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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14) 누가 이 여인을…관중 무질서가 부른 참사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9. 2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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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05.

 

요즘은 전혀 볼 수 없는, 사라진 야구장 밖 풍경 하나

전주구장을 본거지로 삼아 1989년에 팀을 창단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 1군 리그에 참여한 이후부터 극성스런 관중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전주구장 외야 담장이 낮아 일부 관중들이 등산용 자일까지 동원해 줄타기 묘기 대행진을 벌이며 월담, 구장 진입을 시도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곡예사가 따로 없었다. 줄타기를 하다가 미끄러져 담장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생겼다.

비단 전주구장 뿐만 아니라 다른 구장에서도 무질서가 판을 쳤던 시대여서 심지어 표를 사지 않고 무리지어 출입구를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장외 진기명기’로 그저 웃어넘기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었지만 만용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민의식의 실종은 급기야 관중들의 밀치기에 한 여인이 깔려서 하반신이 마비되는 큰 불상사를 빚어낸 사고가 일어났다.

1989년 4월 30일 인천 도원구장의 참사

1989년 4월 30일, 일요일인 그날 인천 도원구장에서 오후 3시부터 열리는 해태 타이거즈-태평양 돌핀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른 시각부터 관중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기 시작했다. 오후 2시께 구장 매표소 앞에는 관중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었다. 혼잡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관중들은 “빨리 문을 열어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날 도원구장에는 1만 4289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오후 2시 20분께, 구장 밖에서 구장 안으로 통하는 큰 문이 활짝 열렸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천 명의 관중들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다. 먼저 구장으로 들어가려는 관중들이 서로 밀고 밀치며 곳곳에서 비명과 외침으로 뒤범벅이 됐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그 와중에 관중에 떠밀려가던 한 여인의 어린 두 딸이 넘어졌다. 그 여인은 본능적으로 두 딸을 보호하려고 몸을 감싸 안았다. 사람들은 쓰러져 있는 여인과 아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짓밟으며 지나갔다.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힌 여인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처녀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L 모(당시 32살. 주부) 씨는 사고가 났던 그날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생과 3살짜리 딸과 함께 일요일을 맞아 모처럼 야구장 나들이에 나섰다.

당시 <일간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L 씨는 겨우 입장권을 사서 구장으로 가는 출입문 앞에 열을 지어 늘어선 관중 틈에 끼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넘어 통상적으로 출입문으로 사용했던 좁은 문이 아닌 차량이 드나드는 큰 문이 열렸다. 관중들이 일시에 밀물처럼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L 씨 일행도 밀려서 들어가다가 두 딸이 넘어져 그런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애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몸을 굽혀 애들을 감싸 안자 무수한 발길이 몸을 짓이기고 지나갔어요. 그 순간에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L 씨의 말)

얼마 후 L 씨가 깨어나 보니 인천 적십자병원의 병실에 누워있었다. 다행히 아이 둘은 다치지 않았다. 그날 사고로 관중 11명이 다쳤으나 모두 전치 2, 3주의 경미한 상태였지만 L 씨는 요추 1, 2번이 척추손상의 큰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 선고를 받았다.

L 씨는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서울국립의료원으로 옮겨져 5월 4일 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대소변 처리도 하기 힘들 지경이 됐다. 태평양 구단은 L 씨의 치료비는 부담을 했지만 배상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L 씨와 태평양 구단 간의 배상 소송 등에 관해서는 이미 구단이 없어진데다 세월이 흘러 기억하는 관계자가 없었다.

당시 태평양 구단의 홍보 과장이었던 정재호 전 현대 유니콘스 단장은 예전의 사고에 대해 “사고 후 법으로 처리하느니 마느니 하다가 유야무야 된 것 같다. 당시 하반신 마비 얘기를 들었지만 그 후 완치됐는지 어쩐지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모르겠다. 그 사고는 구단의 책임이 없는 일이었다. 정문으로 관중이 막 밀고 들어오다가 그랬는데, 운동장 안의 일이 아니라 밖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구단의 책임을 크게 물을 수 없었다. 치료는 다해줬다”는 정도만 기억해냈다.

정재호 전 단장은 “어느 해였던가, 운동장 담을 몰래 넘어 들어오려다 떨어져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해태와의 개막전이었을 것이다. 월담하려다 잘못돼 다침 사람도 있었다. 인천구장은 협소하고 담치기를 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는데도 넘어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옛일을 돌아봤다.

그 시절 야구장 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사고를 둘러싼 배상 문제도 다툼의 소지가 많았다. 당시 야구장 티켓 뒷면에는 ‘주의 사항’과 ‘경기장에서는 질서를 지킵시다’ 같은 문구를 명시해놓았다. ‘주의사항’에는 ‘운동장에서 연습 혹은 경기 중 파울볼 기타에 의해 관중이 부상당했을 때는 주최 측이 현장 응급치료만 책임지고 그 외 책임은 지지 않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는 문구를 넣어놓았다.

경기장 밖 관중 무질서 상황에서 벌어진 관중 부상에 대해서는 구단이 책임질 수 없다고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프로야구가 출범 한지 30년을 넘으면서 관중 피해에 대한 배상도 개선이 많이 됐다.

그와 관련, 한국야구위원회(KBO) 정금조 운영기획부장은 “현재 야구장 티켓 뒷면에는 ‘본인의 부주의(연습 혹은 경기 중 파울 따위 주의 소홀)’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으니 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로 돼 있다”면서 “결론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사고에 대해서는 구단이 책임을 지는 걸로 돼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정 부장은 “본인의 부주의냐 아니냐는 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본인의지와 상관없이, 예를 들어 관객에 밀려서 그랬다든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해석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의 부주의가 아닌 사고인 만큼 어쨌든 구단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은 위사건과 같은 일이 요즘에 일어난다면,  “구단에 질서유지를 안 한 책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본인의 부주의로 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티켓 문구에는 없었지만 확대해석을 한다면 구단의 안전보장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프로야구는 두 말할 나위조차 없이 관중 관심의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 특히 지역연고를 바탕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때로는 관중들의 지나친 애향심이 부작용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많았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관중 무질서로 인한 관중 사고는 두 번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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