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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1학년들을 위한 편지

--김태술 농구

by econo0706 2022. 9. 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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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11

 

짧지만 유독 길게 느껴졌던 휴식기가 끝나고 프로농구 10개 구단은 다시 치열한 순위 경쟁에 돌입했다. 4강 직행이 걸린 2위 자리와 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이라 할 수 있는 6위 자리를 놓고 펼치는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느껴진다.

이제 경기가 10경기도 채 남지 않았기에 각 팀의 체육관을 둘러싼 공기는 더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연기된 경기 일정도 빡빡해졌기에 부담도 클 거 같다.

이런 선수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덧 우리의 일상에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여주겠다는 듯, 한걸음씩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다.

봄이 다가오면서 내 마음도 설레기 시작했다. ‘봄’하면 뭔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만큼 더 설레고, 기분도 좋아지지 않나 싶다.

그러고 보면 이제 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기를 맞는다. 코로나19 탓에 예전같이 캠퍼스에서 새내기의 기분을 만끽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은 다들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도 ‘어린 태술이’의 신입생 시절이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던 고교시절 첫 동계훈련

먼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 떠오른다. 처음 고등학교 선배들과 운동을 시작했을 때, 기대감이 정말 컸다. 낯설고 서툴지 몰라도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첫 겨울 합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농구를 관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훈련을 따라가기에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받은 훈련 강도와 비교하면 못해도 3배는 더 힘들었다. 게다가 환경까지 낯설다 보니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었다.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의지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끌려 다녔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1주, 2주, 한 달이 지나면서 몸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선배들과의 경쟁도 힘들지 않았고 공도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힘이 붙은 덕분인 것 같다. 몸이 못 버텨 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조금씩 강해지고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동계훈련이 끝나고 몸에 힘이 붙으니 농구가 잘 되기 시작했다. 아니 정말 스스로도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까지 내 득점은 평균 4~5점 정도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매 경기 20점 가까이 넣는 선수가 되어있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물론 포지션의 변화도 좀 있었다. 1학년 때 나는 2번 포지션을 소화했다.

2년 선배 중에 포인트가드를 보는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2번 포지션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있었다. 슛을 많이 던지게 되고, 그만큼 패스를 받는 입장이 되다 보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생 선수에게 ‘완성형’이란 없다

지금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 어린 후배들도 ‘가능하다면’ 하나만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포지션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각 팀 코치님께서 팀 상황에 맞게 선수기용을 하실 것이다. 그 가운데 팀 사정상 내가 원하는 포지션이 아닌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도 농구 보는 시야를 넓혀줄 것이고, 농구 실력을 키울 계기가 될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지금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뛰는 함지훈 선수는 어린 시절에 가드를 봤던 걸로 알고 있다. 점차 키가 자라면서 포지션 변경을 한 케이스다. 함지훈 선수의 패스 실력은 포인트가드 못지 않다.

볼 핸들링도 좋고 순간적인 움직임도 여전히 훌륭하다. 무엇보다 가드들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드 입장을 잘 알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그런 움직임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이런 상황에 놓이진 않겠지만, 당장 내가 이 포지션에서 뭔가를 이루겠다, 완성된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눈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하고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사실, 프로를 가기 전에 ‘완성형 선수’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추어에 있는 선수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연습해야 할까?

내 대답은 이렇다.

칼을 날카롭게 갈아라!

국가대표 시절, 안양 KGC 문성곤 선수와 같은 방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문성곤 선수는 대학생이었고 아직 프로에 입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에 궁금한 점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다.

그때 내가 해준 얘기가 있다. “프로에 오기 전에 날카롭게 칼을 가는 것에 집중해.”

즉 가지고 있는 개인 기술을 좀 더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서 프로에 오라는 뜻이었다.

농구에는 많은 기술이 있다.

원 드리블 점프슛, 투 드리블 점프슛, 미드레인지 슛, 3점슛, 원 핸드 패스 등…. 페이지를 가득 채워도 모자랄 정도다.

모든 플레이를 다 잘 하면 좋겠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딱 맞는, 혹은 내가 잘 하는 기술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더 갈고 닦는데 초점을 두도록 하자.

프로에 온 뒤에는 그 칼을 언제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배우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그 경험이 더해지면 그 선수는 비로소 완성형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들을 보면 화려해 보이고, 빨리 저기 가서 멋있게 뛰고 싶겠지만, 이는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따라서 프로에 데뷔하기 전에 좀 더 날카롭게 칼을 갈아서 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현재에 충실히 나를 갈고 닦는다면, 같은 라인에 서서 뛰던 동료들이 머지않아 내 뒤에서 내 등을 바라보며 뛰고 있을 것이다.

독기와 함께 시작했던 대학 첫 학기

대학생 시절의 내 모습도 생각이 난다.

 

대학생이 되면서 난 부산 집을 떠나 서울에서 숙소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판단하고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책임감을 많이 가지며 생활 했던 것 같다.

모든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난 꼭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다짐을 했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바퀴벌레처럼 꼭 살아남아서 내가 목표한 바를 꼭 이루리라 다짐했다.

연습할 때도 남들보다 운동을 무조건 더 했다.

‘내 포지션의 선수들과 똑같은 실력이면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독보적으로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복근 운동 20개를 하면 난 22~23개를 했고, 주변에서 피곤하다며 야간 운동을 빠지면, 나는 오히려 야간 운동을 더 신경 썼다. 남들보다 무조건 더 하겠다는 마음 덕분에 4년 동안 쌓여서 프로에도 1순위로 입단하지 않았나 싶다.

목표 지점이 멀게 만 느껴지고, 나보다 잘하는 동료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후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미래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묵묵히, 내 앞에 있는 과제들부터 차근차근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꼭 목표로 세운 꿈을 이루기를 응원한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중, 고등학생 시절까지 부산에서 보내다가 서울에 오게 됐다. 농구부 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고향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학생들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님은 항상 걱정이 많으셨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많은 부분을 걱정하셨다. 근데 사실 조금 불만일 때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그렇고 많은 부모님들도 다 농구 고수가 되셨다는 것.

그래서 농구에 대한 부분을 많이 지적하시기 시작 하셨다.

“네가 이렇게 했어야지”, “슛을 더 길게 쐈어야지”, “패스미스를 하면 안 돼지” ….

어떨 때는 너무 듣기 싫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미 선수들은 자기가 잘 알 것이다. 뭘 잘못했고, 뭘 잘 했는지. 그래서 코치님께도 지적을 당했을 것이고, 혼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집에 가서 같은 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코트는 전쟁터와 마찬가지다.

승패를 떠나 전쟁이 끝나면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집에서조차 전쟁에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는 소리를 들으면 선수들은 기댈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부모님이 걱정해 주시고, 아껴주시는 마음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너무 농구적인 부분을 지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많은 부모님들께서도 걱정이 되시고 좀 더 내 아이가 잘 하기를 바라시겠지만, 농구에 대한 지적보다는 좋은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얘기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선수들의 몫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전쟁 중인 선수들에게 칼 쓰는 방법을 알려주시기보다는 좋은 생각과 에너지를 채워 줄 수 있는 부분에 더 신경 써주시기를 바란다.

새내기가 된 선수들은 이제 새로운 곳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많이 힘들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기를 바란다.

약간의 설렘,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시작하는 새 학년, 새 학기! 농구 후배들뿐 아니라 모든 새내기들에게 좋은 기억만 가득한 3월이 되길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 파이팅!

 

김태술 / 프로농구 선수, 현 어쩌다벤저스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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