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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정(情) 가름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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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옛날 시골에 혼사(婚事)·상사(喪事)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 가 대사(大事)를 돕는다.

 

대사가 끝나 그 대가로 곡식을 퍼주면 "정가름인데 뭘"하며 한사코 받지 않는다. 정가름이란 정을 나눈다는 관행(慣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양하게 발달한 정서(情緖) 문화재요 민족 특허품이다.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지면 동네 여인들은 무리지어 산나물을 뜯어 이고 좀 사는 집을 찾아간다. 뒤란에 멍석을 펴고 산나물을 쌓아놓으면 그 집 마님은 한솥에 밥을 지어먹이고 돌아갈 때 곡식 한됫박씩 퍼준다. 강매(强賣)행위처럼 보이지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공존하는 산채(山菜) 정가름이다.
 
속칭 돼지사돈이라는 정가름도 있다. 좀 사는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수복(壽福)을 비는 뜻에서 3-5-7-9 홀수 돼지새끼를 사서 이웃에 나누어준다. 이 복돼지가 자라 새끼를 낳으면 그중 한 마리를 돌려주는 조건이요 그렇게 돌아온 새끼를 다시 퍼뜨려 나간다. 이렇게 온 고을에 퍼뜨려 한 조상어미 젖을 먹고 자란 돼지사돈끼리 친화력을 갖는다. 이것이 복돼지 가름이다.
 
석덤 가름이라는 것도 있다. 여유가 있는 집 마님은 끼니마다 뒤주에서 쌀을 낼 때 식구 먹을 양식만 내는 것이 아니라 세 몫을 더 내 밥을 짓게 했다. 셋을 더한다 하여 석덤이라 하는 이 잉여의 밥은 그 마을에 못먹고 사는 사람의 예상 몫이요, 뒤란 울타리 개구멍을 통해 정이 갈라져나갔다. 그래서 개구멍을 남도에서는 정구멍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한솥밥, 한 어미 젖을 공식한 정가름 사이는 그를 변제할 의무는 없으나 대사가 있거나 품이 필요할 때 타산없이 노력을 제공한다. 그래서 대사 끝에 곡식을 퍼주면 정가름 사이인데… 하고 사양을 한다. 일제 때 농촌 생활실태를 조사해 놓은 것을 보면 제 식구 먹고 살 수 있는 가구는 겨우 30%요, 70%는 노력 이외에 먹고 살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도 조금도 불안하거나 각박하지 않고 그토록 유쾌하게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면에 만연된 정가름 때문이었다.
 
도시화(都市化)로 징발되고 없어진 이 정가름 문화를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 업체들이 도입, 한솥밥 더불어 먹는 기회를 늘리는 업체들이 늘고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히려 한국의 경영자들은 개인주의(個人主義)를 북돋우는 구미경영(區美經營)으로 빗나가고 있는데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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