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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식인(食人) 문혁(文革)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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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이미 기원전 5세기에 지은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보면, 스키타이 민족은 족친이 죽으면 애도끝에 자신과 일체화시키는 의식으로서 그 인육을 먹어버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식인의 역사는 유구하다.

 

문화인류학자 스타이메스의 분류에 의하면 (1)전쟁이나 극심한 가뭄으로 기근이 들었을 때, (2)신명에 희생하고 공식의례로서, (3)그것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다 할 때, (4)형벌이나 복수의 수단으로, 그리고 (5)충성이나 용맹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때 여러 사람 앞에서 인육을 먹었다고 했다.

 

민족성이 워낙 선질인 우리나라에는 식인속(食人俗)과는 인연이 멀다. 임진왜란에서 수복된 한양 거리에서 기민들이 식인했다는 기록이 없지 않으나 극히 예외에 속하며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살을 에고 피를 쏟아 먹이는 효도(孝道) 인육식(人肉食)만이 보편화돼 있었다.

 

이웃 중국에서는 식인을 끽인이라하며 고대부터 많은 문헌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비자>에서 제나라 임금인 환공의 요리장인 역아는 자신의 아들을 요리하여 임금에게 바치고 있다. 원나라 때 문헌인 철경록 에는 인육맛으로 어린이 살이 으뜸이요, 부녀자 것이 버금이며, 사나이 것이 가장 하질이라고 품평하고, 당시 상식화 돼있던 인육 요리법과 인육을 즐겼던 인물록을 장황하게 적어 놓고 있으며, 송나라 문헌 계륵편 에는 인육을 양각 양이라 하고 어린이 인육을 화골란, 연인의 그것을 불선양, 남자의 그것은 소파화란 은어로 불렸다 했다.

 

중국문학에서도 인육식은 낯선 풍속이 아니다. <수호지>나 <삼국지연의>에도 몇 군데 나오고 근대작가인 노신의 <광인일기>에도 이 식인속이 그다지 저항감을 수반하지 않고 나온다.

 

이처럼 중국 역사에 있어서 인육식은 최고급 요리로, 죄악시 하거나 금기시 하지 않았음을 알수가 있다. 승리에 도취하거나 용맹을 과시할 필요에서 저질러진 인육식의 역사도 유구하다. <속십팔사략>에 보면 명나라 때 역신 이자성이 낙양을 함락했을 때 복왕을 살해, 그 인육을 사슴고기와 섞어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던데 이를 복록식이라 했다 하니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60년대말 중국의 문화혁명때 홍위병의 광적인 소행들이 인권차원에서 많은 고발을 받아왔지만 이 무렵 중국 광서성에서 이들에게 충성을 입증시키는 방법으로 적어도 1백37명의 반동분자를 잡아 먹게 하는 식인잔치를 베풀었다는 문서가 서방측에 흘러나가 <뉴욕 타임스>지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교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교장선생을 잡아 먹게 하기도 하고-. 식인전통이 있어서가 아니요,또 홍위병이라서가 아니다.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극한에 환멸을 주는 20세기 최악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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