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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총애보다는 존경받는 신하라야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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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통치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온갖 욕심으로 뒤얽힌 인간들, 물욕(物慾)에 성욕(性慾)에 휩싸여 바르고 깨끗한 일보다는 더럽고 추악한 일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이 바르고 옳은 질서 아래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보다 이런 문제에 고뇌어린 연구를 계속했던 다산은 상당히 명쾌한 방법 하나를 제시했습니다. 최고통치자와 그 통치자를 돕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느냐에 포커스를 맞춰서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이 공경스럽게 여겨주는 사람이어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事君之法 要爲君所敬 不要爲君所愛)(『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명제를 내걸고, 존경을 받는 경우와 총애를 받는 경우를 일일이 나열했습니다.
 
조석으로 아양 떨며 모셔주는 사람도 임금이 존경하지 않고, 얼굴빛으로 심기를 알아내어 비위에 맞는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임금이 존경하지 않고, 용모나 거동에 품위가 없이 글만 잘하고 글씨만 잘쓰는 사람도 임금은 공경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산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들이 끝내는 모두가 패가망신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병들게 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정조 시대의 번암 채제공 같은 정승이나, 이승만 정권의 김병노 대법원장 같은 분들은 임금이나 대통령의 존경을 받았기에 그래도 자기 직분을 다했음은 물론 국가에도 매우 유익한 역할을 했었지 않았던가요.
 
조정에 임금의 사랑이나 받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가득찬 정권과, 임금이 다소 두렵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가득할 때와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임금이 자기와 일하는 신하를 존경한다면 어떤 국민이 그를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역사가 있는 이래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를 백성들이 존경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조정(朝廷)에 임금이 존경할만한 신하는 없고, 그래서 백성들이 존경할만한 고관대작이 없는데 나라 정치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다산이 원했던 그런 임금과 신하의 사이가 오늘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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