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타임머신] "이거 실화야?" 동부와 삼성의 5차 연장 혈투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21. 00:54

본문

2019. 01. 18

 

“정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기에요.”

2008-2009시즌이 한창이던 2009년 1월 21일, 당시 1위를 달리고 있던 원주 동부는 테렌스 레더와 이상민이 이끄는 서울 삼성과 시즌 네 번째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이전 세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동부는 절치부심하며 철저히 복수극을 준비한다. 그러나 대들보 김주성의 발목 부상으로 위기를 맞이했고, 또 한 번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뤘다.

동부는 이광재와 강대협, 웬델 화이트의 활약으로 전반을 46-44로 앞섰다. 후반 들어, 이규섭과 애런 헤인즈에 역공을 맞았지만, 화이트가 4쿼터에만 18득점을 몰아치며 승부를 대등하게 끌고 갔다. 4쿼터 막판,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광재의 4점 플레이가 빛을 내며 결국 85-85, 승부를 연장으로 가져갔다.

대부분 연장 승부는 길어야 2차에서 마무리된다. 서로 힘든 상황에서 한순간의 실수가 승부를 결정짓는 만큼 길게 지속되기 힘들다. 하나, 두 팀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화이트와 헤인즈를 앞세운 동부와 삼성은 5반칙 퇴장의 릴레이 속에서도 5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동부는 크리스 다니엘스와 화이트가 모두 퇴장을 당하며 위기에 처했다. 반면, 삼성은 레더의 이른 파울 아웃이 문제였지만, 헤인즈가 국내무대에 100%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공격을 이끌었다. 총 8명이 퇴장당하는 등 경기는 치열하게 흘러갔고, 결국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KBL 출범 이래, 역대 최장 시간을 소화한 경기의 마지막은 강대협이 장식했다. 경기 종료, 25.6초를 남기고 결승 자유투를 성공시킨 것이다. 이어진 삼성 박훈근의 공격을 윤호영이 블록하며 65분간 이어진 혈투는 동부만이 웃을 수 있었다.

동부는 화이트가 41득점 6리바운드로 맹활약했고, 강대협과 이광재 역시 나란히 30득점을 기록했다. 삼성은 이상민이 15득점 8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펼쳤다. 헤인즈가 33득점 13리바운드를 올렸고, 이규섭(17득점), 레더(26득점 6리바운드), 차재영(19득점)도 분전했다. 부상으로 빠진 강혁의 존재감이 아쉬웠다.

▲ 2009년 1월 21일 원주 동부 vs 서울 삼성 BOX SCORE.


1Q_동부 21-16 삼성
2Q_동부 46-44 삼성
3Q_동부 65-68 삼성
4Q_동부 85-85 삼성
1차 연장_동부 91-91 삼성
2차 연장_동부 100-100 삼성
3차 연장_동부 113-113 삼성
4차 연장_동부 119_119 삼성
5차 연장_동부 135-132 삼성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마치 두 경기를 치른 듯한 피로감을 한 번에 느꼈다. 당시 동부의 트레이너였던 박순진 DB 코치는 “근육 피로도가 평소의 2~3배 정도였다. 선수들 모두 기진맥진했고, 특히 (윤)호영이는 61분 정도를 뛰면서 더 많은 피로감을 느꼈다. 다음 날은 아예 운동을 쉬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를 맞기도 했을 정도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며 “가장 걱정이었던 건 심해진 근 피로도로 인한 부상이었다.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KBL 역대 한 경기 최장시간 출전 기록을 세운 윤호영은 “(김)주성이 형이 부상으로 빠져 있었기 때문에 많이 뛸 수 있었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다른 선수들이 정말 잘해줘서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축 처져 있었던 기억만 난다(웃음). 그나마 이겨서 다행이었다. 졌으면 정말 데미지가 컸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날 30득점을 기록한 이광재 역시 잊지 않았다. 그는 “몸 상태가 최고였던 때라서 오래 뛰고도 크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또 하고 싶은 대로 잘 됐던 때라 득점도 많이 올렸다”며 “1, 2차 연장까지는 긴장이 되는데 3차부터는 헛웃음만 지었다(웃음). 이게 꿈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러모로 힘들었던 생각만 난다”며 추억했다.

승자는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 금세 잊을 수 있었지만, 패자는 그렇지 못했다. 이규섭 삼성 코치는 “개인적으로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아쉬웠던 경기였다. 힘든 것보다 5반칙 퇴장 때문에 끝까지 코트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애런(헤인즈)이 잘해줬는데 뒤를 받쳐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고. 그 시즌에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하기도 해서 더 아쉬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역대 최장시간 혈투인 만큼, 여러 기록이 탄생했다. 먼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전대미문의 5차 연장을 주목해보자. 이전까지 KBL은 3차 연장만 총 네 차례 나왔다. 4차 연장은 물론 5차 연장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기 시간은 총 3시간 13분으로 총 18회의 동점 상황이 만들어질 정도의 대혈투였다.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도 이날 경신됐다. 동부가 종전 오리온스가 기록한 133점(1997년 11월 19일 vs SK)을 뛰어넘어 135점을 기록한 것. 동부와 삼성의 총득점 267점 역시 오리온스와 SK가 올린 259점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경기가 너무 길어진 탓에 해프닝도 발생했다. 당시 KBL은 5차 연장 기록을 수기로 작성했다. KBL 기록관리 프로그램이 4차 연장까지만 기록됐던 관계로 수작업으로 빠르게 대처해야만 했다. 이후 KBL은 기록 프로그램에 5차 연장 이상도 기록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했다. KBL 관계자는 “10년 전, 수기 작성 이후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켰다. 5차 연장은 물론 그 이상도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당시를 추억한 농구 관계자는 “후반 시작부터 5차 연장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명도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님과 코치님 할 것 없이 모두 화장실을 찾았고, 선수들은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었다(웃음). 평일 경기였던 만큼, 끝나고 정리를 하다 보니 12시가 훌쩍 넘어갔다. 외국선수들은 자신들이 주로 찾아가는 식당이 닫혀 울상을 짓기도 했다. 5차 연장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가 더 힘들었던 게 기억난다”고 이야기했다.

추억이라면 추억,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일 수도 있는 5차 연장. 현장에 있던 그들에게 물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5차 연장을 뛰어보고 싶으신가요?” 그들의 대답을 듣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요.”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점프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