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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 3점슛만큼 짜릿했던 '1030점'의 기억

--이현중 농구

by econo0706 2022. 9. 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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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24.

 

미시건 주립대와의 토너먼트 경기를 끝내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경기였어요. 실은 경기가 끝났을 때만 해도 울컥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라커룸에 들어갔을 때 동료 선수들이 실망한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이 팀으로는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무엇보다 1점차 밖에 안 나니까 아쉬움이 더 커졌죠.

마침 현장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오셨어요. 밥 맥킬롭 감독님께서 경기가 끝난 뒤 부모님과 같이 있고 싶은 선수들은 그래도 된다고 해서 저는 학교 버스를 타지 않고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는 안 다치고 뛴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해주셨어요. 아쉬움도 많겠지만 다음 스텝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고요. 학교에 돌아와서는 동료들과 함께 가볍게 뒤풀이 시간을 가졌어요. 다들 워낙 쿨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재밌게 놀았죠. 다만 제가 뛴 경기나 NCAA 경기는 당장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몇몇 선수들은 지금 진행되던 토너먼트 경기를 보며 즐기던데, 저는 보면 화나서 잠이 안 올 거 같아 휴대폰만 보고 있었답니다. 

포스터 로이어 선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지만, 저는 제게 패스가 안 와서 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로이어는 좋은 동료이고 좋은 리더입니다. 모두 자신만의 농구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어떤 농구를 하든 서로 소통을 많이 해서 손발을 맞췄어야 하는데 팀 전체적으로 부족해서 안 된 것 같아요. 워낙 좋은 리더이고,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선수라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습니다. 

시즌 일정을 마친 저는 이제 ‘대학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물론 앞으로 펼쳐질 도전도 준비해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경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토너먼트 전에 중간고사는 끝났고 이제 기말고사가 5월에 찾아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캠퍼스 생활이 처음이에요. 1~2학년 때는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을 못 했거든요. 1학년은 코로나19가 갑자기 터지면서 모든 게 중단됐고, 2학년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느라 일찍 귀국했어요. 그러니 진짜 대학생으로 학기를 제대로 마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동시에 개인 훈련도 하고 있고요.

시간을 정리하다 보니 데이빗슨 대학에서의 여정이 많이 떠올랐어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이거든요.

이번에도 제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글 잘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NCAA 토너먼트 대회에서 미시건 주립대를 상대하는 이현중 선수의 슛장면  / 사진 = Gettyimages Korea 

 

막막했던 SAT 시험 통과하던 날

데이빗슨 대학을 입학하는 과정에는 단순히 농구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SAT 시험을 통과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처음에 저는 SAT 시험이 뭔지도 몰랐어요. 한 학년 위 선수들이 SAT 준비하는 걸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코치님이 ‘너도 준비해야 한다’라며 SAT 책을 주시는데 박사 과정 책처럼 정말 두껍더라고요. 한국말이어도 될까 말까 한데, 다 영어로 되어 있어서 많이 당황했어요. 이걸 다 공부해야 하나? 막막했죠. 

첫 장부터 모르는 단어가 쏟아져 나와서 계속 멈추게 되더라고요. 

이걸 1000점을 넘겨야 한다고? 

이게 맞는 거야? 

구글로 ‘SAT 1000점 넘는 법’도 찾아봤답니다. 사실 저는 참고, 또 참다가 돌이킬 수 없을 때쯤 요청하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SAT는 교재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직감했죠. 도움이 필요하다! 결국 튜터링을 요청했습니다. 혼자 밤을 새워도 도저히 못할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수학은 괜찮았어요. 중학생 때 공부하고, 고등학생 때 풀었던 게 나왔거든요. 반대로 영어는 애를 먹었는데, 그래도 첫 시험에서 920점이 나왔어요. NBA 아카데미 관계자분께 “저 920점이 나왔는데, 이 정도면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더니 “오! 야, 충분하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그 두꺼웠던 책을 집어 던졌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이제 미국 대학 갈 준비됐어!”라고 자랑했죠.

그렇게 SAT 시험을 잊고 살던 어느 날, 다시 NBA 아카데미 관계자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현중아, 근데 아카데미로 좋은 대학에 가려면 최소 1000점은 넘어야 할 거 같아.”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결국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했죠. 

책을 펴니 이걸 또 어떻게 준비하지? 갑자기 어지러운 거 있죠.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시작했어요. 대학 옵션을 늘려야 했으니까요. 920점을 토대로도 갈 수 있었지만, 1000점을 넘기면 옵션이 넓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데이빗슨 대학뿐 아니라 다른 학교도 1000점 이상을 요구하는 학교들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내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 이걸 이겨내면 즐거움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죠. 다시는! 절대로! 보기 싫다. 점수가 잘 나와야 한다!

시험을 본 뒤 일주일은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었어요. 일주일간 잠을 못 잤어요. 

마침내 결과가 나왔는데 1030점이 나왔어요. 턱걸이이긴 했지만 어쨌든 1000점은 넘긴 거잖아요. 점수 확인할 때 울 뻔했어요. 감격스럽기도 하고…. 수업 중간에 뛰쳐나와 엄마, 아빠에게 전화했어요. 이제 데이빗슨 대학에 갈 수 있다고요.

