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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내가 이현중을 보고 놀랐던 이유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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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28

 

한동안 날씨가 따뜻했지만, 다시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마치 현재 농구판의 온도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스타전에서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간직한 채 다시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SK와 KT의 화끈한 경기를 시작으로 순위 경쟁도 치열해지고 팬들의 기대감도 높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고,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까지 연기되면서 다시 차가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선수 및 관계자 모두가 팬들 사랑과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에 조금만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6일,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출전할 국가대표 명단이 발표되었다. 국가대표 명단(예비 엔트리 포함)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은 농구관계자들이 실력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명단에 처음 오른 선수들은 굉장히 기쁘고 설렐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수 없다. 우리나라 농구선수 중 단 12명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니 말이다.

◇ 우물 안 개구리, 쿠웨이트 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먼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를 뛰었던 청소년대표 시절도 기억에 난다. 특히 세계청소년대회 티켓이 걸린 2002년 FIBA U18 아시아대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대회는 쿠웨이트에서 열렸는데, 쿠웨이트가 그렇게 잘 사는 나라라는 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순찰차가 모두 BMW, 벤츠였다).

단순히 길가의 차뿐만이 아니다. 쿠웨이트에서의 시간들은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았는지를 깨달은 기회가 됐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외국인을 본 것도 19년 인생에서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39살이 되었다…)

예선에 우리는 레바논, 이란과 한 조가 되어서 경기를 가졌다.

그때 이란과 했던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이란의 하메드 하다디(218cm)가 그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해 있었고, 그리고 하다디만큼 큰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다.

우리는 경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팀 내 최장신 선수조차 2미터가 안 됐기 때문이다. 우리 팀 최장신은 지금은 은퇴한 김재환(197cm)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어렸기에 ‘할 수 있다’는 선수들의 열정과 패기가 대단했다. (예전에도 글에서 소개했던 일화로, 김영환 선수가 밥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확인했던 대회가 바로 이 대회였다.)

우리는 엄청난 활동량과 지역방어로 이란을 77-73으로 꺾었다.

예선 통과 후 4강에서는 중국에게는 90-102로 아쉽게 졌다(나는 이 경기에서 팀에서 가장 많은 33점을 올렸다), 그러나 3~4위전을 승리하면서 세계대회 티켓을 확보했다.

 

사실 쿠웨이트 출발 전부터 주변에서는 3위까지 주어지는 티켓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아마 그런 예상 때문에 선수들이 더 이를 악물고 경기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경쾌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기가 찌릿찌릿 오는 것 같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돌아오면 국내대회에서는 자신감이 많이 붙는다. 청소년대회를 치르면서 나는 농구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신장이나 체격이 더 큰 선수들과 경기를 하다가 국내에 오면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곤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FIBA 국제대회 경기를 보면서 한 선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바로 지금은 NCAA 디비전 I 데이비슨 대학에서 활약 중인 이현중 선수다.

◇ 이현중 선수가 놀라웠던 이유

 

이현중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상대해온 선수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프로농구가 아닌 이상 쉽게 접할 수 없는 피지컬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인지 아시아권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는 움직임에 여유가 있었다.

사실, 단순히 미국에서 경기를 많이 했다고 해서 여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성인국가대표가 처음이고, 선배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경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만큼 이현중 선수가 어떻게 플레이할지 더 유심히 지켜봤던 것 같다. 아니, ‘굉장히 흥분하면서’ 봤던 것 같다.

이현중 선수를 보면서 놀랐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속공 시 움직임이다. 속공 시 뛰는 길이 마치 교과서 같았다. 두 번째는 그런 플레이에서 묻어 나오는 여유였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20대 초반인데 프로무대 선배들과 치르는 첫 성인 국가대표 경기에서 나온 움직임이라는 걸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기술적인 부분은 팬들도 잘 아실 것이다. 어떤 기술을 얼마나 잘 쓰는지 말이다. 하지만 코트에서 선수들이 뛰는 동선, 길은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다.

이현중 선수의 움직임을 보면 그동안 농구를 굉장히 잘 배웠고, 그런 농구를 잘 익혔다는 생각이 든다.

슈터들은 속공 상황에서 좁히지 말고, 프론트코트 엔드라인까지 뛰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 넓게 뛰라는 이야기다. 3점슛 찬스를 볼 수도 있지만, 트레일러의 세컨 찬스를 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꼭 엔드라인까지 뛰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슈터들이 간격을 넓혀서 뛰어주면 코트를 넓게 쓸 수 있고, 덕분에 트레일러도 중앙으로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비 입장에서도 활동폭이 넓어지기에 공격자가 유리해진다.

이현중 선수는 마치 기계 같았다. 속공 상황에서 코트를 넓게 쓰며 자신의 찬스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으로 인해 다른 선수 찬스까지도 잘 만들어줬다.

공을 갖고 있지도 않는데 팀에 중요한 찬스를 만들어준 것이다.

어린 선수가 정확히 알고 움직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데, 너무나도 잘 해내서 인상적이었다.

 

또한 공을 잡았을 때의 여유도 대단했다.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되면 평소 국내에서는 잘 하지 않던 실수를 하게 된다.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을 잡으면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현중 선수는 중심이 살짝 뒤에 있었다. 여유와 자신감이 있을 때 나오는 모습이다.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고 내가 하던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 때문에 슛을 던질 때나 패스를 할 때 미스가 발생한다.

이현중 선수는 공의 유무와 관계없이 중심이 잘 잡힌 채 상황을 다 보고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많은 부분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지만, 이 2가지만 해도 이현중 선수가 얼마나 농구에대해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NCAA와 학사 일정 탓에 이번 국가대표팀에는 합류가 어려울 것 같지만, 미국에서도 지금 잘 하고 있기 때문에 팬들께서도 위안을 삼으셨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멀리서 늘 응원하고 꼭 NBA에 입성하기를 기원하겠다.

앞서 얘기했지만 여러 문제들로 인해 KBL의 지금 온도는 많이 차갑다.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 죄송하기도 하다.

그러나 코트 안팎에서, 그리고 국내외에서 자신의 역할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있는 만큼, 곧 열기도 다시 뜨거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농구에 많은 사랑을 부탁드린다.

월드컵 출전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임하는 대표팀은 건강히 잘 준비했으면 좋겠고, 모든 분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괴로움 없이 즐겁고 건강한 구정 연휴를 보내셨으면 좋겠다!

 

김태술 / 전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처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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