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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필리핀전의 추억, 그리고 국가대표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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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6. 17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농구팬들에게 무척 심심한 계절이다.

FA 이적 시장이 문을 닫은 뒤부터 새 시즌 개막까지는 수 개월간 이렇다 할 관심을 끌 만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오늘부터(6월 17일) 이틀 동안 안양실내체육관에서는 국가대표팀의 친선전이 열린다. 대한민국농구대표팀과 필리핀 국가대표팀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것이다.

국가대표팀 소집 기간이 길지 않았고, 게다가 긴 시즌을 치른 뒤 휴식을 취하다 소집된 터라 대표선수들의 몸 상태가 100%는 아닐 것이기에 경기력이 다소 걱정되는 것도 사실. 하지만 최근 대표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홈에서 지난해 필리핀 전 패배를 반드시 설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팬들은 허웅, 허훈 형제를 비롯해 이대성, 여준석, 라건아, 최준용 등 보고 싶었던 스타들의 플레이를 오랜만에 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레할 것 같다. 그러나 지켜봐야 할 포인트는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아시아 쿼터 제도를 이용해 한국가스공사와 계약한 SJ 벨란겔 선수도 필리핀 대표선수 자격으로 온다. 2022-2023시즌부터 코트를 누빌 벨란겔이 미래의 팀 동료, 이대성과 이대헌을 상대한다는 사실 역시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다.

벨란겔 선수 외에도 KBL 진출 소문이 돌고 있는 필리핀 선수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와 전혀 다른 농구 배경과 문화를 지닌 필리핀 선수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나 또한 필리핀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먼저, 2002년 부산으로 같이 가보자.

쓰윽~ 싹싹. 쓰윽~ 싹싹.

“야, 저기 땀이 많잖아. 빨리 닦아야지” 여기저기서 ‘빨리빨리’라는 외침이 들려오는 가운데, 19살의 농구 유망주 김태술은 농구공 대신 대걸레를 들고 코트 여기저기를 누볐다.

당시 나의 역할은 드리블이 아닌 걸레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경기보조원으로 농구장에 투입된 것이다. (이 대회에서 동아고와 부산중앙고 농구부 선수들 모두 아시안게임 농구 보조요원으로 일을 했다.)

이때 나는 국가대표 선배님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보는 행운의 기회를 얻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선배님들을 보며 ‘저 모습이 곧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설렘을 갖기도 했다.

가끔 나를 알아본 형들이 내게 “너 지금 여기서 뭐하니?”라고 물어볼때면 창피한 마음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알고 있네?’라는 신기한 기분도 같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오래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밀대도 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보조요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그 바쁜 와중에 선배님들의 농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잔꾀를 부려 동료들의 눈총도 많이 받았지만, 국가대표 선배들의 플레이를 눈에 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신나고 재밌는 일이었기에 그 눈초리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아마 그때 선배님들을 보며 ‘나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나도 저렇게 농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천 번은 했던 것 같다. 특히 나와 포지션이 같은 선배님들의 플레이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요즘 친구들 표현대로하면 ‘지렸다’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짜릿했던 경기는 바로 필리핀과의 4강전이 아닐까 싶다. 이 경기는 한국농구 역사상 가장 재밌고, 극적인 승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국을 연장전 끝에 꺾은 결승전도 대단했지만, 우리가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경기 종료 직전에 터진 이상민 감독님의 3점슛이 아니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그 슛으로 한국남자농구는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

필리핀 선수들은 개인기가 굉장히 좋고 빠르다. 수비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상대다. 객관적 전력은 한국이 앞섰지만, 필리핀은 어디서든 뜨거운 응원의 힘을 받는 팀이다. 국가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스포츠다보니 응원단이 몰려든다. 이날도 그랬다. 필리핀은 막판에 경기를 뒤집으며 결승 진출을 꿈꿨다. 그러나 이상민 감독님의 그 슛이 그 바람을 짓밟았다.

그렇게 눈앞에서 아시안게임을 지켜봤던 19세 태술이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작은 씨앗을 가슴에 심게 됐고, 정확히 12년 뒤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그 결실을 수확했다.

2002년 필리핀전 만큼, 2014년 아시안게임 필리핀전도 굉장한 빅매치였다.

이번에는 2014년 인천으로 가보자. 이날 경기가 열린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분위기도 2002년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팬도 엄청났지만, 필리핀팬도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일까. 초반 필리핀 선수들은 마치 본인들의 홈코트인 것 마냥 펄펄 날았고, 슛은 던지는 족족 림을 통과했다. 필리핀은 10점 이상으로 리드했다. 우리도 필리핀이 좋은 팀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 정도로 슛이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특히 앞선 개인기가 워낙 좋다보니 수비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도 당하지만은 않았다. 교체투입된 문태종 선수가 상대 림에 폭격을 가했다. 그날 컨디션이 좋았던 나도 패턴을 계속 가져가면서 흐름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계속 템포 조절을 하면서 경기 운영에 집중했다.

우여곡절 끝에 분위기는 가져 왔지만 필리핀의 반격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긴장하게 했다. 우리는 상대를 풀코트 프레스로 압박하며 분위기를 가져오고자 했다.

그런데 이때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울컥한 적이 있다. 함께 압박수비를 하던 선수들이 2012년 KGC인삼공사 시절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순간 뭔가 끓어오르고 더 든든함이 느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수비하고 도움을 줘야 할지 알았기에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실제로 멋진 스틸까지 만들어냈다.

