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狂牛病)의 만연으로 쇠고기 기피현상이 만연되고 있는 프랑스에서 대신 말고기 먹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평균 말고기 소비량의 59%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3명 가운데 한 사람꼴로 말고기를 먹으며 1인당 연간소비량이 1.8㎏이요, 3000여곳의 말고기 정육점이 장사를 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별반 이상할 것은 없다.
중세 초기 교황의 포고로 말고기 금식령이 내려진 이후 사양식육이 돼 왔던 말고기는 1870년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기간 중 동물원의 말까지 7만여마리의 말을 먹어치운 것이 계기가 되어 말고기 먹기가 살아났으며, 문호(文豪) 빅토르 위고도 그때 말고기에 맛들여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식당에 가면 별식으로 말고기 스테이크를 권유받게 마련이다. 2차대전 중 먹을 것에 굶주렸을 때 먹기 시작한 메뉴라 한다. 미국에는 '기사'라는 브랜드의 호스버거도 나와 있으나, 말고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미국 사람들이다.
유럽의 말고기는 이 지역을 지배했던 몽골문화의 여파라고 문화인류학자 핼리스는 고증했다. 칭기즈칸의 병사들이 대륙을 횡단할 때 하루에 100마일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말의 생피를 빼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정설이 돼 있다. 병사 한 사람당 18마리의 말을 끌고 달리는데 10일 만에 한 마리씩의 피를 뽑아먹고 그 말을 잡아 열흘의 군량으로 삼았다 한다.
노르웨이나 독일 북부에서는 지금도 탈탈 스테이크라는 말고기 육회를 먹는데 우리 쇠고기 육회와 형제 음식이다. 몽골 지배 시에 그곳과 한국에 퍼뜨린 말고기 요리로, 한국의 그것이 쇠고기로 달라졌을 뿐이다. 일본 사람들은 말고기를 벚꽃처럼 붉다 하여 사쿠라란 이름으로 육회나 냄비요리로 해서 먹고 있으며 근간에도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입해 먹고 있다. 우리나라도 말의 피나 고기를 먹던 역사가 없지 않았다. 백제가 망했을 때 백마의 피를 마시고 맹약을 하고 있으며, 고려말의 요승 신돈이 흰 말고기를 먹고 양기를 돋우었다. 공민왕 때 홍건적이 개성을 점거하는 동안 말을 다 잡아먹었다 했고, 이색의 글에 잔치 때 말을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말고기는 이례(異例)에 속한 일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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