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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실리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7. 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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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회장단 경제교육 프로그램 중 일간신문을 이용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보는 시간이 있다.
 
어린이들은 신문을 펼쳐 나름대로의 구분으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느라 고심하고, 같은 모둠의 친구들끼리 논쟁도 벌이곤 한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각 모둠별로 발표를 시키면 다양한 단어들이 나온다. ‘어린이는 어른의 표본’이라는 말처럼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금 이 나라의 어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어린이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은 ‘서울’이나 ‘대한민국’을 돈으로 살 수 있는지, ‘연예인’을 돈으로 살 수 있는지, 또 ‘문화재’를 돈으로 살 수 있는지 등으로 이것들이 토론의 주대상(主對象)이 된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서는 ‘민심(民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우기는 어린이들이 나오기도 하고, ‘결혼(結婚)’이나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어린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발표와 토론이 끝나고 나면, 해설을 겸해 한 마디를 해 준다.
 
“어린이 여러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찾아보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우리 생각에 돈만 많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보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안 드나요?”
 
이러고 나서 돈으로 살 수 있으려면 세 가지가 만족돼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첫째, 가격을 매길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소유자가 있어야 하고, 셋째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아야 된다는 설명을 해준다. 
  
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역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재화(財貨)라고 하고, 눈으로 볼 수 없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용역(用役) 즉, 서비스(service)라고 한다고 설명해 준다.
 
그리고 용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비스는 ‘사용이 가능한 능력(能力)’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가수의 노래 실력’이라든가, ‘축구선수의 축구실력’ 등이 사고 팔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로 우리가 흔히 ‘박지성이 맨U로 팔려갔다’는 표현은 박지성이라는 사람이 팔려간 것이 아니라 박지성의 축구실력이 매매(賣買)되었다고 설명해 준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수긍을 한다. 그러나 결혼이나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베트남 처녀…’등의 문제를 들고 나와 끝까지 우기는 어린이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 대답할 수 있는 말이란 “결혼이나 사랑에 이르는 과정까지는 돈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 모르나 결혼이나 사랑 그 자체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설명을 한다. 또 ‘민심’이나 ‘대통령’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어린이들에게는 “너희들이 ‘어린이 회장’에 당선될 때 돈을 주고 학생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던가를 생각해 봐라”면서 이해를 시켜본다.
 
그런데 대통령은 대학총장들을 모아놓고 말을 잘 들으면 지원금을 줄 것이고 말을 안 들으면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단다. 신문에는 ‘소신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총장’ 운운의 헤드라인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통장들의 소신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만약 어린이들이 ‘대학의 발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쪽에다 오려 붙여 놓고, 나 보고 설명해 달라고 하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다행히 각 대학 평교수들을 중심으로 소신으로 가자는 말과 함께 성명서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들도 들리고 있다. 아마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도 돈으로 대학총장들의 소신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소신과 실리… 누구의 소신이 누구의 실리를 이기는지를…
 
이제 7월 5일이면 전반기 어린이회장단 교육은 끝이 난다. 그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직은 대학의 발전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우기는 어린이는 없었으니까.
 

2007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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