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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육상 (1)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12. 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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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8. 15.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때 육상경기에서는 몇 개의 세부 종목이 열렸을까. 대부분의 스포츠 팬은 물장사 아버지를 돕던 스피리돈 루이스의 우승으로 잘 알려진 마라톤 외에는 어떤 세부 종목이 열렸는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외에 100m와 400m, 800m, 1500m 그리고 110m 허들, 포환던지기와 원반던지기,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높이뛰기와 장대높이뛰기 등 트랙과 필드에 걸쳐 12개 세부 종목이 펼쳐졌다. 물론 남자 선수들만 출전했다. 고대 올림픽에서도 육상경기는 가장 중요한 중목이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육상경기만큼 생활과 밀접한 종목도 없고 역사 또한 길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육상경기의 역사는 오래됐다. 모든 종목의 맏형 격이다.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첫 대회를 열었던 1896년 이 땅에서는 첫 '운동회'가 열렸다. 그해 5월 2일 서울 동소문 밖 삼선평(성북구 삼선교 근처)에서 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학교 영국인 교사 허치슨의 지도 아래 열린 운동회가 우리나라 학교 운동회의 효시다. 이 운동회에서 어떤 종목의 운동을 하며 즐겼는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운동회의 인기 종목인 달리기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후 관립 소학교 연합운동회, 공립 소학교 연합운동회 등이 열린 가운데 1897년 6월 펼쳐진 영어학교 대운동회는 육상경기 종목과 여흥적인 종목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1898년 5월 관립 외국어학교 6개 분교의 연합대운동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 경기 종목과 입상자를 보면 *300보 경주=송경선(청년부), 김민희(소년부) *600보 경주=송경선 *1350보 경주=이유관 *내빈 300보 경주=윌리스(영국 공사관 서기관) *공던지기=윤호(240보 가량) *대포알던지기=이종설(25척9치) *멀리뛰기=곽한성(14척6치) *높이뛰기=윤태길(4척6치) *2인3각 달리기=김민희, 박한성 *당나귀 달리기(20마리 참가)=이한구 *줄다리기(12인조)=윤규익 조 등으로 돼 있다.

 

▲ 1910년 무렵 한성 사립 중학교 연합대운동회의 440보 경기 장면 / ⓒ대한체육회

 

오늘날의 트랙과 필드 종목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기의 거리를 정한 보(步)는 한 걸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야드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 까닭은 근대 육상경기의 발상국인 영국에서 야드제를 채택했고 당시 운동회들이 영국인에 의해 지도되고 운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0보 경주는 270m 정도의 단거리, 1350보 경주는 1200m 정도의 중거리였을 것이다.

 

경주 종목은 당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데 도약이나 투척 종목을 보면 요즘과 비교가 가능하다. 대한제국의 도량형 기준에 따르면 척(자)은 30.3cm, 치는 1/10자이므로 3.03cm다. 따라서 곽한성의 멀리뛰기 기록은 약 4.4m이고 윤태길의 높이뛰기 기록은 약 1.4m이다. 110여년 전의 일이고 정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이 겨룬 결과다.

 

이 땅에서 열린 첫 번째 육상경기대회는 일본인들이 조직했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일본인들이 만든 조선체육협회(조선인이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와는 다른 조직)가 1920년 5월 용산연병장(예전 육군본부 자리)에서 육상경기대회를 개최했다. 트랙과 필드를 합쳐 모두 15개 종목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규모를 갖춘 대회였다.

 

이 대회에는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서울은 물론 평양과 함흥, 밀양, 수원 등지에서 적지 않게 출전했다. 경성 일주 10마일(약 16.1km) 마라톤에서 인력거꾼 최홍석이 1위를, '오사카시보' 배달원인 김상동이 2위, '동아경제' 배달원인 김용만이 3위를 차지했다. 또 인천과 서울 사이의 25마일(약 40.2km) 마라톤에서는 임일학이 2시간 45분 11초로 1위를 차지했고 조창환이 2시간 46분 12초로 2위를 했다. 당시에는 장거리 경주를 모두 마라톤이라고 했다. 많이 뛰어야 하는 인력거꾼 또는 신문 배달원들이 좋은 성적을 올렸고 한국인들이 이때 이미 장거리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다. <2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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