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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50억원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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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사람값은 그 사람의 가치나 비중이나 쓸모에 따라 일정하지가 않고 또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인신(人身)값은 어림해 볼수 있다.

 

통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7세기 영국의 페티경은 <정치산술>이라는 저서에서 근대식 개념으로 제 밥벌이를 하는 사람값을 80파운드의 금값으로 계산했는데, 이를  환산하면 지금돈 약 60만원이 된다. 그 무렵 유럽에서 전쟁으로 죽음을 당하거나 사고로 죽은 인명값을 보상하는데 바로 이 인명값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보통사람의 기본값에 인격이나 이용도에 따라 부가가치가 더 붙는다.

 

우리 옛 선비들이 모이면 곧잘 놀았던 지식유희(知識遊戱)에 특정인물의 도덕적 가치나 인격적 비중을 금품으로 매기는 놀이가 있었다. 이를테면 충효의 덕목을 잡은 다음 정몽주가 3천석 충(忠)이라면 성삼문이나 신숙주는 몇석 충이며, 심청이 3천석 효(孝)라면 아무 누구는 몇천 몇백석효라느니 하며 인품을 기리고 도덕의 질을 따짐으로써 심덕을 함양하는 놀이인 것이다.


이 인격이나 인품값의 상한선이 3천석이었다 하니 그다지 비싼값은 아니었다. 3천석을 요즈음 쌀값으로 환산하면 1억8천만원이다. 2억원 미만으로도 만고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인간이 되고도 남는다는 것이 된다.

 

선거철에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 당(螳) 저 파(派)로 옮겨다니는 것은 여망이나 여론의 빈축을 사고 말고하는 것과는 별도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한데 그 이합집산(離合集散)에 돈이 붙어다니고 쇳소리가 나는 앙금이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더욱이 선거전에서 출마자가 중도 포기하고 다른 후보자를 지지하고 나섰다 할 때 공자가 그러했다 해도 어떤 뒷거래를 상정(上定)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정주영씨는 주었는데 이종찬씨는 받지 않았다하여 공중에 떠있는 5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어떤 미화된 변명이 붙고, 명분이 수식되더라도, 국민의 감각에서 사고 파는 매수의 영역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몽주의 3천석 충이나 심청의 3천석 효의 무려 25배나 많은 돈을 주고 만고의 오점으로 남을 치사한 거래를 한 셈이다.

 

부산횟집의 도청(盜聽) 청부(請負)에 주었다는 1백억원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없더니, 주었다는데도 받지않았다는 50억원도 중간에서 증발(蒸發)할 조짐이다.

 

이에 맥락된 법적인 측면의 유야무야(有耶無耶)는 공권력의 신뢰에 먹칠하는 것이 되려니와 세상에 그 음성적인 일들에 50억원, 1백억원을 푼돈 쓰듯 씀으로써 단돈 몇천원벌기 위해 서천(西天)의 달을 보고 나아가 종일토록 뼈빠지게 일하고, 동천(東天)의 달을 보며 돌아오는 대다수의 성실한 시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일할 맛 나지않게 한 그 엄청난 실의(失意)의 총화(總和)는 누가 보상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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