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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육상 (6)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11. 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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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9. 19

 

1935년 11월 3일 베를린 올림픽 파견 마라톤 일본 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한 제8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가 열렸다. 이 경기에 참가한 손기정은 일본의 스즈키, 나카무라, 사가라, 쿠스노키 등과 함께 메이지신궁경기장을 출발했다. 롯고바시의 반환점을 돌 때에 손기정과 나카무라가 선두 다툼을 벌였다. 반환점을 돌자마자 나카무라를 앞선 손기정은 후반에 들어서자 오모리 부근에서부터 무서운 스피드를 내기 시작했다. 오모리와 시나가와 사이에서 2위 나카무라를 2분이나 떨어뜨린 손기정은 독주를 계속해 4만 관중의 환호 속에 메이지신궁경기장에 들어가 우승했다. 2시간26분42초의 공인 세계 최고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4월 일본의 이케나가가 수립한 세계 최고 기록 2시간26분44초를 2초 단축했다.

 

손기정은 서울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을 마크했으나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그때마다 자기네가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세계 최고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기정은 1934년 4월 22일 제2회 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51초 그리고 1935년 5월 18일 제3회 풀 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24분28초의 엄청난 세계 최고 기록을 각각 세웠다.

 

1935년 4월 27일 손기정은 일본인 경기 단체인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주최 측인 조선육상경기협회는 서울에서 치르는 마라톤이 공인되지 않은 짧은 코스라는 일본육상경기연맹의 주장이 마땅치 않아 이 대회는 정규 코스 길이 42.195km보다 520m를 더 잡았다. 정규 코스보다 520m나 더 긴 코스에서 세운 세계 최고 기록인데도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공인하지 않았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 ⓒ대한체육회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은 2시간29분19초2의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우승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30분의 벽’을 돌파한 선수는 손기정이 처음이다. 남승용은 2시간31분42초로 3위로 들어왔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과 남승용이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발칵 뒤집혔다. 서울 중심부인 광화문에 자리 잡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매일신보 등 각 신문사 앞에 마련된 속보판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1932년 ‘상록수’가 동아일보 현상 소설에 당선돼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해서 농촌 계몽운동에 나선 작가 심훈은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시를 지어 기쁨을 나타냈다. 겨레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이 시를 지었다 해서 심훈은 일본 경찰에 불려 가는 고초를 겪는다.

 

올림픽이 열리는 베를린 현지에 머무는 동안 손기정은 사인 요청을 받으면 서슴없이 한글로 자기 이름을 적어 주고 나라 이름은 영문으로 KOREA라고 썼다. 맞춤법이 오늘날과는 달라 그때 손기정은 ‘손긔졍’이었다. 때로는 KOREA 옆에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을 하기로 돼 있는 독일의 국빈 방명록에도 ‘손긔졍’이라고 한글로 뚜렷이 적혀 있다. <7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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