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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찬호 '굴하지 않는 보석…'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4. 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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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5. 31

 

박찬호가 우뚝 서 있다. 재기의 마운드 위에, 새로운 희망의 마운드 위에.

 

지난 3년간 부상의 어둠 속에서 좌절하고, '먹튀(챙겨먹고 튀기)'라는 비아냥에 눈물 흘렸던 아픔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은 용기가, 자신감이 흘러 넘친다. 무엇이 지금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나. 포기를 거부한 신념이다. 끈기를 동반한 노력이다. 시즌 5승을 거둔 5월 30일의 경기를 두고 그는 "큰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고 자평했다. 그날 경기 후에 만난 그는 '승리 이상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읽기 좋게 옮기자면 이렇다.

 

"3회까지 순탄한 1-0의 리드를 가졌다. 탄탄대로가 펼쳐지는가. 그게 아니었다. 4회에 어려움(3실점)이 왔다. 힘들었다. 날씨도 덥고, 집중도 안 됐다. '아, 안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포기할까? 그럴 수 없었다. 팀은 7연승 중. 내가 던지는 날 연승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바짝 긴장했다. 6이닝 3실점이 선발투수 임무의 기준. 2이닝을 더 무실점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회도, 6회도 쉽지는 않았다. 5회에는 수비 실책이 위기를 불렀다. 그럴수록 집중했다. 끈기로 버텼다. 더 이상 점수를 주지 않았다.

 

더그아웃에 앉아 6회 말 공격을 봤다. 1점을 따라붙고 1사 1루. 블레이락의 잘 맞은 타구가 상대 호수비에 걸리면서 투아웃이 됐다. '아,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 '포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소리아노의 안타. 희망의 끈을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어 케빈 멘치가 때린 타구는 분명한 홈런성. 그러나 파울폴 쪽으로 자꾸만 휘어져 나갔다. 또 한번 '아!'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바람 때문인가. 타구가 더 이상 휘어지지 않고 페어 지역으로 넘어갔다(박찬호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역전 홈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만큼 짜릿했다. 너무 기뻤다."

 

그가 '승리 이상의 의미'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이 겪은 굴곡이 경기에 상징적으로 녹아 있어서였다고 한다. 초반의 순항. 그러나 이어 찾아온 고난과 좌절. 그리고 그 이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버티고, 끈기가 담긴 노력으로 일어서는 것. 그리고 극적인 해피엔딩. 이 흐름이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을 너무 닮은 것 같아 승리 이상의 의미를 준 경기로 뿌듯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값진 뭔가를 얻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이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전에, 재기에, 부활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낸다. 박찬호는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았다. 더 많은 땀과 진지한 노력, 그리고 포기를 거부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기쁨을 얻었다. 그가 잘 부르는 노래 '넌 할 수 있어(강산에)'에 나오는 '굴하지 않는 보. 석. 같. 은' 그런 마음으로.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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