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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더울 땐…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6. 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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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한미FTA추가협상도 시작된다고 한다. 데모도 계속된다고 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들 간의 싸움도 계속된다고 한다. 소위 여당 후보들 간의 이합집산도 계속된다고 한다.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도 계속된다고 한다. 국민들의 짜증도 계속된다고 한다.
 
에이, 머리에 물 한 바가지 퍼붓고 TV나 봐야겠다.
 
캐스터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C 스포츠의 이종화 아나운서입니다. 여기는 제15회 골드컵 세계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열릴 예정인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입니다. 1년 내내, 아니 예선전을 포함해 4년 내내 지구촌을 들끓게 했던 골드컵의 주인은 이제 브라질과 칠레의 한 판으로 결정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 이 경기를 중계방송하고 있는 각국의 축구전문가들에게 이 경기의 예상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화면 1 : (영국, 루니) 브라질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강팀 아니겠습니다. 저는 브라질이 이기리라고 봅니다.
 
화면 2 : (독일, 칸) 현대 축구는 브라질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이길 겁니다.

화면 3 : (프랑스, 지단) 우리 유럽의 강팀들을 모두 예선 탈락시킨 브라질이 역시 강팀입니다.

화면 4 : (네덜란드, 히딩크) 축구는 해봐야 아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브라질이 좀 더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캐스터 : 예, 전문가들 역시 브라질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이크와 화면을 양 팀 벤치에 나가있는 리포터들에게 넘겨 각 팀 감독의 각오를 들어볼까요? 먼저 브라질 벤치에 있는 박지송 리포터를 불러봅니다.
 
리포터 1 : 예, 브라질 벤치에 와 있는 박지송입니다. 지금 브라질 선수들은 아주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군요. 브라질의 호두나우두 감독을 만나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어떤 작전으로 게임이 임할 예정이신지요.
 
감독 1 : 아, 예. 우리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팀입니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할 것입니다. 넣고 넣고 또 넣고가 우리 팀의 작전입니다.
 
리포터 1 : 브라질 특유의 공격축구를 하겠다는 호두나우드 감독의 각오이군요. 그렇다면 몇 골 정도나 넣을 것으로 보십니까?
 
감독 1 : 골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넣고 넣고 또 넣을 것입니다.
 
리포터 1 : 예, 좋은 경기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칠레 벤치에 가있는 안종환 리포터에게 넘기겠습니다.
 
리포터 2 : 스포츠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칠레팀 벤치에 나와 있습니다. 칠레팀 선수들도 브라질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 10년 동안 FIFA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브라질을 맞아 전혀 주눅 든 표정을 짓지 않는 칠레 선수들이 좀 의아스럽기까지 합니다. 칠레의 칠리칠리 감독을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감독 2 : 각오야 물론 이기는 것이지요. 다만 우리는 이 게임을 아주 재미있게 즐기면서 이기려고 합니다.
 
리포터 2 : 세계 최강의 브라질을 맞아 게임을 즐기면서 한다고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감독 2 : 예. 우리는 좀 독특한 전법을 쓸 것입니다. FTA 전법이라고….
 
리포터 2 : FTA 전법이요? 처음 듣는 것인데….
 
감독 2 : 예, 아마 처음 들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에만 오면 질 수가 없는 전법이 있습니다. 오늘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리포터 2 : 예, 기대해 보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칠레의 칠리칠리 감독은 FTA 전법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브라질을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역시 눈으로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 우리 모두 채널을 고정하고 경기를 즐기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종화 아나운서 나와 주십시오.
 
캐스터 : 예, 다시 중계석의 이종화입니다. 박지송, 안종환 두 리포터가 양 팀 감독을 만나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를 들어봤습니다. 이제 경기가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오늘 해설은 신무선 해설위원이 맡고 있습니다.
 
해설자 : 예, 오늘과 같은 큰 경기의 해설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캐스터 : 신 위원님은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보시는지?
 
해설자 : 예, 각국의 전문가들은 브라질이 유리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저는 반대로 칠레가 유리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캐스터 : (놀란다) 예? 브라질이 아니라 칠레가 유리하다고요?
 
해설자 : 예, 사실 저도 조금 전 칠레 감독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브라질이 상당히 큰 점수 차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칠레의 칠리칠리 감독이 FTA 전법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칠레가 훨씬 유리합니다.
 
캐스터 : 그게 그렇게 무서운 전법인가요? 전 사실 오늘 처음 들어봐서… FTA 전법, 그게 어떤 전법인가요?
 
해설자 : 한 마디로 설명하면 우리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아니 우리나라 전체가 칠레의 홈그라운드와 같아지는 전법이지요. 아까 칠리칠리 감독이 대한민국에서는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전법이라고 얘기한 게 바로 그겁니다.
 
캐스터 :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막 시작됐습니다. 브라질의 선축입니다. 호두나우딩요 볼을 찼습니다. 아 그런데 공이 엉뚱하게 칠레 선수에게로 가는군요. 평소의 호두나우딩요 같지 않은 실수. 칠레 선수 공 잡아 슛!
 
