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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국제배구연맹 '공인’ 지도자가 되다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3. 5. 2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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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5. 23

 

<버킷 리스트 도전!>

 

나에겐 작은 꿈이 있었다.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주관하는 코치 코스를 밟고 국제기관에서 검증된 배구 지도자의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막연히 선수 시절부터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넣어 놓고 '언젠가는 이루리라' 다짐했던 꿈이다.

 

배구뿐 아니라 대부분 운동 종목도 현장에서는 실기 위주로 가르치지만, 나는 종목에 대한 역사와 배경지식, 이론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 FIVB COACH COURSE LEVEL 1

 

하지만 지도자의 생각이나 성향이 무조건 옳다고 강요하기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3년 전,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도 '국제배구연맹 지도자'를 향한 내 바람은 더 간절했다.

 

“선수 경력 27년에 국가대표까지 했으면 됐지 배구에서 뭘 더 배울 게 남아있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본질로 돌아가서 진짜 배구가 뭔지, 국제 무대에서 배구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고,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5월 7일 아침,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주일 동안 태국에서 열리는 FIVB 지도자 코스 1단계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월부터 FIVB 지도자 코스를 준비하기 위해 영어로 배구의 역사, 경기 룰 등 기본적인 이론 등을 공부했고, E-learning 코스까지 통과했지만 막상 태국으로 떠나려니 긴장이 됐다.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6 시간 후. 태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40도가 넘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드디어 태국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고 스케줄 체크를 하며 가벼운 미팅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정식 수업이 시작됐다.

 

<FIVB 지도자 코스는?>

 

이번 FIVB 지도자 코스는 필리핀, 러시아, 쿠웨이트, 마카오 등 총 8개국에서 배구 지도자를 준비하는 29명이 등록했다.

 

첫날 크로아티아 출신 보얀(bojan) 코치는 수강생들에게 출신과 함께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나는 그동안의 내 프로 경력과 대표팀에서의 선수 이력을 설명하고, 지금은 아카데미 운영과 배구 해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메인 코치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럼 이 지도자 코스를 왜 들어요?"

 

 
 

▲ 이론 수업 중

 

이들이 미래의 배구 지도자를 대하는 방식은 질문을 통해 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40시간 들었는데, 오전에는 이론을, 오후에는 실기를 들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고 수업을 들으러 이동해 저녁에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와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기 바빴다.

 

우리말도 어려운 이론을 영어로 들으려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배구의 철학과 역사는 기본이고, 배구를 처음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에 관한 체력, 모든 스킬에 기본이 되는 공식들, 여기에 선수들에게 줄 수 있는 동기부여와 선수들에게 던질 수 있는 'HOW TO?'라는 물음표까지 하나하나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깨달았던 것들을 공부로, 또 공식으로 쉽게 풀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나 스스로 더 깊이 있는 답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배운 것을 한국으로 돌아가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세계 여자 배구의 레전드 펭 쿤 코치

 

이번 지도자 코스에는 세계 여자배구계의 전설적인 세터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펭 쿤 코치가 어시스턴트 코치로 함께했다. 큰 신장으로 세터이자 동시에 미들 블로커로 활약했던 그녀를 이곳에서 만난 게 무척 신기했다.

 

쿤 코치는 토스와 블로킹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이며 학생을 대상으로 지도할 땐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줬다.

 

"토스에 기본이 되는 손 모양과 공의 낙하지점을 찾아야 한다. 컨택 지점이 항상 일정해야 좋은 토스를 할 수 있다."

 

쿤 코치의 말은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중요한 얘기였다.

 

<천군만마>

 

시간이 지날수록 시험에 대한 부담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태국 남자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박기원 감독님을 뵙게 됐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 나, 보얀 코치, 조세 체력담당 브라질 교수, 박기원 감독님

 

박기원 감독님은 현재 아시아배구연맹(AVC) 기술 위원장을 겸하고 계신데 한국 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함께 더 이상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계셨다.

감독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고, 감독님은 한국의 배구 지도자들이 이 코스를 꼭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감독님 덕분에 태국 배구협회장, AVC 사무총장님 등 아시아 배구계 관계자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태국은 브라질 출신 체력 담당이 국가대표팀은 물론 많은 파트에서 선수와 체력 코칭을 하며 배구 발전에 많은 부분을 힘쓰고 있었다.

태국에는 AVC 개발 센터가 자리해 배구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참 빨랐다. 참 부러웠다. 현재 여자배구는 태국이 한발 앞섰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남자마저 한국을 바짝 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명의 금요일>

 

5일째 마지막 날, 드디어 시험을 봐야 했다. 오전 9시부터 90분 동안 필기시험을 보고, 필기를 통과해야 곧바로 실기시험을 볼 수 있었다. 문제당 각 2점씩 총 50문제를 풀어 70점 이상을 맞아야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었다.

 

 

▲ 1주일 동안 같은 그룹 멤버들

 

시험 전날에는 그룹별 토론 시간이 있었는데, 영어에 더 능통했던 코치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한 것이 시험을 보는 데 도움이 됐다.

 

다행히 필기시험도 통과했고, 곧바로 실기 평가가 이어졌다. 서브, 패스, 토스, 수비 훈련을 시키는 시험이었다, 이 또한 80점 만점 기준 50점이 넘어야 통과였다. 시험은 하루 종일 이루어졌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 자신도 반신반의하며 태국행 비행기 표를 끊을 때부터 마지막 증명서를 받을 때까지 '맨땅에 헤딩'을 하는 느낌이었다. 몸은 고되고, 머리는 아팠지만, 마음만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 합격증 수여식

<또 다른 시작>

 

힘들게 딴 FIVB 지도자 자격증인데 정말 몇 시간이 지나니 느낌이 이상했다.

사실 한국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FIVB 자격증이 꼭 필요하지 않다. 대한 배구협회에서 인증을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국행을 택했던 이유는 배구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보면 항상 물음표가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의 답을 채우고 싶었다. 배구를 잘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리고 남다른 지도법으로 선수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지도자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던졌는데 이제는 은퇴한 사람으로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 길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 지도자들은 우리나라 배구를 '클래식 배구'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클래식 배구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배구계가 마주한 교육제도의 변화, 어린 선수의 고갈 등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이런 여러 사정은 다른 나라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지도자 또한 왜 다른 나라에서 우리 배구를 '클래식 배구'로 평가하는지 한번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지도자는 어떤 생각으로, 어떠한 지도법으로 선수를 지도하며, 그들과 어떻게 하면 소통하고 교류를 할 수 있는지도 말이다.

 

▲ 힘겨웠던 체력 파트 실기 수업 후 너무나 해맑은 동료들

 

이번 FIVB 코치 코스를 듣는 동안 나 스스로 배구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만난 보얀 코치, 쿤 코치, 그리고 수업을 같이 들었던 많은 코치들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그들은 "100%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 정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 기본기가 필요하고, 선수들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항상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선수 시절 나의 스승께서도 말씀하셨다.

 

" 공은 둥글다. "

 

공은 둥글기 때문에 어떤 마음으로 공을 대하느냐에 따라 공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한국의 많은 지도자에게 꼭 한 번은 FIVB 지도자 코스를 꼭 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제 나는 앞으로 FIVB 지도자 코스 레벨 2와 레벨 3을 준비할 것이다. 상위 코스에선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번 코스를 준비하고 이수를 하는 과정 속에서 쌓은 경험들을 토대로 다음 단계를 준비할 계획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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