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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오늘 넣은 골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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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22

 

설렜다. 새 시즌을 앞두고 두근거렸다. 마인츠에서 보내는 두 번째 시즌이라 기대감이 생겼다. 동시에 긴장도 됐다. 신입이 아닌 경력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양 팀에서 중요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기뻤다. 커다란 선물이 도착했다.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내가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넣었다. 생각지도 못한 골이다. 훈련할 때도 골을 넣은 기억이 없다. 득점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심지어 후반전 추가 시간에 넣었다.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행복했다.

자칫 욕심이 생길 뻔했다. 사실 나의 올 시즌 목표는 골이 아니다. 건강하게 모든 경기에서 뛰는 게 목표다. 시즌 첫 골에 대한 환희는 딱 주말까지 즐기고 끝내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자칫 의욕이 앞서지 않게 컨트롤을 해야 한다. 이번 칼럼을 쓰며 올 시즌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다지려 한다.

 

​올 시즌을 준비하며 확신보다는 불확실한 마음이 더 컸다. 프리시즌에 치른 첫 번째 친선전에서 나는 내가 생각해도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 막판에 연달아 부상을 입고, 오랜 기간 실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게 경기장 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나 불만족스러워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코치님이 다가오셨다. 그는 “괜찮아! 부상 후에 처음으로 뛰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흔하게 겪은 현상이야. 우린 너의 실력을 이미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위축되지마! 다음은 좋아질 거야!”라고 격려하며 움츠러든 내 어깨를 펴주셨다. 그의 말은 다음 친선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과 힘이 됐다. 첫 번째 친선전에서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란 자신감이 샘솟았다. 잘하려는 마음을 앞세우지는 않았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신기하게도 지난 친선전과는 다른 경기력을 선보였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내게 “잘했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때 보인 경기력이 감독님과 코치님의 마음에 든 걸까? 나는 포칼 1라운드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전에서 선발로 나섰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나의 컨디션이 완벽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친선전을 준비할 때도 서브 멤버가 있는 두 번째 그룹에서 계속 뛰었다. 그래서 많이 내려놨다. 시즌 초반 내게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부상에서 잘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선발 명단에 들다니. 너무 놀랐다. 친선전에서 내가 보인 모습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시즌 초반 기회를 잡는데 영향이 크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리시즌 막판 친선전을 보면 그 선수가 얼마나 많이 준비를 했는지 감독님이 한눈에 보실 수 있다. 감독님 입장에선 최근에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

지난 시즌에 내가 쌓은 신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지난 시즌 초중반까지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훈련을 통해 나를 증명했고, 그때 나를 선발로 기용하던 코치진의 믿음에 최선을 다해 보답했다. 현재 내 경기력이 코치진이 아주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보답을 할 줄 아는 선수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아우크스부르크전의 득점으로 어느 정도 보답을 했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른 시일 내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

 

​많은 분이 나의 무릎에 대해 궁금해하실 거로 생각한다. 무릎 내측 인대 부상의 특징 중 하나는,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이미 충분한 회복과 재활을 거쳤지만 무릎에 통증은 여전히 찾아온다. 그렇다 보니 나의 모든 신경은 무릎으로 향해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무릎 상태가 어떤지 만져보고, 여러 동작을 취해보며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체크한다. 훈련장에서는 훈련 전, 후로 하체 근육을 더 보강하고 있다. 그래야 부상을 방지하고, 통증도 줄일 수 있다. 훈련 후에는 늘 두 무릎에 아이싱을 하고 치료도 꾸준히 받는다. 무릎 관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맺는 느낌이다.

다행히 통증이 계속 머물지는 않는다. 훈련 중에는 가끔 아픈데 신기하게도 경기장에 들어가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경기를 잘 소화하는 중이다.