▲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의 맥킬롭 감독은 선수 못지 않다. / 사진 = Gettyimages Korea

 

에너지 넘치셨던 맥킬롭 감독님

 

데이빗슨 대학은 스테픈 커리의 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죠. 이번 NCAA 토너먼트를 앞두고도 많은 미디어에서 커리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데이빗슨 대학을 NCAA 토너먼트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끈 선수였으니까요.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도 사방이 커리였어요. 라커룸에도, 복도에도 커리 사진이었죠. 아직도 커리의 라커가 있어요.

그런데 밥 맥킬롭 감독님께서 제게 제일 처음 보여주신 커리의 영상은 바로 1학년 첫 경기 영상이었어요. 방문하는 선수들에게 늘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하더군요. 

이스턴 미시건 대학과의 경기였는데, 커리가 이 경기에서 전반에만 실책 9개를 기록했어요. 라커룸에서 많이 낙담했다고 해요. 하지만 감독님은 커리를 교체하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기용하셨죠. 감독님 표현을 빌리자면 커리는 그날 ‘더블더블’을 기록했어요. 15득점에 실책 13개요. (우리 팀은 81-77로 승리) 

감독님께서는 “커리는 그걸 토대로 성장했어. 너한테도 이런 경기가 있을 거야. 하지만 너를 믿고 성장시키기 위해 스카우트했어. 네가 그저 그런 선수가 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각오하고 와”라고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믿음이 갔죠. 

 

▲ 맥킬롭 감독과 대학생 스테판 커리  / 사진 = Gettyimages Korea

 

감독님은 제가 입학할 무렵에 계약을 5년 연장하신 상황이었어요. 제가 입학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작은 수술을 받으셨는데, 전화로 “데이빗슨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하니까 “지금이라도 바로 일어나서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라며 굉장히 기뻐해 주셨습니다.

감독님 연세가 72살인데,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에요. 훈련 중에 소리도 엄청 지르시고요. 쉬는 날에는 입에 수건을 물고 사이클을 타시죠. 훈련 중에는 스크린도 직접 걸고, 선수들과 몸싸움도 하세요. 어른께 이런 표현이 예의에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사차원’ 느낌도 좀 난답니다. 

제가 감독님께 주로 지적받은 건 수비였어요. 1학년 때는 유독 더 자주 뚫렸거든요. 감독님께서는 제게 수비 자세를 강조하셨어요. “제발 자세를 낮춰!”라며 말이죠. 그러다 실수가 계속 되면 “너 앉아있어! 정신 차릴 때까지 들어오지마”라고도 하셨어요. 

저는 기죽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 말을 다시 안 듣기 위해 더 열심히 했죠. 믿음을 줘야 했거든요. 감독님께서 지적하시는 것 자체가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였고, 그만큼 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라 믿었어요. 거기서 제가 기가 죽거나, 무너져 버리면 앞으로는 지적을 하고 싶어도 안 하실 거라 생각을 했어요. 당당하게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감독님께서 계속 기회를 주실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혼도 나고, 잘 될 때는 자신감을 얻으면서 첫 시즌을 치러간 것 같습니다.

 

▲ 이현중 선수와 맥킬롭 감독 / 사진 = Gettyimages Korea

 

잊지 못할 첫 학기, 첫 수업

사실, 데이빗슨 대학에서의 첫해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훈련만큼이나 공부가 너무 힘들었죠. 차원이 달랐어요!

첫 학기에 저는 글쓰기 스킬을 늘리기 위한 라이팅 수업과 사회학 수업, 그리고 역사 과목(East Asia History)을 택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역사 과목은 한국, 중국, 일본에 대한 역사를 배운다고 해서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힘들었죠! 

첫 수업이 기억나요. 사회학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제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위축도 됐습니다.

이게 뭐지?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

어버버하다가 넘어갔죠. 쪽팔렸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도 발표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상황에 맞춰 대답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수업과 과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2019년 12월에 가진 코핀 주립대학교와의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이 경기에서 제가 더블더블(17점 10리바운드)을 기록했어요. 대학 입학 후 처음이었기에 당연히 축하도 많이 받았죠. 감독님도 칭찬해주시고, 한국에서도 축하 메시지가 엄청 많이 왔어요. 어깨가 절로 올라갔죠. 

그런데 기뻐할 겨를이 없었어요. 역사 과목 에세이가 아침까지였거든요. 책을 읽고 3페이지 분량을 써야 하는 건데, 그냥 쓰면 안 되고 어디와 연관을 시켜서 써야 하는 에세이였어요. 경기 치르고 샤워하고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에세이에만 몰두했어요. 그래서 코핀 주립대와의 경기는 제 성적만큼이나 밤새 숙제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답니다. 

그렇게 학업과 농구 사이에서 균형을 못 찾고 있던 시기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역사 퀴즈를 봤는데 ‘F’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때 김효범 코치님께서 소중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교수님을 찾아가 보라는 조언이었죠.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고, 교수님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친근해지라고요. 곧바로 전 과목 교수님과 미팅을 잡고 상황을 설명드렸어요. 저는 그때까지 공부를 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무작정 단어 찾고 번역기도 돌려가며 따라갔는데, 교수님께서 주신 팁으로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현중 / 미 데이빗슨대 농구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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