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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처음 직관한 챔피언스리그, 다시 꾸는 꿈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10. 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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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17

 

축구선수가 한 클럽의 소속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무대는 무엇일까. 나는 UEFA 챔피언스리그라 생각한다.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클럽끼리 모여 진짜 최고를 가리는 경쟁터. 축구선수로서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그 챔피언스리그가 내게는 너무나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지난 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직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토트넘이 프랑크푸르트에 온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두 팀이 한 조에 속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마인츠와 아주 가까운 도시다. 보러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번 대표팀 소집에서 흥민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티켓이 필요하면 구해주겠다고 했다. 선뜻 결정할 수 없어 우선 생각을 해보고 연락하기로 했다. 독일에 복귀하고 우리 팀 일정을 봤다. 주말에 리그 경기를 치르고 월요일 하루 휴식 시간을 갖고 화요일부터 다시 훈련이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경기는 화요일 밤에 열렸다. 고민이 됐다. 체력이나 컨디션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언제 챔피언스리그를 눈앞에서 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경기를 놓치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선수들에게 표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경기는 챔피언스리그가 아닌가. 흥민이가 중요한 경기를 준비하는데 괜히 내가 방해를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연락했다.

 

총 여섯 장을 부탁했다. 가족과 지인, 토트넘을 좋아하는 미디어 담당자 등 함께 갈 사람이 꽤 있었다. 미디어 담당자는 내게 “쏘니 통해 구할 수 없나”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지인들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지 문의해왔다. 아직 내가 갈 티켓을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살짝 난감하기도 했다. 다들 얼마나 챔피언스리그에 가고 싶어 하는지, 이 경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체감이 됐다. 흥민이가 여섯 장을 흔쾌히 구해준 덕에 모두 같이 보러 갈 수 있었다. 원정석이라 더 좋은 자리를 못 줘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경기는 밤 9시에 열렸다. 우린 저녁 7시에 출발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애매해서 어머니가 유부초밥 도시락을 쌌다. 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갔는데,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나들이를 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들떠왔다. 공항에 가서 주차를 했는데 막막했다. 이제 어떻게 가야 하지? 다행히 경기장 가는 버스가 오는 정류장이 근처에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팬들도 거기 서 있길래 슬쩍 옆에 섰다. 근데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워낙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이다. 팬들은 자연스럽게 지하철로 향했다. 우리 일행도 덩달아 지하철을 탔다. 두 정거장 후 경기장에 도착했다. 내렸더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경기가 있는 날에 이렇게 팬들이 많이 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사람들과 뒤섞여 경기장으로 향했다. 한 20분 정도는 걸은 것 같다.

 

흥민이가 준비해준 티켓도 무사히 찾았다. 우리가 티켓을 받고 나오니까 한 한국 팬이 어떻게 구했는지 물으셨다. 거기서 내가 “아, 이거 흥민이가 구해준 거예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냥 지인이 구해줬다고 했다. 부러움과 아쉬움이 섞인 팬의 눈을 보고 챔피언스리그 경기 티켓을 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흥민이에게 다시 한번 고마웠다.

 

드디어 경기장에 입장했다. 챔피언스리그의 동그란 현수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와,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분명 여기서 뛴 적이 있는데 그때랑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색달랐다. 그때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관중석에 앉아 축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완전히 ‘팬 모드’가 됐다. 사진을 찍었다가, 영상을 찍었다가 손이 바빠졌다. 좌석에 앉아 서포터즈의 열렬한 응원을 구경했다. 경기장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훨씬 열기가 뜨거웠다. 넋을 놓고 구경하던 중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스리그 공식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TV를 통해서만 듣던 노래였는데, 경기장에서 팬들의 함성과 뒤섞인 노래를 온 몸으로 느끼자니 소름이 돋았다. 와, 이곳은 진짜 꿈의 무대구나.

 

나의 챔피언스리그 첫 직관

 

흥민이는 선발로 나섰다. 내심 계속 흥민이를 응원했다. 경기 전부터 흥민이가 꼭 선발로 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좋은 모습을 보이고, 골도 넣었으면 했다. 진심이었다. 경기 전에 팬들에게 ‘저 오늘 경기장 가는데 꼭 선발로 나와주세요!’, ‘오늘 경기에서 골 넣길 응원할게요!’ 등의 응원 메세지들이 온다. 사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내가 팬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제야 느꼈다. 모두 진심이구나.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정말 많이 느꼈다.

 

경기는 팽팽하게 흘렀다. 신기하게 경기장 안에서 안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왜 패스를 저기에 주지? 왜 저기로 달리지? 시야가 넓어지니 보이는 찬스와 공간이 많았다. 팬들이 선수들을 볼 때 늘 아쉬워하고,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이해했다. 관중석에서 보니 직접 경기장에서 뛰는 것보다 축구가 비교적 쉬워 보였다. 이 시야를 갖고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지금 저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알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심정, 팬들의 심정을 모두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공부가 많이 됐다. 수준 높은 경기는 기회가 되면 꼭 이렇게 보러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결국 0-0으로 끝났다. 경기 전에 다 같이 3-2니, 2-1이니 내기를 했는데 설마 0-0이 나올 줄은 몰랐다. 흥민이한테도 찬스가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나 정말 흥민이의 ‘찐팬’이었구나.

후끈했던 열기를 뒤로하고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경기장에서 나오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5만 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퇴장하니 꽉 막혔다. 더군다나 다들 똑같은 지하철역으로 가서, 똑같은 열차를 탄다. 플랫폼도 계속 바뀌고, 팬들은 우왕좌왕하고… 와, 나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야? 예전에 한국에서 경험한 ‘지옥철’을 독일에 와서 처음 경험했다.

그때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나는 이거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불가능해 보이는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몸을 실었다. 공교롭게도 미디어 담당자는 낙오했다. 여기서부터는 각자도생이니 어쩔 수 없다. 다음날 훈련장에서 만났는데 다음 열차를 타고 갔단다. 덕분에 경기 잘 봤다고 고맙다고 했다.

마치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꽉 찬 경기장에 울려 퍼지던 웅장한 챔피언스리그 앤섬. 그걸 내가 실제로 듣고 왔다니. 어릴 때 TV로 보던 순간이 생각났다. 이젠 내가 직접 볼 수 있는 곳에 와있구나.

내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관중석이 아니라 경기장 위에서 그 노래를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이곳에서 뛸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TV로도 보고, 관중석에서 직관도 했다. 이제 뛰어볼 일만 남았다. 이전에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연했다. 대표팀 동료들이 거기서 뛴다고 해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직접 보고 오니 달라졌다. 향후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이제는 챔피언스리그도 고려를 할 것이다. 내게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됐다.

 

 

어릴 적 나의 꿈은 프로 선수가 되는 거였다. K리그 최고의 팀 전북현대에서 뛰며 그 꿈을 이뤘다. 전북에서는 유럽에 진출하는 꿈을 꿨다. 지금 나는 유럽,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또 한 번 꿈을 이뤘다. 이번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웅장한 앤섬이 울려 퍼지는 경기장 위에 서 있고 싶다는 꿈이 또렷해졌다. 이렇듯 꿈은 또 다른 꿈을 낳고, 불가능한 일은 없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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