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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육상 (5)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12. 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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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9. 12.

 

1932년 7월 30일부터 8월 14일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 10회 여름철 올림픽에 한국 인 선수 3명이 처음으로 출전했다. 마라톤의 권태하와 김은배, 복싱 라이트급의 황을수였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체육회가 뽑아 올림픽에 파견한 것이 아니다. 일제에 나라를 강점당하고 있던 당시 일본 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조선 지역 대표는 일본인들의 조직인 조선체육협회가 뽑게 돼 있었다.

 

1932년 5월 25일 도쿄에서 열린 제 10회 여름철 올림픽 파견 일본 마라톤 대표 최종 선발전에서는 츠다, 시오아쿠, 다카하시, 야하기 등 일본 선수 4명 가운데 상위 입상자 3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뜻밖에도 권태하가 2시간36분49초로 1위, 김은배가 2시간38분3초2로 2위를 차지했다. 츠다가 2시간38분18초2로 3위였다.

 

▲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한 김은배와 권태하(이상 마라톤) 황을수(복싱)를 맞아 재미 동포들이 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고 환영 행사를 열었다. / ⓒ대한체육회

 

최종 선발전에서 1위와 2위를 했으니 일본인들도 어쩔 수 없이 권태하와 김은배를 올림픽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8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20명이 완주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김은배는 2시간37분28초로 6위로 골인했고 권태하는 비틀거리며 완주해 2시간42분52초로 9위가 됐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사발라가 올림픽 당시 최고 기록인 2시간31분36초로 우승했고 조선인 선수들에게 자기 앞으로 나서지 말라고 견제한 츠다는 2시간35분42초로 5위였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김은배가 6위, 권태하가 9위를 각지했다는 소식은 우리 겨레에게 희소식이었다. 국내 신문은 ‘김 군의 마라톤 입상’, ‘비장(悲壯) 권 군의 골인’, ‘조선 체육 사상 대수확’ 등으로 제목을 달고 레이스 경과를 상세히 보도했다. 9월 14일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서울에 돌아올 때 동아일보는 사회면 톱에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김 군의 개선’이라는 제목을 달고 크게 보도했다.

 

김은배는 로스앤젤레스 동포들이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베푼 한국인 선수 환영식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다. 그리고 경기 도중 동포 응원단이 흔드는 태극기에 조국을 느꼈다. 김은배는 동포가 준 태극기를 몰래 감춰 지니고 귀국해 뜻이 통하는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에게 전했다. 이길용은 그 태극기를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는 날까지 지니고 있다가 광복이 되자 그 태극기를 본 삼아 여러 장의 태극기를 그려 많은 사람들에 나눠 주어 그들로 하여금 광복 만세 대열에 참가하도록 이끌었다.

 

조선체육회는 1933년 5월 27일 우리 손으로는 처음으로 정규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그때까지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육상경기대회에서는 단축 마라톤만 치러졌다. 단축 마라톤과 구별하기 위해 정규 마라톤은 당시 ‘풀마라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대회 명칭도 제 1회 풀마라톤대회였다.

 

정규 코스에서 마라톤의 우리나라 공인 기록이 처음으로 작성된 것은 1927년 제 3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였다. 경성운동장을 떠나 동대문, 청량리를 거쳐 망우리 고개에서 되돌아오다가 동대문에서 종로를 지나 의주로, 신용산 전차 종점에서 다시 되돌아 서울역, 한국은행 앞, 을지로 입구, 광희문, 왕십리에서 또다시 되돌아 광희문을 지나 경성운동장에 골인하는 복잡한 코스였다. 이 대회에서 마봉옥이 세운 3시간29분37초가 우리나라 최초의 마라톤 공인 기록이다.

 

조선체육회 주최 제 1회 풀마라톤대회에는 34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견지동 옛 중앙일보사 앞을 떠나 경원 가도를 달려 망월사 입구(도봉산 입구)에서 되돌아오는 이 대회에서는 충주의 안성학이 2시간46분38초로 우승했다. 1년 전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김은배가 6위, 권태하가 9위를 각각 차지해 마라톤 붐이 달아오른 때라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6편에 계속>

 

신명철 기자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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