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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축구 (14·끝)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3. 3. 3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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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2. 07. 

 

1승1무로 D조 선두에 나선 한국은 14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포르투갈과 3차전을 치렀다. 치열했던 공방전은 전반 27분 포르투갈의 핀투가 박지성에게 거친 태클을 걸어 퇴장한 데 이어 후반 20분 수비수 베투가 다시 퇴장 명령을 받아 선수 숫자가 9-11이 되면서 한국에 유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5분 뒤인 25분 박지성이 이영표의 크로스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 한 다음 곧바로 벼락같은 왼발 슛을 날려 결승점을 뽑았다.

 

18일 대전에서 맞붙은 16강전 상대는 G조 2위로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강호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전반 18분 코너킥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헤딩 슛으로 한국 골 망을 갈랐다. 후반 들어 한국의 공세는 치열해졌지만 ‘아주리 군단’의 빗장 수비는 열리지 않았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던 후반 43분 동점 골이 터졌다. 골문 정면에서 수비수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미처 걷어 내지 못한 볼이 옆으로 흐르자 설기현이 왼발 슛으로 이탈리아 골문을 열었다.‘골든 골’이 적용되는 연장전에 들어간 두 팀은 뚜렷한 득점 찬스를 잡지 못한 채 공방전을 벌였으나 전반 11분 이탈리아의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한 것이 승패의 갈림길이 됐다. 선수 숫자 11-10의 유리한 상황을 맞은 한국은 곧바로 대공세로 전환해 후반 12분 안정환이 이영표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 결승점을 뽑아 내면서 117분의 대접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흘 뒤인 22일 한국은 광주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8위 스페인과 8강전을 치렀다. 전, 후반 90분과 연장 30분을 더해 120분의 공방전을 치르고도 득점을 올리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두 팀 모두 1, 2, 3번 키커가 골을 성공해 3-3이 됐고 한국은 안정환이 4번째 킥을 스페인 골문 오른쪽 구석에 차 넣은 반면 스페인의 4번 키커 호아킨의 킥은 한국의 수문장 이운재의 다이빙에 걸려 무위로 돌아갔다. 한국의 5번째 키커 홍명보는 왼쪽으로 찰 듯한 동작으로 달려가다가 오른발을 약간 비틀며 인사이드킥으로 스페인 골문 오른쪽 네트 상단에 정확히 꽂았다.

 

16강에만 올라도 성공이라던 애초의 기대를 넘어 4강까지 올랐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래서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 준결승전은 가슴 졸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후반 30분 미하엘 발라크에게 결승 골을 뺏겨 0-1로 졌지만 아쉬워하거나 분하게 여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 26일 사이타마에서 벌어진 또 다른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1로 진 터키를 맞아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3위 결정전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2-3으로 져 4위에 머물긴 했지만 국민 모두는 승자가 된 기분에 젖었다.

 

이후 한국은 2006년 독일 대회에서는 토고를 2-1로 누르고 원정 대회 첫 승을 거뒀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해 원정 대회에서 처음으로 1라운드를 통과해 16강에 올랐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1무 2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해 2000년대 들어 가장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그러나 한국 축구는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8회 연속, 통산 9회 출전의 월드컵 역사를 만들었고 2016년 2월 현재,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통과해 오는 9월 시작하는 최종 예선을 앞두고 있다.19세기 말 이 땅에 들어온 축구 100년사를 돌아보면서 빠뜨릴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여자 축구 발전 과정이다.

 

한국 여자 축구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때 개최국 중국이 여자 축구를 정식 종목으로 만들기 위해 협조 요청을 하자 이를 받아들여 핸드볼 등 다른 종목 선수들로 대표팀을 급조해 출전한 게 효시로 알려져 있다. 급히 꾸린 한국 대표팀은 북한과 대만에 0-7, 일본에 1-8, 중국에 0-8로 졌고 홍콩에만 1-0으로 이겨 출전 6개 나라 가운데 5위를 했다. 1990년 현재 한국 여자 축구의 현주소였다.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과 달리 한국 여자 축구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49년 6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체육신문사 주최 제 2회 전국여자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벌어진 종목이 육상과 배구, 농구, 핸드볼 그리고 축구였다. 축구 종목 출전 팀은 무학여중과 중앙여중, 명성여중이었다. 이때는 학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통합돼 있었기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대체로 고교 1, 2학년들이 팀의 주축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 왕십리에 있는 무학여중이 우승을 차지했다.제 3회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열리지 못했고 이후 여자 축구는 40여년 동안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기간 TV로 유럽 여자 축구가 이따금 소개되긴 했다. 유럽에서는 1984년에 대륙선수권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여자 축구가 성행하고 있었다.60여 년 전 “시아버지 밥상을 걷어찰 일이 있냐”는 핀잔을 듣고 사라졌던 여자 축구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이후 딱 20년 만인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독일) 3위와 17세 이하 월드컵(트리니다드토바고) 우승에 이어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는 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사이 대한체육회는 2000년 제 29회 인천 전국소년체육대회 때 여자 축구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해 발전에 가속도를 붙였다.

 

신명철 편집국장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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