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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13) 이희수 한화 감독, 야구공으로 심판을 때리다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9. 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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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3. 28.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2000년 이전까지 징계건수와 벌금액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99년이었다. 그라운드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심판과 직접 충돌, 위해를 가한 사건에 대한 KBO의 징계 수위가 한껏 높아졌던 탓이었다. 그해 KBO가 상벌위원회를 통해 징계조치를 취한 사건은 모두 31건이었고 벌금액은 2640만 원이었다.

좀 부풀려서 말한다면 자고 나면 ‘징계’ 타령이었다. 열흘이 멀다 하고 상벌위원회를 열어야 했으니, 오죽했으면 당시 상벌위원이었던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KBO 얘기만 들어도 뒷골이 절로 지끈지끈 당긴다.”고 했을까. 명색이 상벌위원회인데 ‘상’은 없고 ‘벌’만 주자니 그럴 만도 했겠다.

참고로 2012년까지 징계 건수와 벌금액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03년으로 46건에 3070만 원이었다. 그야 어찌 됐든, KBO는 1990년대 이전에 산하 상벌위원회가 착실하게 벌어들인(?) 징계 벌금을 선수연금 기금으로 적립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유소년야구 육성기금이나 페어플레이상 상금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벌금을 많이 낸 야구인들은 그리 억울해할 필요는 없겠다. 자신이 낸 돈이 후배들의 육성자금이 쓰이고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구대성의 볼 판정 항의 퇴장…이희수 감독의 주심 폭행

한화 이글스는 1999년 시즌 들어 4월 11일부터 5월 20일까지 본거지인 대전구장에서 8연패를 당했다. 5월 19일과 20일에 삼성 라이온즈에 두 게임을 거푸 내줬고, 5월 21일 마저 진다면 연패의 숫자가 9로 늘어날 판이었다. 한화 선수단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그날 한화는 구대성, 삼성은 김진웅이 선발로 등판, 6회까지 2-2로 팽팽했고, 7회 말 한화가 한 점을 뽑아 3-2로 앞섰다.

사건의 발단은 9회 초. 구대성이 삼성 타선에 만루를 허용,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다. 삼성 9번 타자인 외국인 홀의 타석 때 볼카운트 3-2 풀카운트에서 6구째 공을 이영재 구심이 볼로 판정, 밀어내기로 3-3 동점이 됐다.

혈압이 오른 구대성이 마운드에서 애꿎은 글러브를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발로 걷어찼다. 김호인 2루심이 지체 없이 퇴장을 선언했다. 이희수 한화 감독이 덕 아웃을 박차고 나와 이영재 구심에게 거칠게 따지며 언쟁을 벌였다.

“구대성의 6구째 볼이 인코스로 빠졌다면 인정할 수 있지만 낮지는 않았다.”고 할난하자 이영재 구심은 “판정은 심판이 한다. 구대성의 볼을 분명히 낮았다”고 맞섰다. 5분여 동안 옥신각신 한 뒤 한화 코칭스태프는 덕 아웃으로 들어갔다. 삼성은 퇴장당한 구대성의 뒤를 이어 나온 이상목과 이상렬을 상대로 3점을 더 뽑아내 결국 6-3으로 역전승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심판진을 바라보며 이희수 감독이 이영재 구심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는 오른 손에 야구공을 쥐고 있었다. 그러더니 공을 쥔 손으로 냅다 이영재 심판의 얼굴을 휘어 갈겼다. 그리고선 심판실로 찾아가 심판진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한 어조로 5분 동안 항의했다.

 

제자의 퇴장조치에 이성을 잃은 이희수 감독이 분기탱천한 김에 내처 심판을 구타한 것이다.

