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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농구] ㉖ 필리핀의 농구사랑

--유희형 농구

by econo0706 2023. 2. 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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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06. 

 

필리핀의 국민 스포츠


필리핀은 농구의 나라다. 인구 1억 명이 넘는 필리핀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농구다. 직접 경기를 하면서 즐기기도 한다. 부잣집 마당과 공터에는 어김없이 농구대가 세워져 있다. 나무로 된 낡은 골대지만, 모이면 편을 갈라 경기를 한다. 그들은 대화도 늘 농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 같은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된다. 자국의 농구선수는 물론 미국 NBA, 외국의 유명 선수 신상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한국에서 온 농구선수라고 소개하면 바로 ‘신동파’하고 외쳐댄다.

 

필리핀 사람들의 농구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외국인인 신동파 씨가 여러 해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로 선정된 적이 있을 정도로 농구 사랑엔 국경이 없다. 필리핀 국회의장이 한국을 방문하면 신 선수를 만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필리핀은 스페인에 330년, 미국에 50여 년간 지배를 받았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농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농구선수 출신 상원의원이 3명이나 된다. 함께 뛰었던 자워르스키, 프레디 웨브가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을 했다. 24명을 뽑는 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상원의원이 되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이동할 때마다 경호원 5명이 호위한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도 상원의원을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육인이 국회의원 되기가 어렵다. 이처럼 필리핀은 스포츠 스타를 무조건 좋아하고 존경한다.

▲유희형이 필리핀 전에서 레이업 슛을 시도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제공

 

필리핀에서의 추억


필리핀에서 내가 알려진 것은 1973년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때부터이다. 홈팀인 필리핀에 패했지만, 많은 활약을 했다. 스포츠지에서 나를 훌륭한 선수라고 소개했고, 아시아 베스트 5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나를 좋아하는 팬도 생겼다. 필리핀인들은 스포츠 스타를 좋아하는 데 있어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외국 선수를 집으로 초대하고 선물 공세를 한다. 마닐라 인근 케손시에 거주하는 영화배우 가족이 우리나라 농구선수를 열성적으로 좋아했다. 신동파 선수의 팬이었다. 마리오 몬테네그로라는 배우인데 우리나라 신성일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부인도 배우로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고, 대학생 딸 둘과 아들이 있는데 미인이고 농구를 즐긴다. 우리 선수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팝송을 같이 부르고 칵테일을 마시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농구대에서 슈팅 게임도 한다. 필리핀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신동파 선배가 기관지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가족이 매일 병문안 와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스포츠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필리핀을 두 번 방문하여 농구 경기를 가졌다. 전매청팀에 있을 때와 해병대 시절이다. 매번 자기 집으로 초대했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유희형은 송도고 졸업후 대학 진학 대신 전매청에 입단, 실업농구 시대를 보냈다. 전매청은 동남아 원정에 나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사진 : 본인 제공 


나를 좋아하는 또 한 분의 농구팬이 있었다. 중국계 50대 여자 사업가로 부유하게 사는 분이다. 운전기사를 통해 과일 광주리를 매일 아침, 내 방으로 보내주었다. 전매청 농구단 16명이 실컷 먹고 남을 정도의 각종 과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보내주었다. 만날 때마다 선물을 가져온다. 필리핀 고유 의상이나 고급 티셔츠 등이다. 경기가 있으면 체육관에 직접 와서 열렬히 응원하던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한번은 마닐라에서 내 생일을 맞이한 적이 있는데, 날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날 나는 선물을 듬뿍 받았다. 투숙호텔의 식당 종업원, 쇼핑가게 주인, 엘리베이터 안내자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조그마한 선물을 주는 것이다. 비싸지 않은 손수건이나 액세서리였지만, 마음이 담겨있는 소중한 것이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 한국은 예선에서 이란, 필리핀, 홍콩을 물리치고 결승리그에 올랐다. 당시 아시아 강호로 군림했던 필리핀과 대결이 고비였는데 결국 2점 차로 간신히 이겼다.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8번이 유희형이다. / 사진 : 본인 제공 

 

부러운 필리핀의 농구사랑


필리핀인들은 도박을 좋아한다. 대형 체육관에서 열리는 닭싸움 대회를 TV로 중계하고, 관중과 시청자는 신중하게 쌈닭을 골라 돈을 건다. 농구 경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승부에 주로 베팅하지만, 엉뚱한 것에도 내기를 건다. 예를 들면 필리핀 농구선수 중, 수비를 잘하는 오캄포 라는 선수가 있는데 신동파와 대결하는 것에 베팅한다. 신동파가 20점 이상 넣느냐, 못 넣느냐로 내기하는 것이다. 신동파 쪽을 택한 사람은 한국 팀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1976년 전매청 농구단이 필리핀농구협회 초청을 받았다. 마닐라에서 3경기, 민다나오 다바오시에서 2게임을 했다. 매 경기 30점 이상을 내가 득점했다. 스포츠지에 ‘차세대 스타’라고 극찬했다. 마닐라에서 경기를 마치고 비행기 편으로 민다나오섬의 다바오로 향했다. 마닐라로부터 700km 떨어진 2000만 명 인구의 필리핀 최대 섬이다. 정부군과 민다나오 지배 세력인 기독교와 이슬람 반군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동안 15만 명 이상 사망했다고 한다. 전 대통령 두테르테가 20년간 시장으로 재직했던 곳이다. 해안가에 있는데 경치가 수려하고 농구를 무척 좋아하는 도시였다. 그곳에서 두 경기를 했다. 꽉 들어찬 관중인데 상대 팀인 우리가 득점해도 함께 박수를 보낸다. 두 경기 모두 이겼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연장전을 두 번 했다.

 

기이한 장면도 있었다. 연장전에서 자유투 여섯 번을 얻은 선수가 있었다. 모두 실패했다. 그 선수 덕에 우리가 이겼다. 상식적으로 야유와 질타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박수치며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생각났다. 요코하마에서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경기를 가졌다. 멕시코와 시합에서 14점까지 앞서다가 1점 차로 역전패했다. 문현장 선수가 마지막 30초와 8초를 남기고 얻은 자유투 4개를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정오에 열려 많은 국민이 라디오 생중계를 청취했다. 일부 흥분한 주민이 문 선수의 집에 돌을 던졌다는 기사를 봤다. 야속했다. 자유투를 실패한 본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손뼉 치며 관중석을 떠나는 필리핀의 농구 사랑이 부러웠다. 필리핀 사람들의 국경을 초월한 스포츠사랑은 너무나 순수하고 열성적이다. 그들의 농구 사랑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참 부러운 일이다.

 

유희형 / 전 KBL 심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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