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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사냥, 그 끝없는 유혹!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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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주재하에 ‘국왕전하 매 사냥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아침 댓바람부터 광화문 육조거리 한편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런 불행한 소식을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뭐,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전하께서 이번에 사냥을 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휴….”

 

“어이구야….”

 

방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낮은 탄식과 한숨들…

 

“아니 사간원 놈들은 그동안 뭘 한 거야? 이런 일 막는 게 지들 일인데….”

 

“이미 일은 터졌습니다. 지나간 일 가지고 떠들 시간은 없고, 당장 사냥을 어떻게 치룰 건지 그걸 의논합시다.”

 

“혹시 사냥터는 결정하신 곳이…?”

 

“경기도겠죠.”

 

“아니 툭하면 경기도입니까? 만만한 게 경기도라고…아니 평안도도 있고, 충청도도 있는데, 왜 하필 경기도입니까?”

 

“관찰사 아저씨, 머리는 악세사리임까? 평안도나 충청도까지 행차한다면, 그 비용은 어쩔 겁니까? 그나마 경기도니까 당일코스는 아니어도 대충 1~2주일 정도로 끝이 나는 거지.”

 

“그래도 맨날 우리만…만만한게 홍어X이라구….”

 

“잡설은 집어치우고, 형평을 맞추기 위해 이번에는 경기도 이천으로 사냥터를 압축했으니, 대충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전하를 호위할 내금위에서 1천 명 정도의 호위 병력이 차출될 거고, 5위에서 3천 명 정도가 외곽 호위를 맡기 위해 차출될 겁니다.”

 

“그리고, 몰이꾼이 문젠데…경기도 쪽에서 계속 사냥터를 제공하느라 고생이 많으니까, 몰이꾼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에서 각자 알아서 차출하는 걸로 합시다. 저번 사냥 때 보니까 몰이꾼이 못 잡아도 5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같던데, 각 도에서 1천2백 명 정도 차출하면 될 거 같슴다.”

 

“아니, 그래도 무슨 몰이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지금 골프치러 갑니까? 전하가 사냥을 하겠다는데! 지금 반항하는 겁니까?”

 

“아…아닙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우리도 머리아파 죽겠다니까…. 당장 행정부 쪼게야지, 경호계획 세워야지, 병력 동원해야지…. 우리 쉽게 쉽게 갑시다. 웬만한 건 얼굴 붉히지 말고, 대충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누군 뭐 사냥가고 싶어 이러는지 아십니까?”

 

“아…알겠습니다.”

 

이리하여 ‘국왕전하 매 사냥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는데, 각 도의 관찰사들과 사냥터로 지정된 곳의 수령은 그때부터 죽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이! 지금 당장 이천의 수령한테 전화 때려! 3일 줄테니까 지금 당장 가을 걷이를 끝내라고 그래!”

 

“그…그게 아직 곡식이 다 여물지도 않았는데….”

 

“너 이 자식 개념을 바겐세일 했냐? 당장 추수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그냥 다 들어먹게? 그 수많은 병사들이 짓밟고 돌아다닐텐데, 반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지금 당장 추수를 끝내라고 그래!”

 

이천 수령은 자기 고을이 사냥터로 지정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천을 ‘사냥대비 비상근무 체제’로 만들고 ‘민관 확대 기관장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일단 3일 안에 추수를 다 끝낸다! 그리고, 추수 끝나자마자 모든 백성들은 사냥터로 쓰일 야산과 들판의 풀을 모조리 싸그리 다 깎는다! 어이 호방! 넌 지금 당장 창고문 열고 1만 명이 7일간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해! 이방! 너는 당장 마을에 있는 아줌마들 다 끌어 모아서 급식조 편성하고! 이것들이…어쭈 발 보인다!”

 

그랬다. 이 당시 사냥터로 지정된 고을의 수령은 임금의 사냥을 100% 후방지원하기 위해 전시체제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냥터로 쓰일 곳의 풀을 다 베어버리는 것이다. 혹시 모를 임금의 낙마사고 예방과 동물이 은폐엄폐할 공간을 없애기 위한 조처였던 것이다.

 

여기에 몰이꾼으로 차출된 각도의 백성들까지 가세하면서 경기도 이천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으니…그야말로 임금의 사냥길 한번은 백성들의 피눈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임금의 사냥이란게 왕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왕들은 지루한 일상과 궁궐안의 무미건조함을 탈출하기 위해 수시로 사냥을 나섰으니…오늘날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골프회동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만 하지 않을까?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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