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순흥골의 황부자는 겨우 밴댕이 세 마리 놓고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하여 인색하기로 소문이 났다.
무일푼에서 묵정밭 가꾸어 돈을 벌기 시작한 이 황부자는 1만석이 차던 바로 그날부터 돈을 쓰기 시작하는데, 영남에서 과거보러 상경하는 서생의 노자와 말은 이 황부자가 다 댔다.
그러면서도 자식에게 재물을 물리면 많을수록 더 많이 인생을 망친다 하여 일푼도 물리지 않고 쑥이 자라는 폐허 속에 죽어갔다.
외침(外侵)과 국난(國亂)이 잦았던지라 돈 있는 집에서는 가산을 금은보화로 바꾸어 솥에 담아 땅에 묻어두고 피난가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피난갔다 죽음을 당하면 후세에 그 보물솥이 우연히 노출되어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과부로서 어린 형제를 삯바느질로 근근이 기르던 선비 김학성의 어머니도 그런 횡재를 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한데도 그 보물솥을 다시 묻고 이사가서 살았다. 사람이란 모자란 것이 있음을 알고 자라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황부자나 김과부처럼 재물에서 인간을 구제한 전형적인 인물이 미국의 백만장자 카네기다. 그의 인생 전반은 무일푼에서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요, 후반은 어떻게 그 돈을 썼느냐로 접어진다. 유족에게 부를 물리는 것이 최악의 재산처리요, 자선단체에 희사해도 1000달러 중 950달러는 무분별하게 쓰여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 그의 부의 철학이다. 그래서 부란 그로써 많은 사람이 노력하여 향상할 수 있도록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라 했다. 돈 벌기보다 쓰기가 몇 곱절 어렵다는 그의 유명한 말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환원하여 지금 미국 사람의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꼴로 카네기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66세 때 환원한 부만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입은 총피해액과 맞먹는 거액이었다.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미국 백만장자들에게는 이 같은 부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상속세 단계적 폐지안을 대표적 거부들이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노력으로 벌 생각을 않고 물려받은 게 많은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 바로 그 저지 이유였다. 황부자 같은 이가 없지 않았던 우리 부자들 굽어살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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