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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나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2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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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08

 

칼럼의 주제를 정할 때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하나는 현재 나의 상황이고, 두 번째는 축구계의 이슈다. 최근 칼럼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많이 써서 이번에는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내가 선뜻 꺼내기 힘든, 어렵고 복잡한 주제. 어쩌면 그래서 내가 외면해왔던 주제.

바로, 인종차별이다.

사실 평소에 인종차별에 대해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최근 우리 한국 선수를 중심으로 이 마음 아픈 주제가 이슈가 됐다. 나도 이제는 외면하지 않고 무의식에 차곡차곡 담아왔던 생각을 풀어보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도 공부가 되길 바라며.

 

​*

이 주제를 선택한 후 먼저 나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어떤 차별이 있었는지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니 기분이 좋지 않다. 아마 이 칼럼을 통해 처음 털어놓는 것 같다.

독일에 오며 인종차별 발언을 처음으로 들었다. 킬에서 생긴 일이다. 평소와 같이 훈련장에 있는 치료실로 가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동료가 나를 보고 갑자기 어디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리, 어제 뭐 먹었냐”라고 물어보며 내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갑자기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었다. 괜스레 내가 잘못한 것처럼 의기소침해졌다.

그때 받은 충격과 상처가 너무 커서인지 이후로 여러 가지 습관이 생겼다. 훈련장이나 어디서든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좁은 공간은 피한다. 또 냄새가 날까봐. 한국 음식을 먹고 훈련장에 갈 때도 걱정이 된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동료들과 비슷한 음식, 슈바인학센(독일식 족발)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런 부담이 적다. 훈련장에 가기 전에는 향수도 잔뜩 뿌린다. 킬에서 같이 뛰었던 (서)영재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뿌리더라. 독일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영재도 냄새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킬은 아마 한국인, 특히 동양인 선수와 생활한 게 내가 처음이어서 서툴렀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로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눈을 감지 말고 뜨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말이다. 일례로, 훈련 전에 우리는 늘 헬스장에서 몸을 푼다. 훈련 프로그램 중에 눈운동이 있다. 그걸 하고 있을 때 ‘눈 감지 말고 뜨고 해라’라며 웃는 동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냥 장난치는 거다.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며 웃는다.

겨울 휴가에 함부르크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중앙역에서 내려 집에 가는데 술에 취한 젊은 친구들이 나를 보고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며 자기들끼리 웃더라. 나는 그저 길을 갈 뿐인데 동양인을 비하하는 듯한 말을 던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집에 가는 길에 두, 세 무리를 만났는데 모든 무리가 다 그랬다. 평소에는 밤늦게 돌아다닐 일이 없어 몰랐는데, 이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사실 어떤 심한 말보다 그 말을 던지는 그들의 태도에 더 화가 난다. 내게는 상처인데, 그들에겐 시시콜콜한 농담에 불과하다. 나는 전혀 즐겁지 않고 기분이 나쁜데 그들은 웃으며 즐거워하는 점이 참 속상하다. 특히 동료들끼리 무리 지어 있을 때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으면 마냥 도망가고 싶었다.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한 번씩 잘못된 발언이라고 지적해준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저 장난이니 반성하는 태도나 미안하다는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 멋쩍게 웃고 만다. 나 역시 사과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중에 같은 ‘장난’을 치기 전에 한 번쯤 내 지적을 떠올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가끔은 이게 인종차별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의 이미지는 대체로 순하고, 양보를 잘하고, 배려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우리 팀에서 그런 사람에 속한다. 평소 화도 잘 안 내고 배려를 많이 한다. 부탁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려 한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 내겐 당연한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가끔 나를 너무 편하게, 속된 말로 막 대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건물에 사는 동료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기가 배달 음식을 시켰는데 현금 50유로가 없다며 빌려달라고 했다.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인데, 그의 태도에 실망했다. 보통 돈을 빌린다면 상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내 입장에선 당연한데, 그 친구는 자기 지금 게임하고 있으니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했다. 황당했다. 나의 배려는 당연하고, 그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

평소에 다른 동료들에게도 장난기가 많은 친구지만 내게는 유독 더 심한 느낌을 이따금 받는다. 밥을 먹는 중에 내 귀에 큰 소리를 내며 깜짝 놀라게 한다. 감독님이 보시더니 내게 와서 “야, 쟤 혼쭐을 내줘”라고 하신 적도 있다. 그 친구에게는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과연 나를 ‘동등하게’ 대하는 태도일까? 물음표가 뜬다. 그럴 때마다 내 가치관이 흔들린다. 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나? 하며 괴리감이 생긴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K리그에 있던 시절을 돌이켜봤다. K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차별들에서 자유로울까? 아닐 거로 생각한다. 나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 뛸 때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외국인 선수들이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동등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거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즉,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동등하지 않게 대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특히 K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기대한 모습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다른 누구보다 더 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외국인 선수들은 어떤 기분일까? 최근에는 동남아 선수들도 한두 명씩 K리그로 온다. 도착하기 전부터 긍정적인 기대감보다는 의심의 눈빛을 더 많이 받는다. 이것 역시 차별이지 않을까. 흔히 쓰이는 ‘용병’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 짓는 표현이라고 알고 있다. ‘외국인 선수’가 적절하다.

물론 누구도 ‘용병’을 차별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몰라서, 흔히 써와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정말 몰라서 하는 발언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지적하고, 말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게 내가 인종차별에 대처하는 최선의 자세다. 스포츠계에서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인식이다. 커다란 걸개에 적혀있는 ‘NO TO RACISM’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할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지적하고, 그를 통해 상대방이 깨닫고 뉘우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무시하고 피하면 향후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피해를 받지 않을까. 그건 싫다.

이전에 이런 뜻이 잘 맞아 상파울리에서 뛰는 동생 (박)이영이와 작은 캠페인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끼리 모두 한 사람으로서 카메라 앞에 서서 인종차별 반대를 외쳤다. 마지막에 모두 같이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기분이 참 남달랐다. 피부색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모두 달랐지만 우리는 모두 똑같았다. 정말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왜 때로 누군가는 약자가 되어야 하고 차별받아야 하는 걸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왜 눈치를 보고, 상처를 받고, 속상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내가 겪은 인종차별은 다른 이와 비교했을 때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독일은 비교적 인종차별 사례가 적은 나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축구선수’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하지만 절대 안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게 벌어진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적할 거다. 상대가 잘못을 뉘우칠지도 미지수고 깨닫고 반성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단 몇 분이라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면, 그게 바로 첫걸음이 아닐까.

 

*

 

글을 정리하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늘 냄새’에 준하는 발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무지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더욱더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공부하고,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인종차별을 대하는 방식과 대처하는 자세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점점 더 현명한 방안을 찾아 나가길 고대한다.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NO TO RACISM.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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