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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바이에른 뮌헨이 내게 중요한 이유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11. 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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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03

 

바이에른 뮌헨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꼭 나누고 싶었다. 이 팀의 위력을 제대로 느낀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팀은 역시 달랐고, 그 팀을 응원하는 관중으로 꽉 찬 알리안츠 아레나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비록 우리가 크게 졌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걸 느낀 경기였다. 바이에른에 대한 나의 감상을 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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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인츠는 최근 분위기가 좋았다. 지난 쾰른전에서 5-0으로 대승을 거둔 후였다. 그 경기를 포함한 최근 세 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기록했다. 리그 10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2-0으로 이겼고, DFB 포칼에서 뤼벡에 3-0으로 이겼다. 분위기가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자신감으로 꽉 채워 바이에른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더 안 좋았다. 2-6으로 대패했다.

우리가 준비한 걸 경기장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 다음 날 감독님이 선수들을 모아놓고 경기 영상을 틀어주셨다. 실수가 잦았다. 실수가 나와선 안 될 부분에서도 실수가 나왔다. 우리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에서 실패했다. 상대가 아무리 세계적인 팀이어도 긴장감을 풀고, 우리 자신을 잘 컨트롤하고, 이겨냈어야 한다. 우리 색깔을 완전히 잃은 경기였다. 마인츠는 역동적이고, 많이 뛰고, 조직력이 좋은 팀이다. 이런 장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바이에른 선수들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실수를 적극 활용해서 기어코 골로 연결해냈다.

​그들이 왜 세계적인 강팀인지 알 수 있는 경기였다. 같은 실수여도 쾰른전에서는 달랐다. 쾰른전에서는 실수를 해도 다시 만회할 틈이 있었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바이에른에선 아니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더는 기회가 없었다. 감독님은 경기 전부터 “바이에른은 상대의 실수를 잡으면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골을 만들어내는 팀이다”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공을 안 갖고 있을 때보다, 공을 갖고 있을 때 더 주의하라고 하셨다. 그때 공을 뺏기면 문제가 생기니 말이다. 경기장에서 바이에른은 우리가 공을 잡으면 호시탐탐 도로 빼앗기 위해 노렸다. 스피드가 빠른 선수가 온 사방에 포진해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비를 할 때도 컴팩트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바이에른 공격수들의 반응이 훨씬 빨랐다. 그런 부분을 대처하는 게 미흡했다.

바이에른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우니온 베를린과 1점 차로 1, 2위 경쟁하고 있어 매 경기에서 이겨야만 했다. 또, 마인츠에 대한 최근 기억이 좋지 않다. 지난 시즌 우리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아깝게 1-2로 졌다. 결과는 가져오지 못했지만, 좋은 경기를 펼쳤던 기억이 난다. 홈에서는 바이에른을 3-1로 잡았다. 바이에른 입장에서 마인츠는 워낙 까다로운 상대여서 준비를 더 철저히 했을 거다. 우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골을 넣는 걸 보며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앞서 말했듯 마인츠가 그동안 바이에른을 상대로 늘 도깨비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관중이 들어오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뛰는 경기였다. 분위기도 궁금했고, 그 안에서 우리 마인츠가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을지도 기대됐다. 선발 명단에 들어 경기장에 입장하는데,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진짜’ 알리안츠 아레나에 온 기분이 들었다. 팬들의 함성은 원정 선수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줬다. 웅장함에 괜히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다. 역시 분위기의 완성은 팬이다. 팬들이 또 다른 선수처럼 느껴졌다.

나는 60분가량 뛰고 벤치로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서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석도 올려다보는데 문득, 축구선수로서 이곳에서 뛸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감사하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세계적인 팀을 상대할 수 있어 감사하고, 내가 또 한 번 성장할 기회가 됐다. 열광하는 팬들 속에서 스피드와 기술을 모두 갖춘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 선수인지를 느꼈다.

 

​바이에른에는 포지션별로 세계적인 선수가 포진해있다. 찬스를 잘 만들고, 찬스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틈을 보이면 그걸 한순간에 골로 결정짓는다. 특히 자말 무시알라는 정말 대단하다. 좁은 공간에서 터치하는 모습,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스피드 등등.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너무 좋은 활약을 하고 있어 늘 관심 있게 봤는데, 마인츠를 상대로도 역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바이에른 같은 팀에서 내부 경쟁을 이겨내고 뛴다는 것만으로 이미 증명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에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자기 플레이를 보여주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온 고레츠카도 인상 깊은 선수다. 나와 역할이 비슷해 더 지켜보게 된다. 이런 선수들과 직접 붙고, 수비를 하면서 그들의 볼터치가 얼마나 섬세한지 느낀다. 이런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더 배우고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나만의 장점도 있지만, 더 훌륭한 선수들의 장점을 보고 배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내겐 바이에른 같은 팀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배움을 멈추지 않도록 해준다.

그렇다고 포칼에서 또 바이에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도 여느 팀과 마찬가지로 포칼 우승을 노린다. 가장 피하고 싶은 팀이 바로 바이에른이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니까 말이다. 뭐, 기왕 우승을 노리는 거 바이에른을 일찍 만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홈에서 만나서 기대가 된다.

이번에 바이에른과 대진이 성사됐을 때 동료들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홀슈타인 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 벌써 떨어졌구나, 유니폼 누구랑 교환할까, 어차피 수비만 할 테니 운동화 신고 가자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마인츠는 달랐다. 매 시즌 두 번씩 만나는 팀이니 이번 포칼 대진은 우리에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언제든 붙을 수 있는 상대이니 조금 더 여유로운 분위기랄까? 킬에서와 상반된 분위기를 경험했다.

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달리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이에른이 아무리 세계적인 강팀이어도 마인츠에서는 여느 분데스리가 팀과 다르지 않다. 감독님부터 그런 걸 강조한다. 어차피 똑같은 선수들이고, 약점을 가진 팀이라고. 우리는 우리 축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번 리그에서 졌을 때도 바이에른이 강했다고 말씀하지 않고, 우리가 추구하는 마인츠의 축구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하셨다.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 아마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들도 비슷한 분위기이지 않을까?

​물론 제삼자가 봤을 때는 다를 수 있다. 어떤 경기에서든 바이에른이 승리할 확률이 확연히 높아 보인다. 나는 그런 ‘섭리’를 거스르는 경험을 이미 했다. 킬이 바이에른을 잡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선제 실점을 하고, 동점골을 넣고, 다시 먹히고, 다시 한번 따라잡고. 연장전을 버티고, 승부차기까지 갔다. 눈보라가 치는 경기장에서 마누엘 노이어를 뚫고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은 그 순간은 여전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 남아있다. 그게 스포츠의 매력인 것 같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장담을 못 한다는 것.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고, 포칼에서 바이에른을 잡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막상 부딪혀보면 다르다는 교훈을 얻었다. 축구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도움이 되는 교훈이다. 내게 큰 자산이 됐다.

그러니 누가 알까. 마인츠가 포칼 16강에서 또 반전 드라마를 쓰게 될 줄. 2-6으로 대패하고 터덜터덜 돌아왔지만 다시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도 있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보여주지 못한 우리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생각해보면, 내가 언제 또 이런 팀과 붙어볼 수 있을까? 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늘 그랬듯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더 즐기고, 더 배운다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마음껏 펼치고 싶다. 우리 홈팬들도 결과를 떠나 제대로 한 판 즐기는 마인츠를 보고 싶어 할 거다. 올 시즌 바이에른과 치를 두 경기가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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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마인츠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고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길 멀리서나마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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