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저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한 다리가 짧다고 한다.
하지만 명종 때 정승 상진은 "그 사람 한 다리가 좀 길구먼"한다. 짧건 길건 저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짧다는 데는 비하하는 느낌이 들지만 길다는 데는 그 느낌이 사라진다. 이렇게 남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상진 대감은 낭만파 인간이다. 그 상진의 증조할아버지 상영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그 빚문서를 태워 연기 오르는 것을 보고 세상 살맛을 통감했다는 인물이다. 그 적선으로 상진 같은 인격자가 태어난 것으로 문헌들이 적고 있으니 상영부는 재물에 구애받지 않은 낭만파 인간이다.
중국 문헌 <서상기>에 17세기 문인 김성탄의 '유쾌한 한때' 33장면이 나오는 데, 바로 낭만파 인생의 세상 사는 모습들이다. 그 중 식후 무료해서 헌 문서를 뒤지다 보니 돈 빌려준 문서 꾸러미가 나오는지라 이를 뒤란에 가 태우면서 오르는 연기를 올려본다는 것은 그 아니 즐거운가 하는 게 있으니 바로 유영부류의 낭만 인생이다. 10년 못 만난 옛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기에 안방에 들어가 아내에게 "(비녀 빼어 팔아 남편 술을 사댄) 소동파의 아내처럼 술 한 병 사오지 않으려나"하니 금비녀 빼어 사흘 술을 대니 그 아니 즐거운가 했고, 가난한 서생이 돈 빌리러 와 말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뒤란으로 데리고 가 얼마나 필요한가 묻고 변통해 주고서 "바쁘지 않으면 한잔 하고 가게나"하고 소매를 붙드니 그 아니 즐거운가 하는 식이다.
세컨드 컬처ㅡ제2문화라는 개념이 있다. 학자가 하는 학문이나 예술가들이 하는 예술이 퍼스트 컬처라면, 발표할 필요도 또 비평받고 인정받기를 바랄 필요 없이 그저 하는 동안 즐거움만 느끼면 되는 아마추어 학문이나 예술이 세컨드 컬처요, 낭만파 인생이 하는 학문 예술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산천을 방랑하다 시상이 떠오르면 주저앉아 시를 짓고, 완성되면 그 시 쓴 종이를 돌돌 말아 흐르는 냇물에 던지고 떠나는 것이 세컨드 컬처다.
이처럼 매사를 돈이나 권력과 떠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손해봐가면서 도락을 즐기며 멋있게 사는 동호인끼리 엊그제 낭만파 클럽을 만들었다길래, 각박한 세상의 모서리 깎는 일로 부각시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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