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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 나를 단련시켜준 '트래시 토크'

--이현중 농구

by econo0706 2022. 9. 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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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24

 

데이빗슨 대학에서 처음으로 보내는 봄 시즌입니다. 캠퍼스의 봄은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즐기고 있죠.

돌이켜 보면 데이빗슨 대학에서의 3년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첫 시즌이 그랬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이었으니까요.

원정 경기를 가기 위해 전용기에 처음 탔을 때가 대표적이겠네요.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면서 놀라워했죠. 갑자기 프로선수라도 된 느낌이랄까요? 

반면 2~4학년들은 익숙하다 보니 짐 챙기기에 바쁘죠. 저도 3학년이 되고 나니까 똑같아졌어요. 1학년들이 저처럼 휴대폰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며 재밌어했죠. 비행기를 타는 것만큼이나 원정 경기도 느낌이 남달랐죠. 상대팀 팬들이 최대한 경기를 방해하려고 야유를 보내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한 것들이 정말 큰 경험이 됐습니다.

특히 데이튼 대학 원정경기는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힘들답니다. 그 큰 체육관에 관중이 꽉 차는데, 함성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코트에서 우리끼리 나누는 대화가 아예 안 들려 당황하기도 했어요. 당시 데이튼 대학은 오비 토핀(뉴욕 닉스)이 있었고, 전미 4위의 강팀이었기에 홈팬들 함성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 No.1, Only One 이현중 선수 / 사진 = Gettyimages Korea

 

하나의 장점을 위해

 

대학에서 저는 등번호 1번을 사용했어요. 원래는 클레이 탐슨의 11번을 달고 싶었는데 학교 영구결번이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탐슨이 워싱턴 주립대학 시절에 1번이었더라고요.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한국에 있을 때 지인들이 저에게 11번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한 적이 있어요. 빼빼 말라서 젓가락 두 개(11번)가 어울린다는 거죠. 여기 와서는 11번을 못 쓰니 ‘그렇다면 젓가락 1개’라는 느낌으로 사용한 것도 있어요. 또, 고등학교 1학년 때도 1번을 달아서 어색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첫 시즌을 치르면서 저는 실력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시즌은 제가 볼 핸들러 역할도 맡았지만 신입생 때는 아니었죠. 실력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 인정했어요. 제가 신뢰를 줬다면 동료들이 먼저 볼을 줬겠죠. 제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기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팀도 돕고, 저 개인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요. ‘왜 안 줘!’라고 하기에 앞서 저를 믿고 공을 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더 슈팅 훈련에 매진했던 것 같아요. NBA 아카데미와 대학 첫해를 다니면서 느낀 게 있어요. 한가지라도 정말 잘해야겠다는 거예요.

 

오비 토핀은 우리 A-10 컨퍼런스에서는 정말 엄청난 선수였어요. 당시 토핀은 우리 팀 루카(브라이코비치)와 매치업을 했는데, 사이즈는 좋지만 NBA에서 뛰기에는 몸이 그리 단단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NBA에서는 메인 선수는 못 됐잖아요. 오히려 던컨 로빈슨(마이애미 히트)이나 마티스 타이불(필라델피아 76ERS)처럼 딱 이름을 대면 하나가 떠오를 수 있는 그런 특화된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정복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죠. 아카데미에서도 그랬어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점프력이 대단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점프가 좋다 한들 경기 뛰면서 하는 게 없는 선수들도 많았죠.

 

사실, 이런 굳은(?) 결심과 달리 첫 경기는 처참했어요.

 

코너에서 3점슛을 던졌는데 블록 당해서 공이 관중석까지 날아가고 말았어요! 레이업도 저지당하고, 3점슛도 들어가겠다 싶었는데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날아갔죠. 자유투 2개 넣고 끝이었죠. 우울했어요.

 

아. 이게 대학 무대구나.

장난아니네.

 

1학년 시즌을 치르면서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았어요. 그저 매 경기 ‘오늘은 잘 해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죠. 단지, 12월에 A10 컨퍼런스 '이주의 신인(Rookie of the Week)' 상을 탔을 때는 마냥 신기했어요.