 

여기에 경기 막판 양희종 선수의 3점슛 한 방으로 우리는 필리핀을 꺾고 금메달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었다. 홈경기이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대회였기에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시안게임 준비과정은 내 농구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왔지만 2014년에 비할 바는 못 됐다. 뛰다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적이 1~2번이 아니었다. 풀코트 사각 패스 훈련은 공포 그 자체였다. 사각 패스는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그 ‘기초적인’ 훈련조차 강도가 강했으니 다른 운동은 어땠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렇게 훈련이 고되다보니 선수들의 단합력은 더 강해졌다. 또, 이 훈련을 이겨낸 것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1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어진 것이고 말이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운동하는 숙소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해하실 팬들도 많을 것 같다. 또 처음 합류한 선수들의 적응도 궁금할 것이다.

나의 경우, 처음 성인국가대표가 된 건 2006년이었다. 당시는 진천선수촌이 아닌 태릉선수촌에서 대표팀 훈련을 받았는데, 처음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 나와 (양)희종이는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선수촌으로 향하던 중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첫 미팅 때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첫 미팅이다 보니 선배들이 미팅룸에 들어오실 때마다 무조건 일어나서 인사를 한 것이다. 아는 게 없었던 만큼, 감독님과 코치님 입에서 나오는 지시사항은 모두 담아두겠다는 일념으로 귀를 쫑긋 세우는 등 모든 집중력을 집중시켰던 것 같다.

훈련이 있는 날이면 훈련 시작 전에 미리 방에서 나와 수건과 물을 준비했고, 코트 바닥이 미끄러워지면 행여 다칠까 싶어 바로 바닥을 닦았다. 뒷정리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나의 대표팀 첫 훈련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형들에 비해 기술이나 체격조건이 떨어졌기에 그냥 정신없이 뛰기만 하고, 쉬운 레이업도 놓쳤다. 어이없는 패스미스도 잦았다. 긴장한 나머지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느낌이 있다. 바로 내 동작, 내 패스 하나하나나 모두 선배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역시나 형들이 몇 수 위였기에 내 농구 타이밍을 다 읽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대표팀에 어린 선수들이 들어가면 선배들과 경쟁을 한다기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경쟁을 해서 주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연습을 해 보면 내가 아직 많이 모자라구나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나 양희종선수도 많을 것들을 보고 배웠다.

농구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스킬도 기술이라고 얘기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타이밍이나 몸을 쓰는 방법, 선수들의 움직임을 읽는 기술도 경기장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배우는것도 큰 재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선수가 되면 모두가 슛을 잘 쏘고 패스도 잘 하고 드리블도 잘 한다.

그 중에서 더 큰 선수가 되려면 농구를 읽는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클 수있다

내가 그렇게 선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뺏어 왔듯이 후배들도 많은 것을 훔쳐 오기를 바란다.

생활적인 부분도 빼놓을수 없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배님들은 짐을 싸서 들어 오실 때 책을 한 권씩은 꼭 가지고 들어 오셨던 것 같다.

다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책을 가지고 합숙을 들어오는 모습이 나하테는 굉장히 인상적이 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나도 책을 한 쪽이라도 더 읽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것이 23살 농구선수 김태술도 19살때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관찰을 잘 하는 친구 였던것 같다. 하하.

내가 중참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후배들도 생기고 대표팀 생활은 편하게 했던것 같다.

잘 하는 선수들이 들어와서 합숙을 한다고 특별하게 다른 것은 없다.

어떤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또 몇몇은 사우나를 가기도 하고 티비를 보는 선수들도 있고 다 다양하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것은 운동 시간이다.

모두들 굉장히 농구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감독님께서 지시하는 내용을 금방 체화하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경쟁이라기 보다 본인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연습을 한다는 느낌이다.

동료를 이겨야 한다는 마음보다 하나라도 더 배워서 본인의 성장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대표팀에는 대학생도 있고 국내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들 늘 부족하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더 발전하고 싶어 노력한다. 그 노력들이 서로를 계속해서 발전하게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대표팀 막내일 때와 조금 다른 문화가 있다면 야간운동때의 모습인데, 같은 포지션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본인의 기술을 알려주는 분위기다.

돈주고도 못배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금같은 시간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대표팀에서의 모습은 훈훈하다고 볼 수 있다. 너무 좋은 것만 얘기 한 것 같아서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겪고 느낀 실제 대표팀에서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대표팀은 어떤지 잘 알 수가 없지만 SNS에 올라오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분위기는 굉장히 좋아보인다. 아마 지금 대표팀에 막내로 있는 여준석 선수와 문정현 선수는 적응하기에 굉장히 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나이에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선배들의 장점만을 쏙 빼먹을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눈 크게 뜨고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자, 다시 2022년으로 돌아오자

2022년 6월 17일 이번 필리핀과의 친선경기에 나는 해설자로 데뷔를 한다.

선수때부터 글을 쓰면 잘 쓸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그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하하) 해설도 마찬가지다. 잘 할 것이라는 많은 분들의 의견이 있었다. 당연히 잘 해내리라 믿지만 사실 좀 많이 떨린다.

하지만 잘 준비해서 이 분들의 안목 또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선수 시절 필리핀과의 좋은 기억과 추억이 있었던 만큼, 이번 필리핀과의 경기의 첫 해설도 훗날 좋은 기억으로 추억되기를 바란다.

많은 팬분들도 이번 경기로 농구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버리시길 바란다!

우리 대표팀 화이팅! 김태술 화이팅!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저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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