쓰다 보니 내 이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치료와 재활에 매진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시다시피 프리시즌은 새 시즌을 위해 아주 중요한 시기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휴식 역시 선수에게 아주 중요하다. 시즌을 준비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 휴식이다.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지난해 마인츠로 이적해 한 시즌 내내 정말 열심히 달렸다. 분데스리가에서의 첫 시즌에 나의 모든 걸 쏟았다. 시즌이 끝난 후 나는 완전히 지쳤다.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짧게나마 혼자 여행을 갈 계획도 세웠다.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야 정신적으로 충분히 회복하고, 다음 시즌을 가뿐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상으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축구선수에게 부상으로 쉬는 시간은 전혀 휴식이 아니다. 이번 휴가 기간 내내 나는 훈련과 치료를 병행했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선수들이 왜 이렇게 부상으로 힘들어하는지, 왜 은퇴까지 고려할 정도로 지치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재활은 아주 고되고 힘든 일이다. 이 시간을 이겨내고 새 시즌을 무사히 소화하고 있어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아픈 나를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하고 노력해줘 그들을 위해서라도 한 발 더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릎 부상만으로 말이 길어졌다. 그만큼 내 신경이 그쪽에 쏠려있다는 뜻이다. 몇 개월 내내 한 곳에 집중을 하다보니 삶의 패턴까지 더 단순해졌더라. 누군가 내게 하루의 루틴에 관해 물었는데 대답이 민망할 정도로 짧았다.

한 줄 요약이 가능하다. 기상 후 무릎을 체크하고, 기도를 드리고, 그날 할 일을 적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나의 루틴이다. 어떻게 보면 재미없어 보일 수 있는데 매일 할 일을 적다 보니 ‘오늘 하루 정말 잘 지내자’라는 다짐이 더 뚜렷해졌다.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하루에 더 몰입하고, 그러기 위해 오늘 당장 해야 할 게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게 참 중요하다. 잠깐만 한 눈을 팔아도 불필요한 요소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오래 지속되면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이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제하고, 나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최대한 피하는 중이다.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리지 않도록.

​​그렇게 아껴둔 집중력을 진짜 필요한 곳에 쏟으니 더욱더 진심을 다하게 된다. 훈련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던 패스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패스 하나하나에 그 감각을 더 느끼려 한다. 일기를 쓸 때도 하루를 더 꼼꼼하고 자세하게 되돌아본다. 대화를 나눌 때도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더 집중한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이전에는 40%만 소화했다면 점점 50%, 60%씩 흡수하는 기분이다.

축구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주말에 열릴 리그 경기, 다음 주에 만날 상대를 생각하기보다 오늘 오후에 예정된 훈련에 집중한다. 먼 곳을 바라보기 보다 가까운 목표를 위해 컨디션을 관리한다. 내가 늘 경계하는 ‘과한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포칼을 포함해 세 경기 연속 선발로 나섰고 리그 3라운드에서는 결승 골도 넣었다. 다음 주에도 골을 넣고 싶고, 선발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욕심내지 않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한다. 나는 포칼 1라운드에서도, 개막전 보훔전에서도, 우니온 베를린전에서도,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도 늘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뛰었다. 내게 주어진 기회가 다른 동료에게도 언제든 주어질 수 있다. 지금 내가 받은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을 기약할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매일 하는 훈련은 내게 그냥 훈련이 아니다. 주말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만드는 또 다른 무대다. 나를 보여줘야 하는 무대. 훈련장에서 보여주지 못하면 절대 이번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다.

​물론 욕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편안한 길이 주는 유혹을 이겨내고, 여러 고된 시간을 이겨내고, 자극적이고 재밌는 것들을 외면하고, 매 순간 참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건 모두 축구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됐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축구를 잘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내 마음 깊숙하게 자리잡혀 있다. 그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되도록 계속 불을 지피는 건 바로 여러분이다. 매주 열리는 리그 경기에서 나의 활약에 따라 많은 분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아쉬워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하고, 책임감이 더욱 강해진다. 이번 시즌은 매주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든, 아쉬운 소식이든 경기장 위에서 전해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골과 어시스트도 좋지만 무엇보다 매 경기 출전하는 게 나의 목표다. 그래서 무릎에 더 신경을 쓰고, 컨디션을 더 철저히 관리하고, 오늘의 훈련에 집중한다.

나의 첫 골은 그래서 참 특별하다. 나보다 더 행복해하는 팬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뭐라고.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축구인데 많은 분에게 행복감을 드릴 수 있어 새삼 놀랍고 신기하다. 책임감이 더 생겼다. 팬들의 주말이 나로 인해 한층 더 즐거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없다.

앞서 나의 시즌 첫 골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골은 바로 여러분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을 주신 팬분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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