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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세상은 술을 권하는데!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7. 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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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꼼꼼하고 빈틈없던 선비이던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정말로 '꼰대' 아버지였음이 분명합니다. 큰 아들보다 작은 아들의 주량이 배가 넘는다는 말을 듣고 작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그런 면모를 여실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 글공부에는 그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아비를 훨씬 넘어서는 거냐? 이거야말로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라고 걱정을 늘어놓으며 술을 마시는 법도에 대하여 세세한 조목을 열거하였습니다. “술맛이란 정말로 입술을 적시는데 있다. 소가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데 있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골아 떨어져 버린다면 술 마시는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독(酒毒)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술을 적게 마시게 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야 알만 하지만, 세상은 술을 마시게 하는데 살짝 취하게만 마셔야 한다는 아버지의 훈계는 그 아들에게는 얼마나 짜증스러운 이야기일까요.
 
유배지에서 혹독한 가뭄이 들었는데 탐관오리들의 착취행위는 극에 달해, 백성들 중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분노에 찬 다산은 옛날의 친구로 고관대작이 된 벼슬아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짱한 기분으로는 말도 꺼내고 싶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취한 김에 해준다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구제에 고관들이 힘쓰라는 간절한 편지를 썼던 때도 있습니다.
 
사나이가 술을 통해 근심도 잊고 회포도 풀고 용기도 낼 수 있는 것인데, 입술만 적시고 말라는 당부는 약간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이란 마시고 진짜 취해야 맛인데, 얌전한 서생이 되는 데는 족하지만 큰 일 할 대장부의 일로는 조금 그렇습니다. 세상은 술을 권하고 있는데, 입술만 적시기는 그렇잖은가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산의 뜻은 이해되기도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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