당시 구심으로 뜻밖의 봉변을 당했던 이영재 KBO 심판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한화는 그 해 다른 데서는 많이 이겼는데 홈에서는 연패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구심을 봤다. 구대성이 올라와 던졌는데 오른쪽 타자 몸 쪽 공이 두 개씩 빠졌고, 결정적일 때는 더 빠져 볼로 판정했다. 이희수 감독이 중간에 한 번 나와 ‘왜 볼을 자꾸 주느냐.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왼쪽 투수는 거기로 들어가면 다 (스트라이크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대성 존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구대성이 그쪽에 던지는 것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래서 그건 안 그렇다. 가까운 곳에서 잘 보고 있으니까 오해 없기를 바란다. (구대성이) 그곳으로 10개 던지면 다 볼이다.”

이미 마음을 상한 이희수 감독이 구대성이 퇴장을 당하자 뿔이 솟은 것은 당연한 노릇. 다시 이영재 구심의 말.

“9회 초에 그런 공이 다시 들어와 ‘볼, 볼’ 하니까 구대성이 글러브를 막 던지고 발로 차 퇴장을 시켰다. 경기를 마치고 그라운드를 나오는데 이희수 감독이 공을 오른 손에 쥐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나한테 공을 던지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공이 날아오면 피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오도록 공을 안 던졌다.” 

“사실 이희수 감독님은 나하고 친했다. 그런데 “영재야” 부르면서 살갑게 다가오시더니 느닷없이 공으로 왼쪽 뺨을 후려쳤다. 눈앞이 번쩍할 지경이었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까지 받았는데 다음날 턱이 퉁퉁 부었다. 나중에 보니 어금니도 약간 부러졌다. 한화 단장, 사장이 와서 빌었는데, 다른 곳에서 경기를 했던 허운 팀장이 멀리서 달려와 ‘사과를 받아주면 안 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분개했던 일도 있었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오광소 경기운영위원은 “볼 판정은 심판의 고유 권한이다. 아쉽게 패한 한화 팀의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며 현장 사건보고서를 KBO에 올렸다.

이희수 감독은 그 이튿날인 5월 22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경기에서 덕 아웃에 들어가지 못하고 덕 아웃 바로 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2-10으로 다시 지자 쇼크를 받아 앰뷸런스로 병원에 긴급 후송되는 소동도 겪었다.

이희수 감독은 물론 얼마 후 이영재 심판에게 사과를 했다. 이영재 심판의 표현에 따르면 “영재한테 몹쓸 짓을 했다.”며 “손을 꼭 잡으며 사과를 크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한화 구단, 김승연 구단주의 이례적인 사과문 발표

이희수 감독이 장기 결장하게 되자 한화 구단은 유승안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으로 임명, 지휘봉을 맡겼다. 유승안 현 경찰청 감독은 “이희수 감독이 공을 들고 사람을 팬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옆에 있다가 깜짝 놀랐다”면서 “그 무렵 성적이 안 좋아 뭔가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로 그런 것 같은데, 뒷일 감당을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 과격하게 나가지 않았나 싶다”고 돌아보았다. 

이희수 감독이 대전 구장에서 유난히 맥을 추지 못했던 선수단에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수단으로 그 같은 자극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한편 KBO는 5월 22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이희수 감독에게 12게임 출장 정지와 벌금 200만 원의 중징계를 내린 것과 아울러 마운드에서 거친 행동을 해 퇴장 당했던 구대성에게 벌금 50만 원을 매겼다. 

5월 23일에는  한화 구단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은 “선수단이 행한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심판진, 야구인들께 사죄한다. 이번 일에 대한 자세한 경위를 파악,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와 노력을 다 할 것이며 앞으로 새로운 야구단으로 거듭나겠다.” 는 내용으로 돼 있다.

한화는 그 같은 소동을 딛고 1999년에 창단 후 한국시리즈 첫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드림리그 2위였던 한화는 플레이오프에서 매직리그 1위였던 두산에 4전 전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드림리그 1위인 삼성을 물린 매직리그 2위 롯데를 4승 1패로 꺾었다.

정민철(18승)과 송진우(15승), 이상목(14승) 등 선발 3총사의 맹활약과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선발과 마무리 경계를 넘나들며 8승 9패 26세이브를 기록하고 한국시리즈 MVP에도 올랐던 ‘대성불패’ 구대성과 로마이어(109타점), 데이비스(106타점) 두 외국인 타자의 힘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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