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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8) 2차 호세의 난…호세, 배영수 빈볼에 얀 대신 주먹질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10.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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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2. 22

 

‘충돌의 촉수’, 빈볼이 뭐기에

그라운드 소요는 크게 두 가지 동인에 의해 촉발된다. 우선 응원하는 팀이든, 아니면 상대팀이든 간에 관중들이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다. 물론 그럴 때는 대개 응원팀의 탐탁지 않은 성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선수끼리’ 직접 부딪히는 경우다. 그 충돌의 촉수는 빈볼이다. 빈볼은 선수 개인의 감정이 개입 된 자발적 행동이거나, 아니면 ‘조직’의 암묵적인, 또는 코칭스태프나 주위 동료의 은근한 종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팀 내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빈볼은 야구라는 종목의 가학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단이다. 빈볼과 , 단순히 몸에 맞는 볼은 그 경계가 흐릿하다. 고의성 여부가 빈볼을 판정하는 척도이지만, 심판이 경기 도중에 빈볼을 명확하게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단박에 안다.

많은 야구인들은 빈볼을 ‘필요악’처럼 여기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만약 빈볼이 없다면 야구장은 오히려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빈볼이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허구 헌 날, 입으로, 몸으로 싸울 수 없으니까 오히려 빈볼로 상대방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어쨌거나, 빈볼은 야구의 서글픈 얼굴이다.

호세, 배트 투척 사건 이후

펠릭스 호세는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 관중석에 배트를 집어던져 큰 물의를 일으키며 벌금 300만 원과 2000년에 10게임 출장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2000시즌에는 미국(뉴욕 양키스)에서 뛰었지만 신통한 성적을 못냈고, 롯데 자이언츠의 ‘구애’를 받아들여 1년만인 2001년에 다시 한국무대로 돌아왔다.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 ‘1차 호세의 난’을 일으켰던 1999년으로 잠깐 되돌아가보자.

호세는 그해 10월 26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를 곁들인 해명을 했다.

호세는 먼저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불상사에 대해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야구선수 생활 중 오물을 투척 받은 일이 처음이었고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긴장감에 순간적인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생기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하겠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호세는 이어 “야구장은 팬과 선수가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장소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고 어린이 팬들이 본받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돼야한다”며 일부 ‘일그러진 관전의식을 지닌’ 관중들에게도 점잖게 훈계조로  일침을 가했다.

징계에 대한 질문에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므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KBO가 출장정지를 5게임으로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능청스레 받아 넘겼다.

1년 뒤에 돌아온 호세, 개과천선했을까. ‘아니올시다.’였다.

 

‘헛맹세’ 호세, 폭력성 또 발작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1년 4월 4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돌아온 호세’의 징계 문제를 놓고 재심의를 했다. 호세가 1999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징계의 효력이 일시 정지된 터였던 데다 롯데 구단이 징계의 경감을 요청한데 따른 것이다.

호세의 재심 결과, KBO는 ‘지난 1999년 삼성-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발생한 호세 선수의 퇴장사건에 대하여 호세 선수에게 부과되었던 제재(벌금 300만 원, 출장정지 10경기)는 1년이 경과 되었고, 2001년 새로운 시즌을 여는 현 시점에서 프로야구 붐업을 위하여 선처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롯데 자이언츠 구단과 호세 선수에게 재발방지를 위한 각서를 받기로 하고 제재금 300만 원만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KBO는 아울러 ‘향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되면 가중 처벌할 방침’ 임을 롯데 구단과 선수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각서의 잉크가 완전히 마르기도 전’인 2001년 9월 18일, 그예 일은 터졌다.

그날 마산구장에서 열렸던 삼성과 롯데의 시즌 16차전은 당시 13승을 올리고 있던 맞수 배영수(삼성)와 손민한(롯데)의 선발 맞대결과 홈런왕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던 이승엽과 호세의 기 싸움이 겹쳐 팬과 매스컴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경기는 따라붙고 도망가는 접전 속에 한 점 차 승부로 흘렀다. 2-2로 동점인 상황에서 롯데가 5회 말 이계성의 2루타로 한 점 앞섰다. 2사 2루에서 호세가 타석에 들어서자 삼성 벤치는 고의 볼넷 사인을 냈다. 2사 1, 2루에서 나선 훌리오 얀의 적시타로 롯데는 4-2로 달아났다.

6회 초, 삼성이 박한이의 2루타로 추격하고 2사 2, 3루에서 이승엽이 나오자 롯데 벤치도 고의 볼넷으로 이승엽을 걸렸다. 2사 만루에서 들어선 마해영이 삼진으로 물러나 점수는 4-3. 롯데 덕아웃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롯데의 7회 말 공격 2사 1루 상황에서 호세가 타석에 들어섰다. 배영수는  볼 3개를 연거푸 던진 후 제4구째를 호세의 몸 쪽으로 뿌렸다. 호세가 잽싸게 피해 볼은 등 뒤로 빠져나갔다. 그 대목에서 이민호 주심이 배영수에게 빈볼성 투구에 대한 1차 경고를 발령했다. 호세는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갔다.

