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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7. 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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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김민기는 이렇게 노래했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조그마한 연못엔 … 먼 옛날 그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17세기 초반 조선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승지가 읽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임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적들이 답답하다는구나.
이조판서 최명길이 헛기침으로 목청을 쓸어내렸다. 최명길의 어조는 차분했다.
-전하, 적의 문서가 비록 부도하나 신들이 성 밖으로 청하고 있으니 아마도 화친할 뜻이 있을 것이옵니다. … 글을 닦아서 응답할 일은 아니로되 신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말길을 트게 하소서.
예조판서 김상헌이 손바닥으로 마루를 내리쳤다. 김상헌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화친이라 함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논할 수 있는 것이 온데, 지금 적들이 대병을 몰아 이처럼 깊이 들어왔으니 화친은 가당치 않사옵니다. … 적의 문서를 군병들 잎에서 불살라 보여서 싸우고 지키려는 뜻을 밝히소서.


최명길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입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을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사옵니다. …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김훈 『남한산성』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는 검증 문제와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대신 "경제 살리겠다는 사람에게 더 잘할 수 있다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뒷다리 걸고 앞다리 걸고 난리다"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경선 후보는 "경선 검증의 목적은 본선에서 필승하자는 것"이라며 "(검증이) 잘못되면 정권교체에 실패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7월 3일자 중앙일보

 

2007년 4월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의 ‘하는 말’을 통해 이렇게 쓰고 있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김민기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2007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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