장면 1 : 브라질의 골대에 공이 들어가는 장면.
 
해설자 : 골, 골, 골이예요.
 
캐스터 : 전반전 시작하자마자 골을 넣는 칠레. 1 대 0으로 앞서 가기 시작했습니다.
 
장면 2 : 또 브라질의 골대에 공이 들어가는 장면.
 
해설자 : (목소리만) 골이에요. 골.
 
캐스터 : (목소리만) 전반 23분 칠레의 골. 2 대 0.
 
장면 3 : 또 다시 브라질의 골대에 공이 들어가는 장면.
 
해설자 : (목소리만) 골~~~~~~.
 
캐스터 : (목소리만) 전반 37분 또 다시 칠레의 골. 3 대 0이군요.
 
장면 4 : 주심이 휘슬을 분다.
 
캐스터 : 칠레가 브라질을 3 대 0으로 리드한 상태에서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정말 예상외입니다. 신무선 위원님 어떻게 이런 일이?
 
해설자 : (입만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캐스터 : 신 위원. 해설 해~ 어~서.
 
해설자 : 아, 예. 저도 칠레가 유리하다는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FTA, FTA… 정말 대단합니다.
 
캐스터 : 잠시 전하는 말씀 듣고 후반전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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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 이제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라질 선수들 왠지 지쳐 보입니다. 
 
해설자 : 그럴 겁니다. 브라질의 호두나우드 감독도 이제 그 원인을 찾았을 테니까요.
 
장면 5 : 환호하는 칠레 선수들.
 
캐스터 : (목소리만) 4 대 0
 
장면 6 : 골 대 앞에 꿇어앉은 브라질 골키퍼.
 
캐스터 : (목소리만) 5 대 0
 
장면 7 : 주심 휘슬.
 
캐스터 : 예, 이제 경기가 다 끝났습니다. 칠레가 브라질을 5 대 0으로 꺾고 골드컵의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강인 브라질이 칠레 앞에서 저렇게 맥없이 무너진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무선 위원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거죠?
 
해설자 : 저는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칠레 선수들은 지금 자기 홈경기를 마치고 나온 듯이 보이지 않습니까? FTA의 힘이었어요.   
 
캐스터 : 하여간 비밀은 이제 밝혀지겠지요. 양 팀 감독의 기자회견장으로 마이크를 옮기겠습니다.
 
리포터 2 : 예, 기자회견장의 안종환입니다. 칠리칠리 감독님. 아까 예상대로 이기셨는데, FTA 전법이 무엇이었는지요?
 
감독 2 : 예, 그건 저보다 브라질의 호두나우드 감독님이 잘 아실 겁니다.
 
리포터 2 : 그럼 호두나우드 감독님. 패인이 무엇인지요?
 
감독 1 : 이번 경기는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경기를 했다면 칠레가 우리에게 상대가 안됐을 텐데…
 
감독 2 :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는 질 수가 없습니다.
 
감독 1 : 예, 우선 축구화나 공에서부터 칠레는 우리를 이기고 들어왔습니다. 이번 대회의 공인구인 아리랑볼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감히 만져볼 수도 없는 공이었습니다. 너무 비싸서요. 하지만 칠레 선수들은 아이매치의 슛돌이팀 선수들도 아리랑볼로 경기를 합니다. 그러니 볼 컨트롤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리포터 1 :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요? 브라질에선 비싸서 못 만져보는 공을 칠레에서는 어린아이들도 가지고 경기를 한다니…
 
감독 2 : 자유무역 때문이지요. 우리 칠레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에는 관세가 붙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격이 쌀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물건도 한국에서는 관세가 없기 때문에 우리 물건들도 한국에서 찾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한국에 와서 경기를 할 때는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음식도 찾기 쉽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건도 자주 만날 수 있으니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지요. 아까 우리를 경기장까지 태워 온 버스도 한국자동차 회사의 칠레공장에서 생산한 것이더군요. 아마 한국 대표팀이 우리나라에 와서 경기 할 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축구경기장의 스코어보드나 대형 텔레비전도 모두 한국제품이니까요.
 
리포터 1 : 아, 예. 저도 현역선수일 때 칠레에서 경기를 해봤는데, 칠레선수들 유니폼이나 축구화 등도 모두 우리나라 제품이더군요.
 
감독 2 : 그렇습니다. 우리 칠레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한국 스포츠용품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으니 경기력이 더욱 향상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브라질처럼 한국제품에 관세가 붙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감독 1 : 그렇습니다. 우리는 경기에서 진 것이 아니라 무역정책에서 진 것입니다. 우리도 빨리 대한민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의 우수한 제품들을 싼 값에 살 수 있고, 그것이 우리 브라질의 축구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리포터 1·2 : (머리를 끄덕인다) 음… 세계축구의 현장, 아니 무역 세계화의 현장에서 박지송, 안종환이었습니다.
 
음~ 덥긴 덥구나…
 
저 밖에서 소리치고 있는 친구들은 얼마나 더울까…
 

2007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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