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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KBL·CBA의 별들이 전쟁을 펼친 날, 한중 올스타전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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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1. 11.

 

KBL(한국농구연맹)과 CBA(중국농구협회) 최고의 별들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농구 팬이라면 각국의 올스타들이 맞붙어 최고를 가리는 것을 한 번쯤은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꿈은 현실이 됐다. 2000년대 중반, KBL은 아시아 프로리그 올스타들의 대항전을 구상했고, 끝내 2005년 1월 28일과 30일, 한중 올스타전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당시 아시아 농구를 양분화하던 한국과 중국의 별들이 홈 앤드 어웨이로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사실 KBL은 한중 올스타전이 아닌 한중일 올스타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더불어 미래에는 대만과 필리핀 등을 참가시켜 아시아만의 국제대회를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었다. 일본이 참가하면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 KBL 관계자는 “당시 중국의 반일감정이 상상 이상이었다. 또 일본 농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결국 KBL은 CBA와 함께 한중 올스타전을 열게 됐고, 당시 A3챔피언스컵(한중일 프로축구팀이 참가한 대회)의 대행업체와 함께 협업에 나섰다. KBL 관계자는 “먼저 축구에서 A3대회를 하고 있어 관심을 두게 됐다. ‘축구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까’라는 생각에서 아이디어가 나왔고, A3대회의 대행업체와 연이 닿아 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CBA와의 소통이었다. KBL은 원활한 스폰서 유치를 위해 베이징과 같은 대도시에서 개최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CBA는 자국민을 우선시해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지방에서의 개최를 요구했다(지방에서 대회를 열면 유치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CBA의 뜻대로 1회 대회는 하얼빈, 2회, 3회 대회는 허난성과 장쑤성에서 열리게 됐다.

3회까지 모두 참가한 김승현 해설위원은 “정말 추운 곳에서만 했던 것 같다. 남쪽으로 가면 따뜻하고, 쉴 곳도 많았을 텐데 그저 농구만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DVD를 많이 구매한 기억은 있다. 농구 말고는 할 게 없어서 DVD를 자주 봤으니까. 올스타전이면 팬들과 같이 어울릴 줄 알았다(웃음). 국가대표 경기랑 다를 게 없었다”고 추억했다.

역시 모든 대회에 참가한 조상현 코치는 “말이 올스타전이지 사실은 국가 대항전의 성격이 짙었다. 선수 선발도 팬 투표가 아닌 감독님들이 추천했으니까. 농구를 제외하면 정말 할 게 없었다. 심지어 경기도 올스타전이 아닌 진짜 경기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한중 정기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고 이야기했다.

강혁 코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차를 타고 오랜 시간 이동했던 건 생각난다. 당시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장시간 이동을 하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먼 지역을 가야 하다 보니 힘들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개최 과정은 까다로웠지만, 대회 자체는 흥행의 연속이었다. 단순한 국가대표 간의 대항전이 아닌 외국선수까지 더한 올스타전의 성격으로 열리며 많은 팬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더불어 경기 내용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KBL 올스타는 1회, 2회 대회에서 각각 1승 1패를 거뒀다. 홈에서 모두 승리를 차지했지만, 원정에선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팬들은 즐거워했다. KBL에선 볼 수 없는 김승현과 크리스 랭의 엘리웁 플레이는 물론 나이젤 딕슨이 중국의 토종 빅맨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며 환호했다. 올루미데 오예데지는 1회 대회에선 CBA 올스타로 출전했지만, 2, 3회 대회에선 KBL 올스타로 나서 중국의 골밑을 초토화시켰다.

김승현 해설위원은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내게 중국은 그리 큰 벽이 아니었다. 류웨이라는 선수와 계속 라이벌 관계가 됐는데, 솔직히 인정하기 싫다(웃음). 그저 슛을 잘 던졌던 선수 정도였으니까”라며 “KBL에선 상대 선수인 랭, 딕슨 등 다양한 선수들과 함께 뛰어볼 수 있어 행복했다. 어떤 감독님은 ‘외국선수들이 우리 가드들한테 너처럼 패스를 달라고 하더라’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다른 걸 떠나서 정말 재밌게 뛰었던 하루하루였다”고 이야기했다.

2007년에 열린 3회 대회에선 첫 원정 승리라는 짜릿함과 함께 2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단선생’ 단테 존스는 CBA 올스타를 상대로도 여전히 강의에 나섰고, 신예 양동근은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문제는 CBA의 자존심이 무너진 탓에 대회가 유지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KBL 올스타가 원정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건 CBA의 자존심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의 경기는 편파판정 투성이라며 비난을 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을 끝으로 한중 올스타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 한중 올스타전 역대 전적


2005_잠실실내(85-82), 하얼빈(77-93)
2006_잠실실내(96-86), 허난성(85-104)
2007_인천삼산(75-73), 장쑤성(91-73)

 

▲ 한중 올스타전 역대 MVP(각 경기마다 선정)


2005_김승현, 류웨이
2006_김승현, 류웨이
2007_올루미데 오예데지, 양동근

한중 올스타전 이후, 아시아 클럽 대항전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일 챔피언십은 물론 현재에 이르러 슈퍼 에잇과 터리픽 12 등 대규모 대회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KBL 관계자는 “사실 FIBA의 제지가 많이 들어왔다. 자신들이 주최하지 않는 대회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인정하는 추세다. 그만큼 규모가 커진 탓이다. 앞으로 아시아 내 프로팀들의 대항전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KBL 역시 이들의 흐름과 발맞춰 뒤처지지 않겠다”고 바라봤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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