 기간에 제대로 쉴 수 없기에 열흘에서 2주 정도 시간을 더 준다. 이런 휴가 기간에 선수들은 지쳤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긴다. 축구선수 모드를 완전히 꺼두고 한 사람의 모습으로 일상을 즐긴다. 나와는 참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도 내려놓지 못했다. 이곳저곳 인터뷰를 다니고, 행사를 소화했다. 휴가기간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 모드를 켜둔 채 정신없이 보냈다.

어떻게 휴가를 보내든, 팀은 선수들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돕는다. 휴가 기간에 해야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준다. 주어진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휴가 후 전지훈련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진행한다. 다른 리그와 다르게 분데스리가에는 겨울 휴식기도 있다. 보통 크리스마스에서 1월 3일까지 휴가를 받는다. 평균적으로 열흘에서 2주 정도 쉰다. 역시 이때도 개인 훈련 프로그램을 받는다.

 
 

​팬들과의 소통도 놓치지 않는다. 시즌 중에도 팬들을 위한 이벤트가 다양하게 열리지만, 프리시즌에 더욱 더 가까이서 팬들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는 훈련을 보러 온 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VIP 팬들은 특별히 경기장으로 초대했다. 팬들과 이런 만남은 모두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준다. 한 시즌을 함께 준비하는 기분도 든다. 그런 점에서 많이 배우고 느낀다.

K리그와 비교를 해보면 굉장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새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4주 동안 겨울 전지훈련을 떠난다. 훈련 기간에는 정말 운동에만 집중해야 한다. 독일처럼 팬들을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는 없다. 쉬는 날에도 다 같이 어떤 이벤트를 열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쪽이었다.

마인츠와 킬을 비교해도 차이가 보인다. 양 팀의 훈련 기획이나 일정 등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연습경기에서 상대하는 팀들의 네임밸류가 확연히 다르다. 킬에서는 네덜란드나 덴마크 팀 혹은 분데스리가 팀과 했다. 마인츠에서는 프리미어리그나 라리가의 팀들과 연습경기를 뛴다. 상대하는 팀들의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공부도 되고, 동기부여도 쑥쑥 오른다. 여기서 1부와 2부의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또, 프리시즌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도 1부 리그가 훨씬 크다. 전지훈련 기간에 선수 대부분이 매일 돌아가면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했다. 연습경기도 TV를 통해 중계됐다. 구단에서도 매일 부지런히 선수들의 재밌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경기장 안팎으로 더욱 활발한 느낌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선수들과 맞붙은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인 팀과 붙는 건 같은 축구선수로서도 기대가 많이 된다. 그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부딪치며 공부가 많이 됐다. 팀 이벤트도 기억에 남는다. Grassau에서 마인츠로 떠나기 전날 잘츠부르크로 다같이 넘어가 산속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았다. 이렇게 익스트림한 순간을 얼마 만에 즐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다이빙하는 순간 정말 짜릿했다. 물도 시원하고 기분전환이 제대로 됐다.

프리시즌 기간에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건강이다. 새 시즌을 앞두고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갖는 시간이 프리시즌인데, 부상을 입으면 이 기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새 시즌을 맞이한다. 준비된 몸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과, 준비가 덜 된 채 시작하는 건 차이가 아주 크다. 감독님은 팀 스피릿을 가장 강조한다. 팀 구성원 전체가 우리 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때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감독님이 요구하시는 걸 빨리 이해하는 게 좋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순간이기도 하다. 자기 장점을 최대한 많이 어필해야 한다. 프리시즌에 보인 모습이 시즌 초반 출전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시즌을 부상 없이 잘 보내면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감은 건강한 몸과 정신 그리고 훈련에서 나온다.

지난 시즌의 팀성적과 개인 퍼포먼스도 프리시즌에 영향을 끼친다.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보내는 선수도 있고, 절박하게 준비하는 선수도 있다.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후라면 압박감에서 벗어나 편하게 자기 플레이를 보일 수 있어 상당히 좋다. 이전 시즌에 퍼포먼스가 좋지 않았다면 감독님의 신뢰를 받고, 동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준비한다. 실제로 동료들이 프리시즌을 통해 눈에 띄게 발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떤 쪽의 선수이든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나는 이번 프리시즌을 보내며 몸 상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독일에서 보낸 프리시즌을 되돌아보면 건강한 몸으로 소화한 적이 별로 없다.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내 몸은 온전하지 않다. 이번 전지훈련에서도 훈련에는 다 참여했지만, 내 모습을 완벽하게 다 보여주지 못했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발가락에 물집도 잡혔다. 물집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괴롭히는 요소 중 하나다. 이번에도 고생을 많이 했다. 아프지 않고, 더 다치지 않고 훈련을 잘 마칠 수 있길 바라며,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 오늘 몸이 더 좋아졌길 바라며 시간을 보냈다.

전지훈련지에서 받았던 기자님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포지션에 새로운 선수들이 왔는데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무섭지 않다. 오히려 기쁘다!”라고 대답했다. 나의 경쟁자가 의식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 경쟁을 겨뤄야 할 만큼 좋은 선수가 온다는 건 어떤 면에서 긍정적이다. 보고 배울 선수가 생겼다는 점이 좋다. 그로 인해 내가 더 최선을 다하고,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결국 개인과 팀을 위해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 이를 치열한 경쟁보단 건강한 경쟁이라 칭하고 싶다.

무엇보다 선수마다 각자 스타일도 다 다르다. 그래서 동료를 너무 의식하기보단 나에게 더 집중하려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발전할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내가 ‘건강한 상태’라면 누구도 두렵지 않다. 원하는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건강한 상태가 되기 위해 나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이제 새 시즌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DFB 포칼을 시작으로 2022-23시즌의 막이 열린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함께 수비하고, 함께 공격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동료들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새 시즌에는 더욱 더 콤팩트한 축구를 하게 될 것 같다. 팬 여러분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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