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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계유생(癸酉生)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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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올해로 회갑을 맞는 계유생은 1933년생이다. 지금 살아있는 가장 기구한 세대를 뽑으라면 금,은,동 어딘가에 꼭 끼이게 돼있는 일그러진 세대가 계유생이다.

 

계유생이 태어나던 해는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를 집어 삼키고 중국침략의 첫발로서 산해관을 넘어가던 바로 그해였으며, 유럽에 서는 히틀러가 독재정권을 수립, 이에 못견뎌 아인슈타인이 망명을 떠났던 해 이기도하다.

 

가수 다미아가 부른 염세 샹송 '구루미 선데이[Gloomy Sunday]'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희망을 찾지못한 젊은이들이 이 노래들으며 줄줄이 자살하던 그 시기에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내어던져진 세대인 것이다.

 

계유생이 여덟살이 되어 소학교에 들어가던 해 조선말을 교과에서 말소(抹消)했고, 조선말을 쓰다 들키면 잡혀가 종아리를 맞고 손바닥에 회초리질을 당해야 했다. 이름마저 왜(倭)이름으로 강제 개명당했고-.

 

그리하여 학교에가면 일본말을 쓰고 일본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집에 돌아오면 조선말을 쓰고 조선이름으로 불리는가에 대해 영문도 모르고 또 일러주는 사람도 없이 두 개의 나를 주야로 왔다갔다했던 계유생이다.

 

바로 소학교에 들어가던 그해에 세계 2차대전이 저질러지고 패색과 더불어 밥먹는 숟가락까지 빼앗아갔던 저인망 수탈로 기름짜듯 착취당해, 맨발로 높은산에 소풍 가는것 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6년을 다니다보니 굶주려 얼굴이 누렇게 뜨는 부황든 아이가 한반에 과반을 넘기 시작했고 그 부황난 어린것들에게 실컷 쌀밥 먹여주고 단추도 일곱개나 단 군복도 입혀준다면서 자살특공대와 정신대에 꼬셔 끌어갔던 그 많은 계유생들-.

 

염병이 번져 머리가 빠지고 옴이 번져 온몸의 무른살에 고름이 흐르면서도 미군폭격기 B29가 하늘을 가르면 그까짓 목숨 무슨 미련이 있어 책상밑이건, 시궁창이건 닥치는대로 머리를 쳐박고 기약없는 캄캄한 미래를 응시하며 숨을 죽였던 계유생이다.

 

그렇게하여 해방이 되자 겨우 우리말 철자법만 배우고서 중학교에 들어가 놓으니 지식의 흡수매체를 상실, 정신적 방황이 불가피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 계유생이 가장 힘쓸 나이를 기다렸다가 일어난 한국전쟁은 계유생의 반을 학도병으로, 나머지 반을 의용군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했고, 그로써 계유생의 3분의1이 유명(幽冥)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 만큼 살게된 30~40년은 바로 계유생이 가장 활동력이 왕성했던 인생시기와 고스란히 맞먹는다.

 

그 압축된 시공에서 먹고 싶은것 입고 싶은것 알고 싶은 것 제대로 못누리고 겹겹의 고초와 갈등을 소화하는데 지쳐버린 25시적 인간군-그 계유생이 회갑을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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