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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벼슬살이 머슴살이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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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높은 벼슬살이, 얼마나 명예롭고 보람 있으며 생의 환희인가요. 벼슬은 높을수록 좋고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집안과 가문은 물론 태어난 고을까지 명예로워집니다.
 
그래서 서로가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원하고, 거기서 또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인간이 하던 일이 아니었던가요. 예전에는 관존민비라고해서 벼슬하는 사람은 높고 일반 백성은 낮다는 세상이어서 더욱 벼슬을 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요즘이라고 벼슬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요. 장관이라는 벼슬, 옛날의 판서급이니 참으로 높은 벼슬입니다. 참판만 되어도 그 성씨조차 ‘파벽(破僻)’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장관인 판서야 오죽 높은 벼슬입니까. 그런 높은 자리인 장관의 지위에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고, 올라있는 자리에서 그만 내려가고 싶은 사람은 또 몇이나 있을까요.
 
다산의 『목민심서』는 48권으로 된 방대한 책입니다. 판서격인 장관의 지위에는 이르지 못해도,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쥔 고을의 제후(諸侯)와 같다는 수령(守令:목사·군수·현감 등)이라는 벼슬을 제대로 하는 방법과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세세한 설명을 해놓은 책입니다. 임지로 ‘부임(赴任)’하는 데서 그만두고 물러나는 ‘해관(解官)’에 이르는 12편으로 구성되고, 각 편에 6개 조항으로 나누어 모두 72조항으로 짜여있습니다. 12편 72조항 어느 것인들 정확하고 치밀하며 놀랍고 경탄스럽지 않은 곳이 없지만 모두가 그렇게도 원하는 벼슬을 그만둘 때의 모범적인 행동과 태도를 기술한 ‘해관’편의 6조항이야말로 참으로 기막힌 대목이 너무나 많습니다.
 
‘해관’편은 시작한 벼슬은 언젠가는 그만두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말부터 시작합니다. “벼슬은 반드시 교체하게 되어있고, 교체될 때 놀라지 않고, 그만두고도 연연해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한다.” 이 한 대목에 다산의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종신직이던 세습제의 임금도 언젠가는 그만두고 마는데, 황차 남이 시켜주는 벼슬을 어떻게 영원토록 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다산은 미미한 수령직도 20가지도 훨씬 넘는 이유로 벼슬은 바뀌게 되어있다고 하면서, “관직이란 과연 믿을 수 있는 일인가. 속담에 ‘벼슬살이 머슴살이(官員生活 雇工生活)’라는 말이 있다. 주인이 그만두라면 언제라도 그만두는 것이 머슴살이이듯, 벼슬살이도 그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옛날의 어진 수령은 집무실을 여관으로 여겨 마치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공문서 장부를 깨끗이 해두고 짐을 꾸려두어 언제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가 훌쩍 떠나갈 듯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처음부터 마음에 남겨두지 않는다. 그만두라는 공문이 이르면 즉시 떠나며 활달한 마음가짐으로 미련을 갖지 않았으니 이런 것이 맑은 선비의 행실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벼슬에 연연하다가 끝내는 그만두고 떠날 때에 추태를 부리는 부끄러운 선비모습도 상상하게 해줍니다.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옛사람들의 뜻이었다. 그만두고 나서 슬퍼한다면 또한 수치스럽지 않은가.” 얼마나 옳은 말입니까. 한번 오른 고위직 벼슬, 그걸 놓지 않으려고 온 나라 국민들의 비난을 무릅쓰고도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맑은 선비가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어떤 장관의 문제로 세상이 요동쳤습니다. 애초부터 불길했습니다. 안된다는 사람이 많을 때, “내가 장관의 적격자다”라는 보도를 보면서 ‘안할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여겼습니다. “절대로 사퇴하지는 않겠다”라는 말도 상서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가면서 문제는 더 확대되고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머슴처럼 주인이 그만두라면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벼슬이 아닌가요.
 
『목민심서』에는 좋은 말이 참 많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남들이 낮게 여기고,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남들이 높혀준다”(自上者人下之 自下者人上之)라고 했는데 이런 글을 전에 읽어두었다면 그 좋은 벼슬 때문에 당하는 비난이야 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시켜주지 않으면 못하는 벼슬, 하루를 해도 장관은 장관이니 애초에 헌신짝처럼 버렸다면 맑은 선비로서의 명예는 살아있을 터인데, 이것저것 다 잃고 끝내 그만두어야 하는 벼슬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놓으면 놓을수록 커지는 명예, 붙들면 붙들수록 추해지는 벼슬, 그래서 다산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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