 

이런 상도 있구나.

내가 이런 상을 받았구나.

어 근데 나 몸이 안 좋았는데 어떻게 받은 거지?

 

그래도 그 상을 받고, 그 뒤 치른 로욜라 시카고와의 원정경기에서도 MVP가 되면서 자신감도 갖게 되고 책임감도 얻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에 더 집중할 수 있었죠.

 

▲ 이현중 선수의 'No.1' 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빛이 난다. / 사진 = Gettyimages Korea

 

너무나도 고마운 ‘게임데이’ 형과 유정분 할머님 

 

제가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게 된 계기가 또 있어요. 사실 1학년 시즌을 치를 때만 해도 한국 언론사에서 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어요. 잘 해도 기사가 없었고, 못 해도 기사가 없었죠. 그래서 크게 부담도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로욜라 시카고 전에서 태극기를 발견한 게 저를 바꿔놓았어요.  

 

한국인 2분이 태극기를 들고 와서 “대한민국 파이팅! 이현중 파이팅!”을 외치시더라고요. 제가 뛰는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는데요. 그때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게임데이(game day)’ 채널을 운영하시는 유한종 형은 제게 정말 고마운 분이세요. 현장에 못 오시더라도 꾸준히 하이라이트를 올려주셨어요.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 점차 조회수가 늘었는데 그런 관심이 제게는 자존감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 거 같아요.

 

아! 한국에서도 나를 지켜 봐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시는구나!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제가 시즌 중에 뇌진탕에 걸린 적이 있어요. 그 뒤 복귀전에서는 직접 데이빗슨 대학까지 오셨어요. 당시 부모님도 오셨는데, 같이 만나 뵙고 식사도 했죠. 형은 되게 바쁘신데 재밌는 삶을 사시는 것 같아요. 본업도 잘하시고, 스포츠도 보러 다니면서 즐기는 삶이 대단해 보여요. 부러울 때도 있죠. 무엇보다 너무 착하세요. 진짜 가족도 아닌데, 멀리 나왔다고 응원도 해주시고 힘을 북돋워 주시죠. 3학년 때는 애틀랜타에서 저를 픽업해 주신 뒤 재워주시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했어요.

▲ 호스트 패밀리 가정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사진 한 컷 / 사진 = 이현중 선수의 어머님이신 성정아님 제공

 

호스트 패밀리에게도 정말 감사해요. 데이빗슨 대학은 국제학생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서 호스트 패밀리를 운영해요. 저는 우연히 한국 할머님이 계셔서 그 분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할머니 성함은 유정분 님이세요. 할머니 가족은 저를 더 밝게 만들어주셨어요.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말수도 적고,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는 소심하게 조용히 있을 때가 많았죠.

 

그런데도 먼저 연락해주시고 챙겨주셨죠. 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늘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해주셨죠. 2019년 크리스마스 당시에는 휴식기여서 숙소에서 나가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호스트 패밀리에서 제가 쉴 방도 마련해주시면서 4일간 저를 챙겨주셨어요. 음식도 챙겨주시고요. 그런 할머니 가족들을 만난 덕분에 제 인간성, 사회성이 바뀐 것 같아요. 외로움도 잘 이겨냈고요.

 

비록 같이 있진 못해도, 어디서든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시즌을 치르면서 가끔 제 이름을 검색하곤 하거든요. 아, 많은 분들이 지켜봐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도 되고, 웅장해질 때도 있죠. 부모님은 물론이고 김효범 선생님, 강성우 박사님, 대성이 형, 준용이 형, 친구 준희, 규현, 규만 등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연락 주시고 응원을 보내주셨어요. 이 자리를 통해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힘나게(?) 하는 트래시토크

 

사실, 응원만 저를 힘나게 하는 건 아니랍니다. 트래시토크와 저에 대한 평가도 저를 더 힘나게 하는 것 같아요.

