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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원덕(原德)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7. 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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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동양의 중세는 성리학의 체계로 논리화된 주자학(朱子學)이라는 관념의 세계에서 훌훌 벗어나기는 어려운 시대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주자학의 관념의 세계를 실사구시적 실학의 체계로 변환시키려던 노력을 기울인 실학자들의 시대나 다산 정약용의 시대를 바로 근대적인 세계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몇몇 실학자들의 고군분투 속에 체계화된 반성리학적 논리가 보편화 될 수 없을 만큼, 교조주의적 주자학의 세계는 너무나 강고했고 그 세력은 무척 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산을 비롯한 실학자들에 의해서 근대의 여명이 열렸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의 발전이나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성리학 체계의 주자학에만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주자학의 맹점을 지적하고, 또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 대안으로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다른 해석을 종합적으로 시도하면서, 그래야 새 역사가 창조되고 국리민복의 새 사회가 이룩된다는 확신을 가졌던 분이 바로 다산이라는 학자였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짤막한 다산의 논문 「원덕」이라는 글에서 곧 바로 그런 사실을 명확히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명(命)과 도(道) 때문에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자기와 남이 있기 때문에 행(行)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그 성과 행 때문에 덕(德)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만 가지고는 덕이 될 수 없다…”(因命與道 有性之名 因己與人 有行之名 因性與行 有德之名 徒性不能爲德也…)(「原德」)

 

유학의 중심적인 명제(命題)들인 명(命)·도(道)·성(性)·덕(德) 등에 대하여 주자의 관념적이고 이론위주의 해석에서, 행(行)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여 행위와 실천이 더해진 경험적인 세계만이 올바른 철학이고 삶의 원리임을 간파한 혁명적인 논리가 바로 다산으로부터 창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선설(性善說)에 기초를 두고 착한 본래의 성품에 토대하여 행동으로 옮김, 곧 性+行=德 이라는 그 논리가 바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꼭지를 틀어 준 실학사상의 모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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