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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 근우 어른이가 생각하는 어린이 날

--정근우 야구

by econo0706 2022. 9. 1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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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5. 03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이 날을 머리에서 떠올리면 그라운드에서 모자를 거꾸로 쓰고, 세발자전거로 달리는 선수들이나, 함께 이인삼각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이날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지만, 어린이날은, 리그 사무국과 구단, 그리고 선수들이 어린이팬 뿐만이 아닌 모든 팬들에 대한 마음을 점검 받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점검이라는 말이 너무 딱딱하다면, '다짐'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단어 하나가 중요한것은 아닐거다.

 

어린이팬을 대하는 것이 모든 팬을 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팬들은 누군가를 사심없이 좋아하고, 응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던 때를 생각해본다면, 소년의 마음, 소녀의 마음을 갖고 있던 때다. 그래서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대상일지언정, 순수한 성원을 해주는 모든 팬들에 대한 자세를 다시 한 번 곱씹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거다.

 

이익도 되지 않는 일. 그런 일에 팬들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도 내준다. 가끔씩 화제가 되는 어린 팬들의 낙담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순수한 열정이 향하는 야구라는 종목과 그 종목이 벌어지는 야구장, 그 안에서 뛰는 선수들은 그래서 이 날 만은 그저 '승리' 보다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전달하려 노력해야만 한다.

▲ 2015년 5월 5일 만루홈런을 친 정근우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선수시절, 그라운드는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아주 가끔, 성적이 좋지 않을때면, 팬들이 들이미는 사인 요구가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사인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가끔 떠올라 부끄럽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은퇴를 하고 나서, 조금이나마 골프를 친다고 필드에 나가면서 알게 됐다. 승부에 대한 부담없이 나가는 필드는 정말 즐거웠기 때문이다. 같은 잔디인데, 야구장의 잔디는 승부와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고, 골프장의 필드는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야구팬들에게 야구장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 곳에서 동경해 마지않는 선수들을 보고, 사인을 받고, 어린이날 같은 행사때는 그라운드도 밟아본다. 그 추억은 어린이 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는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확정지어서 단언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반대의 경우 때문이다.

 

은퇴  후 다양한 경험을 가진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됐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 분들이 어릴적 '어느 선수가 사인 안해줘서 서운했다'는 얘기를 할 때가 있는데, 수십년전의 일인데도 또렷이 그 순간을 얘기한다. 그래서 어린이팬의 사인은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고서는 거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열성팬을 얻으려면?

 

우리는 보통 신생구단의 열성팬에 대한 얘기를 한다. 신생구단이 성적이 좋아도, 그 팀이 기존의 팀들만큼 관중이 들어오고 인기가 있으려면, 어린이 팬들이 커서, 스스로 야구장에 오고, 야구장에서 스스로 번 돈으로 소비를 할 수 있을때, 그 구단의 관중은 기존 구단과 비슷해 진다고 생각한다.

 

수십년이 걸려야 하는 일이다.

 

그저 1년, 혹은 5년, 혹은 10년이 지나도 어린이 팬이 스스로 번 돈으로 야구장에 와서 소비를 할 시간이 되진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매일, 매달, 매년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으면, 수십 년 후에 후회해서는 늦어도 너무 늦게 된다.

 

얼마전 신시내티 레즈의 구단 최고운영책임자(COO) 필 카스텔라니가 "내 발언이 정말로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과를 했다

 

사과의 이유는 이렇다.

 

팀의 주축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잡지 않으면서,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카스텔라니 COO는 '신시내티를 응원하지 않으면 어느 팀을 응원할거냐'라는 말을했다. 그 말에는 '그래도 응원할거고, 야구장에 올거잖아?'라는 판에 박힌 생각이 담겨 있었다. 팬들은 더 큰 실망을 했고, 사과를 했지만, 신시내티의 홈구장은 확실히 관중이 줄었다.

 

말 한 마디가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생각 때문에 팬들은 실망을 하게 된거다.

 

사인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승부와 직업에만 몰두한다고, 팬들은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열성팬은 수십 년 전의 사인 한 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팬에게 잘 하는 것이 팀의 근간을 만드는 일이다.

 

▲ 김회성 전 선수와 윤준서 어린이. 윤준서 어린이의 눈물이 화제가 됐던 2019년 어린이날 시구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근우 어린이의 책임감

 

키 때문이겠지만, 어린이날 근처가 되면, 유독 '근우 어린이'라는 별명이 자주 귀에 들렸다. 그래서 묘한 책임감도 느꼈다. 그래봤자,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자고 선수단에 얘기하는 것이 전부이긴 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바뀌게 됐다.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으면, '홈런' 쳐달라는 얘기를 했다.

 

운좋게 만루 홈런 2번을 쳤고, 아이들의 동심을 보듬어 준 것만 같아서 아빠로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자식을 키워 본 분들은 안다. 내 아이만 생각하게 되진 않는다.

 

야구장에 오는 아이들의 동심을 보호해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부풀어 꿈이 되게 하는 것은 야구에 몸 담고 있는 어른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산업을 떠나, '야구'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린이 날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다.

 

정근우 / 전 프로야구 선수, 현 최강야구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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