 

초반만 해도 저는 트래시토크 당하기 쉬운 상대였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더라고요. 삐쩍 마른 동양인에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그래서 조롱 섞인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인종차별 발언도 들어봤죠. 그럴 때면 ‘뭐지?’, ‘얘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지?’, ‘왜 나한테 그러지?’라며 화도 많이 냈어요. 어렸으니까요. 그래서 상대에게 똑같이 했어요. 슛 넣고 상대에게 ‘조용히 해’라고 말한다거나, ‘너 수비 진짜 못한다’ 같은 말 말이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하나하나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손해 같아요. 물론, 트래시토크는 필요해요. 다만 너무 감정적이기보다는 조용히 대응하는 게 낫죠. 또, 제게 트래시토크를 날린 선수에게는 먼저 농구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나를 귀찮게 하고 싶어서 애를 쓰는구나. 애쓴다! 귀엽네!

 

그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해나가는 거죠.

 

저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로 저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아요. 동기부여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 도전하는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이현중 선수의 가장 큰 힘이다. / 사진 = 이현중 선수 본인 제공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호주에 나간다고 했을 때는 ‘네가 뭐냐’는 말부터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죠.

 

미국 대학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오퍼 못 받을 거야’라는 말도 있었고요.

 

대학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랬죠.

 

처음에는 짜증도 났어요.

 

왜 자꾸 나한테 된다, 안 된다고 하지?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NBA 슈퍼스타들도 잘하는 날은 박수를 받다가도 부진하면 비판을 받잖아요. 욕도 먹고…. 욕을 안 먹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농구를 더 열심히, 잘하는 수밖에요.

 

단지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가족들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댓글을 하나하나 다 보시는 성격이거든요. 그런 글을 보고 상처를 받으실까 걱정이 되죠.

 

▲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가족'  / 사진 = 이현중 선수 어머님이신 성정아님 제공

 

다만 저는 저에 대한 그런 평가를 동기부여로 삼고자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잊지 못할 사랑의 불시착

 

저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인데, 제가 사는 집에는 4명이 각 방을 쓰고 있어요. 같은 팀의 샘 메넹가도 같이 살고 있죠. 기숙사 방은 매년 새로 배정하는데요. 1~2학년 때만 해도 2인 1실이라 개인 공간이 없어 많이 힘들었어요.

 

샘은 조용한 성격이에요. 농담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놀러 가는 건 또 좋아해요. 성격도 불같죠. 정작 경기에서는 희생을 굉장히 많이 하는 친구이기도 해요. 개인 기록보다는 리바운드와 에너지에 더 많이 신경을 씁니다. 개인적으로 그 떡 벌어진 어깨나 체격을 보면 브록 레스너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룸메이트는 아니지만, 팀에서 가장 장난을 자주 치는 친구로는 에보니 레니어와 넬슨 보치-이덤 등이 있어요.)

 

지금이야 챙겨주는 분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지만 1학년 때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학교 수업도 많고,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던 시기였죠.

 

그럴 때마다 제게 위안이 됐던 게 있는데 바로 넷플릭스였어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팬이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즐겨 본 덕분에 OST까지 찾아서 자주 들었어요. 지금까지도 듣고 있죠. OST를 듣다 보면 그때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추억도 같이 떠오르고 그렇더라고요.

 

그때는 외롭고 힘들어서 그랬나? 고달픈 노래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SG 워너비의 ‘살다가’ 같은 곡들이요.

 

아참, 발라드 곡을 듣는 건 제 게임 루틴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갈 때면 항상 발라드 곡을 먼저 들었어요. 긴장하거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가면 힙합을 틀었어요. 자체적으로 분위기와 리듬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거든요. (저는 Polo G, Juice WRLD, Lil Baby, Roddy Rich 등을 좋아한답니다!)

 

노래를 듣는 것 외에도 제 게임 루틴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바뀌어 온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게임 루틴을 만들게 된 계기와 못다 쓴 첫 시즌 이야기를 마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코로나19 조심하세요!

 

이현중 / 미 데이빗슨대 농구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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