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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술잔 안돌리기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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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서양 사람들처럼 자기 술잔에 자기 먹고싶을 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문화를 자작(自酌)문화라 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동구 사람들처럼 잔을 맞대고 건배를 하고 마시는 것을 대작(對酌)문화,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술잔을 주고 받으며 마시는 음주문화를 수작(酬酌)문화라 한다.

 

일본도 어느 한 역사 시기에 수작을 한적은 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현재 술잔을 주고 받는 수작을 하는 민족은 우리 말고는 저 아프리카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적은 한 종족밖에 남아있지 않다 한다.

 

수작문화의 기원을 더듬어 오르면 사람과 사람을 정신적으로 결속시키는 숭고한 수단이었다. 죽음으로써 약속한 것을 보증할 필요가 있을 때 한 잔에 쏟아 부은 짐승피를 나누어 마시는 혈맹을 하였고, 신라 화랑들이 했듯이 한솥 차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공생공사(共生共死)를 다지는 차례로 진화하였으며, 그것이 한잔 술을 나누어 마시는 수작으로 다시 진화한 것이다.

 

경주 포석정에서 술 잔 띄워 돌려 마시는 곡수현장을 신라를 패망시킨 환락의 현장이라고 매도를 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왜냐면 그 현장은 바로 신라의 군신이 둘러앉아 한잔 술 곡수에 띄워 돌려 마심으로써 동심일체(同心一體)-일심동체를 다졌던 의식의 현장이요, 신라를 번성하게 했던 정신적 제장(祭場)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세조는 쿠데타 음모를 진행 중이던 시절부터 회심의 술자리에서는 바지춤에 숨겨갖고 다니던 표주박을 꺼내 한잔 술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은밀히 뜻을 다져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옛 우리 관청 풍습으로 한 말들이 커다란 술잔-곧 대포를 마련해 두고 일정한 날을 잡아 상-하 차별없이 한잔 술을 돌려 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는 의식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각 관청마다 그 대포잔 이름이 달랐는데 사헌부는 아란배, 교서관은 홍도배, 예문관은 장미배, 성균관은 벽송배라 했다.

 

이 돌림술의 규모를 줄인 것이 술잔 주고 받는 수작인 것이다. 혼례 때 합근례(合?禮)라 하여 표주박잔에 술을 따라 신랑-신부가 입을 맞대고 마시는 절차가 있는데, 바로 수작의 상징적 의미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이처럼 술잔 주고 받는 음주풍습의 기원은 아름다운 정신작업이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으나, 요즘처럼 한잔 술 나누었다 하여 정신적 의리를 느낀다는 법도 없고,서로 맺은 약속이나 계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임에랴 굳이 알맹이 없는 껍데기문화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독한 알콜에도 살균되지 않는다는 간염 등 세균이 선호하는 전염루트요, 음주운전의 으뜸가는 도발요인이라던데 말이다. 해가 바뀌면서 뭔가 발전적으로 달라져야 할 습속이 있다면 바로 이 술잔 안돌리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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