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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LG "이기면 무료" 했더라면 …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4. 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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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5. 24

 

"올 때가 됐는데…."

 

1994년 '인사이드피치'가 LA 다저스에서 인턴을 할 때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1시쯤 구단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잖아 사무실 문이 열리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여러 색깔의 아이스크림을 가득 실은 카트가 들어왔다. 직원들은 입맛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고 오후 업무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아이스크림을 주는 거지?" 한 직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어제 지구 2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1게임 더 따돌렸잖아"라는 말. 이게 뭔 얘긴가. 더 설명해달라고 했다. "음, 그러니까 다저스가 지구 1위에 올라 있고, 그 전날 경기에서 지구 2위와 게임차가 벌어지면 그 다음날 구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돌리지. 정확히 언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순간을 자축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게 우리 팀 풍습이야."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공짜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도 좋았지만 작은 일에도 이벤트를 만들고, 의미 있는 순간을 갖는 게 좋아보였다. 특히 그 이벤트가 "이기면 좋고, 그때 베푼다"식의 긍정적인 발상이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지난주 한국프로야구에서 LG 트윈스가 기획한 무료 관중 이벤트를 보면서 그때 그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LG의 기획은 신선했다. 결과도 좋았다. 그런데 이랬으면 어땠을까. '지면 돈 안 받는다'가 아니라 '이기면 돈 안 받는다'였다면. '지면 우리가 손해를 보겠다'는 식이 아니라 '이기면 인심 쓰고 베풀겠다'는 식이었다면 말이다.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이튿날 5079명이 무료 입장한 LG의 이벤트나, 거꾸로 이겼을 경우 다시 운동장을 찾은 관중에게 돈을 안 받았더라도 엇비슷한 관중과 입장 수입이 기록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겼을 경우를 주제로 이벤트를 했더라면 첫 경기에서 LG가 이기길 바라는 관중은 더 많았을 것이다(이튿날 공짜로 또 볼 수 있으니까). 이벤트 주제를 '지면'으로 정하는 것과 '이기면'으로 정하는 것은 동기 부여 측면에서 그 차이가 크다. 또 선수들에게 주는 부담도 그렇다. '지면 안 돼'보다 '이기면 더 좋아'가 그 뉘앙스에서부터 부담의 무게가 많이 줄어든다.

 

성공한 운동선수의 소감은 대부분 이렇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랬더니 결과가 좋았다"는 식이다. 우승소감에서 흔히 접하는 말이다.

 

그래서 패배를 전제로 한 마케팅보다 승리를 전제로 한 마케팅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고 나서 속상해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보다 이기고 나서 기분 내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즐겁고 신나는 일 아닌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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