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검식관(檢食官)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3:54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병자호란으로 흐트러진 난세를 잘 다스렸던 정승 홍서봉의 어머니는 음식을 낼 때 상했나 여부를 미리 살펴 보는 것을 평생의 법도로 삼고 살았다.

 

언젠가 손님이 와 쇠고기 한근을 사왔는데, 여느때처럼 은비녀로 고기가 상했나 여부를 살펴 보았다. 은비녀가 변색(變色)하는 것을 보고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 한 필을 팔아오게 하여 그 돈으로 푸줏간의 고기를 몽땅 사다 뒤란에 묻어버린 것이다. 독이 있는지 모르고 사먹을 많은 사람을 말없이 구제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만큼 만들어 그때 그때 먹어치우는 즉석(卽席)음식문화권과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고 두고 두고 먹는 저장(貯藏)음식문화권으로 대별된다면, 우리 한국은 전형적인 저장문화권인데다가 다습온대(多濕溫帶)에 속한지라 음식이 잘 상하고 독이 잘 생겼기로 먹기 전에 살펴보는 검식(檢食)문화가 나름대로 발달하고 있다.

 

하물며 궁중(宮中)임에랴. 모든 권력이 한 몸에 집중된 지엄한 분인데다가 권력을 두고 혈육(血肉), 외척(外戚), 당색(黨色), 외세(外勢)의 마수가 노리는 호재가 바로 임금님이 드시는 수라상이다. 그래서 수라상의 검식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김용숙 교수의 <조선조 궁중풍속연구>에 보면 수라상의 검식을 기미를 본다 고 말한다는 것이다. 왕이 수라를 들기 직전에 곁에 시좌하고 있던 큰방 상궁이 조그마한 그릇에다 수라상에 오른 모든 찬품을 골고루 조금씩 덜어 어전에서 먹어보고 또 가까이서 시중드는 나인들에게도 먹어 보도록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이 기미용으로 수라상에는 여벌의 은수저나 상아수저 그리고 여벌의 그릇이 놓여있게 마련이다. 물론 기미는 음식뿐 아니라 인삼, 녹용, 과줄, 탕약, 과일 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기미를 뚫은 독살(毒殺)시도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친로정부가 몰락한 연후 앙심을 품은 친로파의 거두 김홍륙이 궁중주방의 하수인을 사주, 고종과 당시 황태자이던 순종이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타올린 독차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고종이 돌아가셨을 때도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의 앞잡이 윤덕영에 의한 독살설이 나돌았었다. 저녁수라를 들자마자 몸이 언짢다면서 자리에 누웠던 일이며 총독부 당국이 승하한 날을 이틀이나 늦추어 조작발표한 것 등이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다.

 

직책이 높아지면 그에 따른 위신이나 안전을 위한 부대조건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 가운데에는 좋은 것도 많고 귀찮은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김영삼 예비대통령이 드는 밥상도 검식관을 거쳐야 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런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기미를 보았던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고 해서 이렇게 되뇌어 보았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