다음 얀 타석 때 배영수가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에서 던진 공이 얀의 옆구리를 맞혔다. 그 순간, 1루에서 지켜보던 호세가 느닷없이 마운드로 짓쳐 달려가 오른손 휘어치기로 배영수의 얼굴을 가격했다. 호세의 오른팔이 큰 원을 그리며 배영수의 오른쪽 관자노리 부위를 때렸다. 기습을 당한 배영수는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예정된 수순처럼 양 팀 선수들 뛰쳐나와 그라운드에서 서로 뒤엉켜 실랑이를 벌였다. 사태는 양 팀 코칭스태프와 심판진의 적극 만류로 더 이상 크게 번지지는 않고 수습됐다.

이민호 주심은 호세와 배영수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마산구장의 관중들은 호세가 퇴장을 당하자  “호세”를 연호하며 성원을 보냈다. 경기 후 롯데 선수단이 철수할 때도 구단 버스를 에워싸고 계속 “호세”를 외쳐댔다. 그 경기는 4-3, 롯데 승리로 마무리됐다.

 

▲ 배영수(삼성 라이온스)와 펠렉스 호세(롯데 자이언츠)


호세(당시 서른여섯 살)의 주먹에 얼굴을 강타 당한 배영수(당시 스무 살)는 경기 후 인근 마산삼성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2주간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밤늦게까지 물리치료를 받은 배영수는 기자들에게 “직접 가격당한 턱과 치아, 넘어지면서 땅에 부딪힌 무릎이 특히 안 좋다”면서 자신의 투구에 대해 “볼이 빠졌을 뿐이다. 호세나 얀에게 개인감정은 물론 경기 흐름으로도 볼 때 빈볼을 던질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 사건과 맞물려 호세의 돌출행동에 대해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덩달아 거친 매너로 눈총을 받아 온 여러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구단들의 관리 소홀도 언론의 지적을 받았다. 

9월 19일, KBO는 즉각 상벌위원회를 소집,  ‘빈볼 투구에 격분, 빈볼 당사자가 아니면서 상대투수에게 폭행, 퇴장 당한 것’을 이유로 들어 호세에게 정규시즌 잔여경기(8게임) 출장정지와 제재금 300만 원을 매겼다. ‘개전의 정’을 안 보인 호세에게 가차 없이 징계를 내린 것이다.

배영수는 ‘몸에 맞는 볼로 폭력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 구단은 ‘선수단 관리 소홀’로 나란히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다. 

호세는 사건 전날인 9월 17일까지 출루율과 장타율 두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홈런 선두인 이승엽과 한 개 차로 홈런왕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그해 이승엽은 39개로 홈런왕에 다시 올랐고, 호세는 36홈런에서 멈춰선 채 3개 뒤져 2위에 머물렀다. 호세는 장타율( .695, 2위 이승엽 .605)과 출루율 ( .503, 2위 두산 심재학 .473)은 타이틀을 따냈다.

사태에 책임 있는 양 구단은 ‘당연히’ 억울함과 불만을 표시했다.

상성 구단의 김재하 당시 단장은 “어차피 배영수는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피해자일 뿐이다. 배영수는 빈볼을 던졌다기보다 제구가 안 됐을 뿐이다. 설사 빈볼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주자인 호세가 나설 일이 아니다.”고 ‘피해’를 강조했다.

반면 롯데 구단의 이철화 단장은 “배영수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징계도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는 빈볼을 근절시키겠다고 누차 말한 총재의 의중과도 상반 되는 것”이라며 ‘징계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췄다.

참고로 롯데는 그해 리그 최하위를, 삼성은 2위를 기록했다.

 

후일담

배영수의 투구는 정말 빈볼이었을까.

사건 직후 김응룡 삼성 감독은 “물론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나간 적도 없지만 당시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선희 투수코치도 “배영수는 성격이 여려 설사 사인을 낸다 해도 볼로 사람을 맞힐 성격이 아니다.”고 적극 두둔했다.

롯데 쪽은 시각이 정반대였다. 롯데의 한 선수는 “얀을 맞힌 볼은 모르겠지만 호세에게 던진(등뒤로 빠진) 볼은 분명 빈볼이었다. 그라운드에 있는 우리들은 안다.”며 ‘선수끼리는 안다’는 주장을 폈다.

최근 삼성 배영수에게 지난 간 얘기를 물었다. 그렇지만 새삼스레 옛 일을 떠올리기 싫은 듯했다. 배영수는 “이미 지난 일이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문을 닫았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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